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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아 Jul 01. 2022

이색적으로 건강하게, 토마토 렌틸 커리

화병으로 꺾인 건강을 위한 건강식

잠시 정신을 놓고 있다간 약육강식의 지배논리에 의해 화를 입게 되는 정글 같은 이곳에서도 작은 행운과 소소한 즐거움이 있다. 가령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료를 만나는 것, 그래서 설움에 젖은 마음들을 뽀송하게 말릴 수 있다는 것.


내게 따랐던 또 다른 운은 바로 별실 배정이었다. 학교마다 교무실은 여러 개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대부분의 경우 가장 큰 교무실은 기피 대상에 해당한다. 관리자급인 교감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기도 하고, 칼퇴를 하기에도 눈치가 보이는 경향이 있으며, 뭐하나 먹기에도 따르는 시선들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니까. 물론 개인적 취향에 따라 큰 교무실을 선호하기도 하지만 나의 경우는 무조건 별실이 좋았다. 상대적으로 단란한 살림살이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근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

이나마 숨통을 트이게 했다.


내가 있던 별실의 경우 구성원들로부터 일정 금액을 걷어 간식을 구비하곤 했다. 일반 회사에 다니는 친구는 직원들의 돈을 걷어 간식을 산다는 사실 자체에 경악을 했지만, 회식도 1/n을 하는 곳에서 이 정도는 당연한 관습에 불과했다. 또 다른 관습에 따라 막내가 돈과 함께 원하는 간식 목록들을 수합했다. 주로 커피와 차, 과자류였는데, 평소 밍밍한 맛을 좋아하는 나는 무(無) 맛 크래커를 주문했고, 다른 사람들이 주문한 여러 종류의 간식과 함께 나의 최애템도 도착했다. 사람들은 삭막한 공간을 따스하게 만들어줄 부스러기들 주변으로 몰렸고, 나의 원픽이 가진 심심한 맛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어머, 선생님 그거 되게 좋아하시나 봐요.”

크래커를 먹으며 컴퓨터 작업을 하고 있던  뒤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꽂혔다. 어색하게 웃으며 ,라고 대답했지만 속으론 ‘남이사. 신경 .’ 날렸다. 그건 서막에 불과했다.


정선생님 이거 되게 열심히 먹나 . 벌써 없어졌네.”

? ?  얘기니? 책에 머리를 박고 열심히 문제를 풀던 나는 순간, 고개를 들어  이름이 언급되는 쪽으로 향했다. 간식 진열대 근처에서 나는 소리였다. 간식을 전부 쌓아둔 창고에서 종류별로 조금씩 꺼내 놓고 먹었는데, 꺼내  크래커가 모두 소진되었고,  원인은 나라는 것이었다.


아놔- 먹는 걸로 치사하게 이러기니? 유치하게 이런 거 안 따지고 싶었는데, 나 니들이 주문한 커피랑 차, 다른 과자는 하나도 안 먹거든! 그리고 니들이 그거 처음 보는 거라고 하나씩 집어 먹었잖아! 내가 많이 먹고 이러면 억울하지나 않지,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거든! 내가 한 번 열심히 먹는 게 뭔지 제대로 보여줘?


'언니가 사줄게, 다 먹어.'

' 내가  열받네. 먹는 거로  그러냐 진짜.'

나의 어이없는 상황을 전해 들은 동료들은 분노했다. 순식간에 단톡창을 도배하는 그들의 언어에 조금 마음이 풀렸다. 성이 나서 간식에 손도 안 대다 퇴근해서는 먹는 걸로 얻은 설움, 먹는 걸로 풀겠다며 점심을 위한 새로운 메뉴를 만들었다. 이름하야 토마토 렌틸 커리.


팬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조금 달군 후에 마늘과 양파를 넣고 달달달 볶았다. 쌉쌀한 올리브기름에 온 몸을 내던지며 익어가는 내음이 날카로웠던 신경을 뭉근하게 만들었다. 향이 한껏 올라올 때쯤 꼭지를 딴 토마토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뭉글어질 때까지 끓였다. 붉은 덩어리가 액체로 변했을 때 강황 가루와 가람마살라를 넣었다. 선명한 다홍색이 노란색과 만나 주홍빛으로 바뀌었고, 농도로 좀 걸쭉해졌다. 거기에 소금을 더하고, 시큼한 토마토를 다스리기 위해 약간의 설탕을 첨가했다. 그리고 불려둔 렌틸콩을 투하!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계속 저어주었다.


처음 하는 음식은 늘 약간의 긴장감이 따른다. 게다가 익숙하지 않은 타국의 향신료로 맛을 내는 일은 더더욱 초조하고 설렌다. 간을 보면서도 대체 뭐 때문에 문제인지, 이걸 만회하기 위해선 뭐를 더 넣어야 하는 지를 가늠할 수 없기에. 향신료의 욕심을 버리고 간소하게 끝낸 덕일까. 제법 먹을 만했다.


토마토, 렌틸콩, 강황. 몸에 좋은   들어가 있어. 건강식은 맛으로 먹는  아니다. 알지?”

시식자의 기대감을 낮추기 위해 맛 이외의 다른 강점을 어필했다. 하지만 웬걸, W는 맛있다며 물개 박수로 화답했다. 커다란 빵과 함께 넉넉한 양의 커리를 다 비웠다. 우린 또 해냈다. 다이어트식으로 살찌우는 일을. 괜찮다, 홀쭉해졌던 마음도 더불어 넉넉해졌으니,라고 위로해보지만 그럼에도 조금의 후회가 밀려왔다. 괜찮아. 내일 점심은 적당히 먹어보자,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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