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독식, 소수가 다 갖는다
신자유주의는 딩크를 더 딩크로 만든다-책 리뷰 포함
승자독식.
한 사람.
혹은 어떤 그룹의 상위 소수 계층이 독식한다.
잘하는 사람 한 명을 탓하는 게 아니다.
현대 사회가 그렇다는 의미다.
사회의 범위는 옛날처럼 지역사회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것의 모든 정보가 바로 전 세계로 퍼진다. 그것도 거의 실시간으로.
하다못해 김밥 하나도 그 동네에서, 그 지역에서 어디가 유명한지, 어디가 맛있는지, 결과가 전부 전시되고 공개되어 있다.
대중이 집합적으로 모아놓은 리뷰가 점수화, 통계화되어 이를 돕는다.
브런치의 글도 마찬가지고, 동네 빵집도, 밥집도, 중소기업도, 대기업도 전세계로 보자면 마찬가지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이 모든 과정이 구조화되어 있어, 종국에는 극소수의 승자가 독식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그리고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정체성은 이런 결과를 당연히 받아들이도록 종용한다.
책 [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 가는가- 신자유주의적 인격의 탄생/ 파울 페르하에어 ]
책 리뷰를 잠시 쓰도록 하겠다.
책은 말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현대 사회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빚으로 산 우울한 향락]이다.
신자유주의에서는 성공이 새로운 도덕기준이다.
새로운 비도덕적 인간은 실패자이다.
신자유주의 능력주의는 성공이 노력과 재능에 달려 있다고 사기를 치고있다. (애초에 성공에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인데도.)
그래서 어떤 사람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오롯이 한 개인의 잘못으로 귀결된다.
끝 모를 무한 경쟁을 부추기고, 개인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비인간적인 계산법이 당연시 된다.
그래서 신자유주의적인 교육의 중요한 목표는 '자기 관리'와 '기업가 정신'이다.
자신의 시장 가치를 높이라고 종용하며, 경쟁과 개인주의를 장려한다.
이런 교육은 연대감이라고는 모르는 경쟁적인 개인주의자들을 양산해 낸다.
정체성은 항상 '당사자'와 넓은 환경의 상호작용이 만들어 내는 산물이다.
우리가 계속 주입받는 현대 환경의 상호작용은 극도의 개인주의와 더불어 집단적 소비주의다.
종국에 성공에 이르지 못한 우리의 정체성은 패배감에 물든다.
신자유주의가 내세우는 자기 관리는 영원한 젊음이며, 기업가 정신은 엄청난 경제적 성공으로 대변된다.
하지만 그들의 이상적 규격(영원한 젊음-모델같은 몸, 경제적 성공-막대한 부를 쌓은 영 앤 리치)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기에 우리는 그들을 볼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죄책감과 함께 자기 환멸과 우울감을 겪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잘 살지만, 가장 기분이 나쁜 사람들이다.
승자가 독식하는 세상은 우리에게 무기력한 자유로움을 제공한다.
여기서 자유란 한 가지 조건을 달고 있다.
경제적 성공이 그 조건이다.
성공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말한다.
실상 대다수는 그런 성공에 접근할 수 없는 구조인데도, 그것을 강요하기 때문에 모두가 패자가 된다.
인생의 패배자가 된 것 같아 수치심이 들고, 빚을 내어 성공한 사람과 같은 소비를 한다.
우울한 쾌락주의가 만연한 것이다.
저자는 이런 신자유주의적 사회를 바꾸기 위해선 무엇보다 생활 방식을 바꾸라고 한다.
막연한 냉소주의를 버리라고.
소비자에 머물지 말고 깨어 있는 시민이 되라고 한다.
여기까지가 내 나름대로 정리해본 책 리뷰다.
저자처럼 그 모든 과정을 책으로 논술할 만큼의 논리는 갖추지 못했지만, 아주 어려서부터 이 모든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요즘은 그보다 더 어린 아이들이 이 모든 것을 몸소 느끼고 있을 것이다.
사회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이미지가 모두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을 처음으로 읽었을 때,
나는 내가 딩크가 된 두 번째 가장 큰 이유가 그대로 적혀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좋은 부모가 될 인간적인 자질이 있는가가 딩크가 된 가장 큰 이유였고.
두 번째는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와, 전 세계적인 현대 사회의 특성 때문이었다.
대한민국만큼 성공 신화에 집착하는 나라가 있을까.
대한민국 자체가 이런 신자유주의적 성공신화로 세계에 그 이름을 드러낸 나라다.
어쩌면 대한민국이야말로 이 책이 말하는 신자유주의적 인격이 국가의 형태로 형상화된 곳이 아닐까.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남들보다 못 사는 것, 남들보다 못 배운 것, 남들보다 적게 벌어 놓은 것.
남들보다 뚱뚱한 것, 남들보다 자기 관리가 되지 않는 것.
누군가는 패배자의 변명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책을 처음부터 다 읽어보면, 애초에 그들이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게 이미 사회 구조가 시스템화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아무튼, 나는 내가 이런 사회에서 인격적으로 훌륭한 성인을 키워낼 그릇이 되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더 딩크가 되는 게 맞다고 여겼다.
왜냐면 이 흐름대로라면 나는 그저 또 한 명의 우울하고 음울한 향락을 즐기는 현대 소시민을 양산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나약한 한 개인의 변명처럼 들려지는 것이 그저 쓰라릴 뿐이다.
여러 국가적 재난에 딩크로 갈팡질팡하는 혼란스러운 마음까지 더해지니, 마음이 끝없이 가라앉는다.
2025년 새해를 앞두고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생각해 본다.
그저 지금까지처럼 평범하게 앞을 보며 한 걸음씩 살아 나가겠지만,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태도로 발을 떼야하지 않을까 고민해 보게 된다.
이런 문구가 기억난다.
악의 평범함만큼 선의 평범함도 현실이다.
승자독식으로 누구 하나 잘 사는게 아니라, 모두 공생으로 다 같이 잘 살수는 없을까.
선의 평범함에 그 한 발을 내딛어야 할 것 같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