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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도언 Apr 27. 2021

사귀던 사람이 헤어지자고 할 때

당신이 숨기고 있는 것들 5

기억은 지켜내는 일입니다. 망각의 병인 치매가 늘고 있습니다. 치매 환자는 관심의 대상이지만 환자가 잊은 사람은 관심의 대상이 아닙니다. 잊은 부모도 애처롭지만 잊힌 자식도 딱합니다.      


죄짓고 숨는 사람을 빼고는 누구도 망각의 대상이 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추모회는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행사입니다. 효(孝)를 행하는 제사와 성묘는 조상을 기억하는 행위입니다. 설, 추석, 생신 모임은 살아 계신 분에게 기억하고 있다고 증명하는 것입니다. 집단적 맹세는 자손에게도 중요합니다. 서로 간의 관계를 재확인하면서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굴곡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됩니다.     



어울리며 사는 것이 삶의 본질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잊힌다면 본질이 훼손된 것입니다. 잊힌 사람의 자존감은 흔들립니다. 잊은 사람과 맺은 연결이 끊어진 것입니다. 평소에 편지도 쓰고 카드도 보내는 이유는 잊지 말고 기억해달라는 부탁입니다.           


텔레비전에서 복면으로 정체를 가리고 노래하는 프로그램을 즐겨 봅니다.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면서도 끝까지 못 알아보면 섭섭해합니다. 복면을 벗는 순간 그 사람은 기억을 넘어 다시 태어납니다. 여러 출연자들의 출연 동기가 그러합니다.      


잊힌 사람은 잊은 사람의 행위를 정당화할 ‘이유’를 찾습니다.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으면 마음이 조금 풀어지지만 자존감을 회복하기에는 모자랍니다. 자신이 그 사람에게 그저 그런 사람이었다는 인식은 마음에 흉터를 남깁니다. 잊히는 경험이 반복되면 남이 나를 잊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살아야 하니 삶이 너무 힘듭니다.      


영국 분석가 로널드 페어베언은 관계 추구의 욕구가 인간을 움직이는 큰 힘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망각되는 것에 가장 예민한 사람은 아마도 연예인과 정치인일 것입니다. 그들이 대중에게 잊힌다면 직업적으로 ‘사망 선고’를 받은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일을 막으려고 흔히 무리한 말을 하거나 가짜 뉴스를 퍼뜨려서 주목을 끕니다. 탄로가 나서 악명을 떨치더라도 잊히는 것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사귀는 사람이 헤어지자고 할 때는 차분하게 상황을 살펴야 합니다. 진심으로 헤어지자는 것인지, 잊히지 않으려고 자기 마음에 ‘예방주사’를 놓은 것인지를 헤아려야 합니다. 진심이 아닌 예방주사라면? 자존감이 낮을수록 자신이 잊힐까 불안해합니다. 그 사람이 헤어지자고 하는 말을, 자신의 옆에서 격려하고 위로하며 기억해주길 바라는 소망으로 번역해서 공감하면 관계는 이어질 것입니다.     



욕망의 양면성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기억의 희망이 앞면에, 망각의 소망이 뒷면에 새겨져 있습니다. 사람은 관계를 희망하면서도 홀로 있을 자유를 소망합니다. 사랑과 미움을 같은 사람에게 동시에 느끼는 양가감정과 비슷합니다. 이는 무의식의 작용이어서 스스로는 거의 깨닫지 못합니다.  

    

같은 공간에 있어야만 잊지 않고 잊히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에 저장된 그 사람의 이미지를 불러올 수 있다면 잊지 않고 잊히지 않습니다. 왜 다 큰 어른이 급할 때 ‘엄마’를 소리 내서 찾을까요? 눈앞에는 없어도 마음속 엄마가 도울 수 있다는 평소의 믿음이 갑자기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잊어버리는 것보다 심한 망각이 있을까요? 과거의 나에게 매이면 현재의 나를 잃어버리고, 내 정체성과 삶의 소명을 잃어버리게 되면 인생이 흔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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