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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담아 Sep 25. 2022

운전을 통해 다시 배우는 인생

엔진경고등이 깨우쳐 준 아름다운 세상

아이 하나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가끔은 어른 하나를 보듬기 위해서 온 세상이 필요하기도 하다. 나이가 적든 많든 인간은 홀로 모든 걸 해낼 수 없고, 혹여 매사를 완벽하게 처리하는 능력이 있다 할지라도 소모된 마음을 보듬을 여유까지 허락되지 않을 테니까. 만약 그런 이가 있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라 신이겠지. 애초에 인간이란 존재는 완벽하지 않으니까. 각자가 가진 그 빈틈을 채워줄 다른 이들과 어울려 다정하게 살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허점도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다. 하필 그 항목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내가 존재하는 일상은 온갖 모자람으로 가득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손길이 있다는 것.


운전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는 별 게 아니지만 별 거인 것들, 자동차 정비에 대한 것이나 세차에 대한 정보나 좌우측 스틱의 사용법, 차에 존재하는 수많은 내부 버튼, 계기판에 숨어 있는 여러 개의 표시등에 대해 잘 알지 못했고, 그럴 때마다 친구들에게 물었다. 그들은 메시지나 전화로 상세하게 답을 해주었고, 때로는 검색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나를 위해 필요한 정보들을 보내주기도 했다. 그 도움의 손길이 최절정으로 치닫던 순간은 군산에서 펼쳐졌다.


직접 운전을 해서 군산에 가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충남과 바로 맞닿아 있어 거리가 그리 멀진 않았지만 행정구역이 바뀌는 탓에 훨씬   곳으로 가는 기분이었다. 구분을 짓고 이름이 붙이는 순간 부여되는 정체성이 갖는 힘은  크니까. ‘군산이라는 표지판을 마주하는 순간, 나름 성공적인 여정이었다.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자동차 계기판에 무언가가 떴다. 처음 보는 표시였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친구가 빠르게 검색을 해주었다. 엔진 경고등이었다. 왜지?  그런지? 순간 정신이 혼미해졌다. 일단 숙소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생각을 정리했다. 친구의 검색 결과, 주황색 등은 큰일은 아니라고 했지만 불안했다. 괜히 친구를 이상한 차에 태우고   아닌지 미안한 마음도 밀려왔다. 1 2 일정을 제대로 소화하기 위해선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일단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아빠는 역시 쿨했다. 괜찮아. 한 마디를 남겼다. 성에 차지 않았다. 서운함과 분노를 억누르고 이번엔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혹시 바빠서 답장을 못할 수 있으니 여러 명에게 동시에 보냈다. 여기저기서 전화와 카톡이 날아들었다. G는 보험사에 전화를 해보라고 했고, P는 정비소에 가라고 했다. 다들 경험한 적이 없는 일이라고 했다. 여러 의견을 종합했을 때, 일단 진단을 받아야 했다. 5시가 넘었기에 시간이 없었다. 가장 가까운 정비소에 갔다. 사장님께서는 보자마자 삼성서비스센터로 가라고 하셨다. 삼성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가장 가까운 두 곳 모두 거리상 내가 도착하면 퇴근 시간일 거라고 했다. 게다가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차를 가지고 와서 뚜벅이 여행을 해야 하는 것인가 머리가 복잡해질 때쯤, J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것저것 질문을 던진 뒤 내 대답을 듣던 그는 엔진 오일을 동네에서 교체했을 때 설정의 문제로 그런 일이 발생한 것 같으니 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아빠가 엔진오일 교체한 지는 꽤 되었는데, 왜 이제 와서 이런 일이 생긴 건지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괜찮다는 그 말을 믿고 싶었다.


“친구가 진짜 많은가 봐.”

그날 저녁 내내 울리는 핸드폰을 보며 함께 여행을 떠난 친구가 말했다. '많은' 친구가 아니라 '좋은' 친구들을 둔 덕이었다. 그들은 모자람이 뚝뚝 흐르는 내가 잘 해결했는지, 어떻게 해결했는지 궁금해했다. 전화 울렁증인 내가 여기저기 전화를 했다는 사실을 듣고 잘했다고 칭찬을 던지는 친구도 있었고, 당장 서울에 가서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해주는 친구도 있었다. 자신이 겪어본 적은 없지만, 엄마의 사례와 유사한 것 같다며 나름의 진단을 내려주기도 했다. 차 때문에 와르르 무너졌던 마음이 그들의 토닥임으로 다시 괜찮아졌다. 물론 친구들 덕에 평온해졌던 마음은 다시 차로 인해 뒤죽박죽이 되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동을 다시 켜봤더니 아무 이유 없이 다시 경고등이 사라진 것이다. 뭐야, 장난해? 이유 없이 오락가락하는 차 때문에,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서울에 오자마자 정비소로 달려갔다. 가는 동안에도 조마조마했다. 아무것도 모르니 눈탱이를 맞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친구에게 들었던 내용을 복기하며 최대한 멍청하지 않은 척 말을 했다. 점검을 마친 사장님은 오일 누수가 원인인 것 같다며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온 김에 차체 아랫부분이 살짝 덜렁거리는 것 같다고도 말씀드렸더니, 나사가 풀린 것 같다며 다 뜯어내서 수리하면 돈이 많이 든다며 끈으로 고정해주셨다. 차체가 낮으니 과속방지턱 같은 곳을 조심히 운전하라고 조언도 덧붙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젊은 여자가 정비소에 가면 이것저것 바가지를 씌운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는데, 그래서 잔뜩 먹은 겁을 먹이 삼아 온몸에 가시를 바짝 세우고 왔는데, 날카롭게 치세운 신경을 내려놓았다. 세상은 삭막하지만 세상은 따뜻하다는 걸 잊고 있었다. 나를 울린 사람도 많았지만 나를 안아준 사람도 많았다는 걸, 나를 무너뜨린 무수한 순간만큼 나를 일으켰던 무수한 순간이 존재했다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


운전을 시작하고 다시 인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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