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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초기 하혈

임신 중 이벤트가 생겼을 때 마음가짐

by 김험미 Mar 14. 2025

얼마 전부터 나는 모든 일을 중단하고, 그야말로 눕눕(화장실 가는 것을 제외하고 종일 침대에 누워 절대 안정)을 시전하고 있다.

사건은 이전 글 40대 딩크, 첫 시도에 자연임신 하다에 쓴 것처럼 하혈 때문이었다. 

임신 6주 2일, 병원에서 처음으로 심장 소리를 듣고 왔다.

아기집 모양이 살짝 찌그러진 것 말고는 괜찮다며, 모양은 점점 자리 잡으면서 괜찮아질 것이라는 말을 듣고 왔는데.


다음날.

갑자기 배가 평소와 다르게 콕콕콕 아픈 게 아니라, 일순 푹 후비듯 아팠다.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갔는데......

바지를 내리자마자 화장실 바닥과 속옷 위로 붉은 피가 후두두둑 쏟아져 내렸다.


그 순간의 느낌은.


까마득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하혈=유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튼 그때 느낌을 글로 표현하긴 어렵다.


변기에 잠시 주저앉아있었는데, 변기물은 시뻘겋게 물든 채였다.

곧장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고, 가는 중에 남편에게 소식을 전했다.

사무실에 있던 남편은 보이진 않았지만, 목소리만으로도 그 충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병원에 도착해 진료실에 앉으니, 그제야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초음파를 보기 위에 탈의하며 보니 피가 생리대를 가득 채운 상태였다.

선생님은 피가 많이 나서 쓸려간 건 아닌가 했는데, 다행히 아기집은 멀쩡하다고 하셨다.

심장 소리도 좋다고 하셨다.


내가 한시름을 놓기 무섭게, 선생님은 전체적으로 피가 많이 고여있고, 아직도 출혈이 계속되는 부분이 보인다면서... 앞으로도 계속 상당한 양의 피가 나올 거라고 얘기해 주셨다.

주사와 질정을 처방받고 다음날 다시 진료를 보기로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대기 공간 소파에 앉아 울면서 남편과 통화했다.

어쨌든 지금은 괜찮다고.


몇 번을 경험한다 한들 나아지진 않겠지만, 처음 하혈을 경험하는 임산부께 말씀드리자면...


아기는 강하다.


비록 하혈이 좋은 신호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우선은 최대한 침착한 마음을 유지하자.

그리고 병원에 가자.


물론 필자도 병원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전혀 침착하지 못한 상태로 별의별 생각을 다 했다.

나이가 많아 이렇게 되었나부터... 뭔가 잘못한 행동은 없었는지 되짚는 것까지...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가장 많이 든 감정은 엄청난 자책이었다. 

젊고 건강한 시간 다 보내고 나이 먹어 이제야 아기를 갖더니, 그래서 그런 거다...

배가 아플 때마다 결국 자업자득이라는 죄책감의 칼날이 복부를 찌르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아기는 견뎌냈고, 다음날 의사 선생님은 초음파를 보자마자 '딱 하루치만큼 또 컸네요'라고 하셨다. 

심장 소리도 더 우렁차고 박동도 빨라져 있었다.

아기는 바깥의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또 하루치만큼 열심히 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말이 얼마나 기특하고 다행인지.


그 뒤로 피 덩어리도 나왔고, 다시 붉은 피가 나오기도, 갈색 피가 비치기도 했다. 

그래도 아기는 8주를 지나 9주만큼 제 몫을 다해 열심히 크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시기를 무사히 지나기 위해 근 3주간 열심히 눕눕 하고 있다.


아무 이벤트 없이 만출한다면야 최선이겠으나,

이벤트가 있더라도 출산까지... 엄마도 아기도 무엇이든 이겨낼 것이다.

생명은 강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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