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하는 날 일어난 해물파전 참사

음식 박애주의자 동료들과 즐긴 야식타임

하루 종일 ‘수업(잔소리)-진학지도(잔소리)-자소서 피드백(잔소리)-생기부(절규)’의 무한 반복을 한 우리의 눈빛엔 이미 생명력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 게다가 최근 도무지 탈출하지 못했던 ‘야근-스트레스-폭식-스트레스-체중 증가-스트레스-폭식-스트레스’라는 악마의 순환 주기를 벗어나 보겠다고 소박한 도시락을 싸온 것이 화근이었다. 백설기 두 덩이, 삶은 계란 두 개. 가벼운 점심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그저 도시락 준비할 시간이 없었던 게 더 어울리겠지만 어쨌든, 결론은 같았다. 우린 배가 고팠다. 시방, 위험한 짐승이 되었다.

나갈까? 

그럴까?

그러자.

무엇을 먹을까 고민했다. 먹는 데 있어 취향이 없는 무리를 이끌던 나는 그저 어슬렁거리다 새로 발견한 장소에 들어갔다. 1차로 해물파전을 시켰다. 나른한 풍경에 조금 불안했건만 전이 나온 몰골을 보니 이건 내가 알던 해물파전이 아니었다. 해물파전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새롭게 해석하는 신개념 해물파전이었다. 애초에 기대했던 비주얼은 파와 해물이 중심을 세우고 반죽은 거들기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건 그 방식을 새롭게 뒤집었다. 온통 허연 반죽이 베이스에 듬성듬성 주황색 당근, 파로 짐작되는 초록 물체가 보였다. 해물은 어디에 있는지 오징어와 칵테일 새우를 찾기 위해 숨은 조각 찾기를 해야 할 판이었다. 

“맛있다.”

“진심이야?”

“나도 맛있는데.”

처음엔 그들의 인성에 탄복했다. 손님이 우리뿐인 식당에서 음식에 대한 안 좋은 평이 주인의 귀에 들어가면 마음이 상할까 배려하는, 하얗게 칠한 거짓된 리액션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나 역시 작게 속삭였다. 진짜냐고. 그런데 놀랍게도 진심이었다. 맛있다고 했다. 이런 음식 박애주의자 같으니라고. 아니, 혁신을 아무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 진정한 개방주의자, 관용주의자라고 해야 하나. 기존의 틀에서 벗어남을 조금도 허락하지 못했던, 철저한 극보수주의자였던 나는 도무지 성에 차지 않았다. 2차를 갔다. 야채곱창집이었다. 이미 여러 차례 먹어 익숙했지만 자꾸 생각나는 맛. 스트레스받아서 매운 게 자꾸 생각나서 더 자주 찾게 되는 맛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나는 흑당 밀크티를 먹겠어.”

“역시 배운 사람!”

음식은 삼 세 번! 3차 디저트로 마무리를 해야 진정한 식사를 마친 거라며 우린 3차로 흑당 밀크티를 손에 쥐었다. 실은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으로 직장으로 틀기 위해 무언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달디 단 당분으로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쫄깃한 버블을 질겅질겅 씹으며 불쾌한 마음을 다스렸다. 그리고 향했다 일터로.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