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대하는 자세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그리스 로마 신화] 책 리뷰- 필립 마티작

by 김험미

아마도 활자 중독자를 자처하는 모든 분들은 활자를 섭취(?)하는 데 있어 잡식일 것이다.

어떤 내용이든 가리지 않는다는 의미다.

나는 편식이라곤 없는, 그야말로 잡식 중의 잡식으로, 여러 종류의 책을 좋아한다.

이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책 리뷰를 하게 될 듯한데, 아마도 그런 잡식 성향이 리뷰 목록에서 드러날 것 같다.


다만, 오늘 리뷰할 책은 잡식과는 관계없는 마치 밥과 같은 책이다.

기본 중의 기본.

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스 로마 신화에 관련된 책이라면 굳이 활자 중독자가 아니더라도, 다들 몇 권씩은 읽었을 것이다.

최소한 어렸을 때, 만화책 종류라도 한 두 권은 보았을 것이다.

나도 여러 버전의 그리스 로마 신화 책들을 읽었는데, 갑자기 오랜만에 이쪽 책이 땡겨서(?) 새로운 작가의 책을 빌려보게 되었다.


필립 마티작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그리스 로마 신화라는 책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다른 그리스 로마 신화 관련 책들처럼 신화의 시작부터 신들의 줄기와 그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보는 아주 흥미로웠던 내용과 관점이 있었다.

그 부분에 대해 적어볼까 한다.


모이라이 (모이라이는 페이트 Fate라고도 부르며, 닉스의 자녀들이다. 그리스어로는 무엇인가를 정하고 나누어주는 사람이라는 뜻이다.)로 인해 인간의 생존 기간 중에 일어나게 될 일은 사전에 대충 결정되어 있다고 믿었으며, 중요한 것은 주어진 운명에 대해 인간의 영혼이 어떻게 대처했느냐 하는 점이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인간의 성격도 태어날 때부터 미리 형성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인간이 자신의 전 생애에 걸쳐 미리 정해진 행로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 운명의 여신들이 미리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자신이 선천적으로 고귀한 존재임을 믿고 성격을 시험당할 때 자신의 고귀한 본성에 알맞은 대응을 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인간은 사는 동안 무엇을 이루었는지에 대해 심판받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운명에 맞서 고귀한 정신에 어울리는 도전을 했는가에 대해 심판받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울림이 큰 내용과 관점이었다.

요새 부쩍 드는 생각들이 책에 그대로 적혀 있는 기분이었다.


인간이 운명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의미.


우리는 매 순간 내 의지로 선택을 하며 살고 있지만, 사실 그 선택은 이미 한정된 조건(내 유전인자, 유전과 환경에 따라 형성된 성격, 선천적으로 주어진 재능과 능력, 주위 환경 등은 이미 강제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내에서의 선택이나 다름없다.


그런 한정된 조건들이 나를 인도해 가는 방향성을, 어쩌면 우리는 운명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말한다.

지상을 여행한다는 것은 마치 체육관에서 영혼을 단련시키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나 역시 요즘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이 결국은 내 영혼의 단련이 아닐까 하는.

무신론자의 뜬끔없는 영혼과 운명 타령일 수도 있으나, 영혼의 단련이라 생각하며 인생의 질곡과 세상사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조금 더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다.

약간의 이해와 체념이 섞인 관대함은 긴장된 삶의 태도를 조금쯤 누그러뜨려 준다.


한 그리스 신앙에 의하면 영혼이 망각의 강물 대신 근처에 있는 기억의 강물을 마시면, 환생할 때 살아 있을 동안의 기억을 온전히 갖고 태어날 수 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잘 기억해 두었다가, 기억의 강물을 마셔보자.

다음번엔 소위 말하는 인생 2회 차, 인생 몇 회차쯤 되면 인생을 사는 게 조금쯤은 쉬워질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아무튼 이번이 인생 1회 차인 나는 운명에 맞서 어떤 도전을 하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잘 생각해 봐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