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혼자 있는 방에서 좀 울었다. 무슨 억겁의 시간을 관통한 애절했던 사랑을 잃은 드라마 주인공처럼. (대충 도깨비 공유나 별그대 김수현을 떠올리면 됨.) 그러다가 눈물이 뚝, 하고 무슨 수도꼭지를 야무지게 잠근 것 마냥 멈췄다. 수도꼭지도 채 제 주둥이를 여닫지 못하고 뚝 뚝 한 방울씩 아리수를 떨어뜨리기 마련인데.. 난 정말 뚝, 하고 멈췄다. 사실 놀랄 일은 아니다. 난 늘 이렇다. 눈물이 오래 안 간다. 그러니까 한 2분가량 아주 꺽꺽대고 울고 나면 정말 아주 약간의 여운도 없이 눈물이 갑자기 멈춘다. 그리고 바로 내가 방금 울었었어? 하는 머쓱한 상태가 되고 만다. 슬픔의 꼬리는 온데간데없고 어디서 와장창 하는 소리가 들리듯이.. 그래서 방금까지 발리에서 생긴 일 조인성처럼 울던 나를 내가 스스로 조롱하고 싶어 지는 그런 감정이 몰려온다.
내가 왜 울었는지를 설명해보겠다. 갑자기 미래가 너무 막막하게 느껴졌다.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날 덮쳤다. 이럴 때 마감이 일주일 정도 남은 ytn 자소서를 마저 쓰거나, 아니면 다음 주 화요일로 예정되어있는 스터디 과제를 시작했다면 더 좋겠지만... 내가 애초에 그런 애였다면 이피엘을 갔겠죠.. 박지성도 손흥민도 아닌 난 네이버에 '취업운' , '사주', '사주 용한 곳' 따위를 검색했다.
난 해마다 한두 번은 샤머니즘의 도움을 빌렸다. 시작은 애정운이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늘 연애라는 게 하고 싶었지만 여중 여고를 나왔고 대학 와서는 뜻하지 않게 아싸였던 난 그게 쉽지 않았고... 스물 하나까지 모쏠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스물 하나는 모쏠인 게 당연한 나이가 아닐까 싶지만, 당시 난 벚꽃과 함께 연애를 시작하는 무수히 많은 친구들을 보며 난 평생 저런 감정을 느껴보지 못할 것 같다는 실체 없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래서 타로를 보며 나의 연애운을 탐색하곤 했다. 그러다가 문득 타로는 그냥 말장난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태어난 연월 생시, 내 신상정보가 털리는 찝찝함 정도는 내줘야 얻을 수 있는 빅데이터. 사주라는 것이 조금 더 신빙성이 있다는 지극히 어른 같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종종 사주를 봤다. 그리고 이 일, 그러니까 'pd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하면서부터 사주를 끊었다. 왜냐면... 이 일이 정말 하고 싶어 졌는데, 이왕 오랜 방황을 마치고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누가 단호하고 자신만만 목소리로 "그건 안돼!"라고 말해버리면 나도 몰래 침을 퉤! 뱉어버리지는..... 못하고 마음속으로 꿍얼거리다 다 결국 나의 실패를 내 운명의 실패로 돌리게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줄줄이 사탕으로 서류 탈락을 맞이하고, 약간 될 대로 돼라 하는 마음이 들었다. 진짜 이 길이 아닌 것인가? 그럼 난 뭘 해야 하지? 답답해서 사주를 보고 싶었다. 네이버에 검색하니 우리 집과 아주 가까운 곳에 용한 사주 집이 있단다. 그런데 주인장이 아주 말이 짧고 불친절하단다. 그쪽 세계에서는 불친절이 셀링포인트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뭔가 더 용해 보이는 느낌... 약간 욕쟁이 할머니 같은 거다. 똑같은 msg 쳐도 더 구수하게 느껴지니까. 그런 걸 알고 있음에도 난 그리 멘탈이 단단한 편이 못된다. 분명히 2만 원 내고 기분만 더 더러워져서 돌아올 거다. 그건 또 못 참는다. 2만 원이면 내가 좋아하는 노랑 통닭 알싸한 마늘치킨 큰 사이즈를 시켜먹어도 2천 원이다 더 남는다.
그래서 대충 저렴하면서도 내 니즈를 채워줄 수 있는 온라인 사주사이트를 찾았다. 실은 며칠 전 아시아경제 사이트에서 무료로 신년 토정비결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경제신문지와 토정비결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갑 가벼운 백수에게 무료로 떠먹여 주는 토정비결은 그저 감사한 선물이다. 그래서 봤는데... 봤는데.. 오 마이 갓.. 무슨 세상 모든 행운을 내게 몰아주는듯한, 찬사 그 자체의 황송한 단어들의 일색이 아닌가... 매달 금가루 뿌려놓은 레드카펫 위를 람보르기니 타고 달려가는 수준이길래... 또 의심병이 도진 나는 2020년 토정비결을 클릭해봤다. 역시 무료였다. 그런데 또 2020년 토정비결은 한 해 전체를 똥통에 처박아놓은 마냥 구린내가 풀풀 나는 게 아닌가.. 정신승리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유레카.. 내가 5연속 서류광탈을 한 이유는 여기 있었다...
이때 멈췄으면 좋았을 거다. 모든 게 해피엔딩. 하지만 인간의 호기심은 끝이 없고 늘 실수를 반복한다. 꿀꿀했던 난 내게 좋은 말을 아낌없이 해줬던 아시아 경제에게 한 번 더 빚을 질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아시아경제의 토정비결은 무료였는데, 또 신년운세는 유료였다. 6천 원. 토정비결과 신년운세가 뭐가 다른지는 모르겠지만, 신년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으니 신년운세도 봐보는게 좋을 것 같았다. 싸가지 없(으시)기로 유명한 xx 사주 아저씨와는 달리 상냥하고 공감능력이 높으며 아마도 그 분보다도 용할 것이 틀림없는 아시아경제야.. 내가 뜨끈한 순두부찌개 사 먹을 수 있는 6천 원을 네게 사사할 테니 너 역시 그에 대한 보답을 해주지 않으련...? 그러니까 내가 원한 건.. 답정너였다.
씨이바아... 왜 그랬어. 왜 그래야만 했어... 내가 다른 거 바랐어? 그냥 입 바른말해줬으면 됐잖아. 없는 살림에 6천 원이나 냈는데...
지식인들이 넘쳐나는 브런치에서 더 이상의 상스러운 욕을 하지는 않겠다...
그냥 지금 내가 궁금한 거.
(1). 토정비결이랑 신년운세는 대체 뭐가 다른 건가요?
(2). 지금의 노력은 도대체 언제, 언젠가 반드시 보상을 받는 건가요?
그 누구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해주지는 못하겠지만, 아무튼 여기까지가 내가 침대에 걸터앉아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약 2분 동안 오열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