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담아 Jul 11. 2022

간편하게 든든한, 호밀빵 샌드위치

비효율적인 공간에서 즐기는 효율적인 한 끼

너무 무서워.

뭐가?

눈 뜨면 월요일 아침이라는 게.


말도 안 돼. 정말 딱 하루만 쉰 기분이었다. 머리에도, 몸에도 이틀이나 쉰 기억 따윈 없다. 그런데 월요일이라니!! 동료나 아이들을 만나는 기쁨? 음 밖에서 만나면 더 기쁠 것 같다. 월급을 받는 기쁨? 아직 멀었다, 월급날. 흠. 역시 기쁨을 만들 일은 하나다. 도시락. 


주말에 잔뜩 사둔 빵 봉지 하나를 꺼내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샌드위치가 뭐 별건가. 김과 밥만 있으면 나머지 재료가 뭐든 김밥이 되듯이 빵만 있으면 뭐든 샌드위치가 되는 법. 먹음직스러운 호밀빵을 기름 없이 팬에 올려 살짝 굽고, 미리 만들어두었던 시금치 페스토를 발랐다. 그 위에 토마토와 생양파를 올리고 재빠르게 부쳐낸 달걀 프라이를 올린 뒤 다른 빵 하나로 포갰다. 제법 두툼하고 듬직한 샌드위치가 초스피드로 완성! 랩에 촵촵 싸서 도시락 가방에 넣었다. 빨리 점심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설레는 마음으로 출근했다.


오전 직원회의가 끝나자마자 연수가 진행되었다. 온라인 수업에 대한 연수였다. 당장 시험 운영이 오늘 시작인데 연수를 이제 하고 있다니. 정말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곳이다. 주말 내내 문자 폭탄을 감내해가며 스스로, 혹은 동료들과 연구해 이미 알아낸 결과들을 앞에서 읊조리고 있었다. 와우. 늘 그렇듯 역시 연수란 매우 도움이 된다. 내용의 충실성, 시의 적절성, 간결성 모든 면에서 마이너스였다. 지루한 연수는 뒤로 갈수록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게다가 아침식사를 모두 소화시킨 내 위장이 슬슬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살살 달랬다. 조금만 기다려, 금방 샌드위치를 넣어줄게. 자리로 돌아가 업무의 홍수 속에서 바삐 움직이면서도 내내 생각했다. 대체 점심시간은 얼마나 남은 거지. 빨리 먹고 싶었다, 나의 도시락을.


지금 갈까? 

단톡방이 울렸다. 신호탄이었다. 나는 얼른 도시락을 들고 접선지로 향했다. 제법 쌀쌀한 일터의 온도 덕에 냉장고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었던 나의 샌드위치를 펼쳤다. 공교롭게 W도 생일 쿠폰으로 스타벅스에서 사 왔다는 샌드위치를 펼쳤다. 가지런하고도 새침하게 포장된 판매용 샌드위치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나의 투박한 샌드위치. 무엇보다도 압도적인 크기가 포인트였다. 


“우와~ 산 거 같은데?”

의외의 긍정적인 반응에 신이 났다. 샌드위치를 들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약간 무심한 매력의 호밀빵의 까슬한 겉면이 혀에 닿았다. 곧 뒤따라 보들보들한 빵의 속살도 느껴졌다. 넉넉하게 발라둔 시금치 페스토가 스며들어 촉촉함이 배가 되었다. 이미 제 색을 잃고 초록빛과 하나가 되어버린 호밀빵이 낯설지만 싱그러웠다. 마치 수수한 옷을 벗고 최전선을 달리는 패션으로 갈아입은 듯했다. 간을 하지 않고 부쳐낸 달걀 프라이의 고소한 단백질이 호밀빵의 구수함과 함께 다가왔고, 약간 심심할 뻔한 그 조합에 싱그러운 토마토와 단맛이 느껴지는 생양파가 끼어들면서 지루하지 않은 맛을 완성했다. 그 사이에 끼어들어 간 시금치 페스토는 맛을 넘어서 내용물이 빵과 달라붙는 실용적 역할과 상큼한 색감으로 시각적 효과까지 겸비했다. 만족스러웠다. 지루하고도 불필요한 회의와 연수들을 잊을 만큼.

매거진의 이전글 이색적으로 건강하게, 토마토 렌틸 커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