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별하구름 Oct 27. 2024

13. 정직원(2)

소설


팀장은 그 뒤로도 본인의 뒤틀린 성격을 줄곧 뽐냈다. 점심시간 사내 식당에서 하필이면 팀장과 같은 상에서 밥을 먹게 된, 실로 운수 좋지 않은 날이었다. 배고팠던 터라 별생각 없이 밥을 즐겁게 먹고 있는데 팀장의 한 마디가 내 소중한 식사 흐름을 끊었다.

"풀잎 씨는 외국어 할 줄 아는 거 있나?"

또 왜 저러나 하고 경계심이 들었다.

"아니요, 제가 언어 쪽에는 재능이 없어서요. 한국말만 잘합니다."

그러자 같은 상에서 식사하던 동료들이 웃으면서 재미있다는 반응을 했다. 웃기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지만 밝아진 분위기에 만족스러워 반찬 한 입을 이어 먹으려는데, 내 답변이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팀장의 말이 또 치고 들어왔다.

"풀잎 씨는 젓가락질 좀 배워야겠다. 이런 회사에 입사한 훌륭한 인재인데 젓가락질은 잘해야 하지 않겠어?"

하, 저런 대사는 드라마에서나 들을 법한 말 아니었나. 젓가락질을 지적한 사람이 살면서 처음이라 놀라기도 했다. 11자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일 뿐 젓가락질을 잘하는 편이라 반찬을 놓쳐본 적도 남에게 피해를 준 적도 없었다. 오히려 본인 식사에 집중하지 않고 단점을 찾아내고자, 타인이 밥 먹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소름이 끼쳤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모를 팀장의 발언에, 그렇다면 본인은 젓가락질은 그렇게 잘하면서 왜 남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짓을 일삼으며 단 한 번의 귀한 인생을 사는지에 관해 묻고 싶었다. 입맛이 뚝 떨어졌지만 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코웃음을 치며 무시하곤 식사에 집중했다.

부장의 활약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놀랍지 않게도 회식에서 술을 강요하는 인간이기까지 했다. 모두가 원샷을 해야 하는 강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놓고 어떤 직원 한 명이 알코올이 몸에 받지 않는다며 말을 하자, 그래도 마셔야 한다며 떼쓰는 아이처럼 끝도 없는 고집을 계속 부렸다. 소란에 그 직원은 결국 이제 됐냐 하는 똥 씹은 표정으로 술 한 잔을 들이켰다. 그제야 흡족한 듯 미소를 짓는 팀장의 표정이 압권이었다.

그런 팀장에게도 배울 점은 있었다. 아마 팀장의 말과 행동을 기록해나가면 '인생을 이렇게는 살지 말아야 한다'라는 좋은 교훈이 담긴 책 한 권을 뚝딱 쓰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보약은 매번 개수까지 세어가며 혼자 숨어 음용하면서, 술은 저렇게까지 강요하는 심리가 궁금했다. 자신은 이미 망가져버렸으니 타인도 망가지길 바라는 못된 심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좀비처럼.

가장 최악이었던 건 내게 던진 취중진담이었다.

"내가 풀잎 씨 왜 싫어하는 줄 알아? 너무 해맑아 보여서 싫어! 그런 척하는 거지? 그게 마음에 안 들어... 다들 내가 뭐라 한 마디 하면 찍소리 못하고 설설 기거나 우는데 풀잎 씨는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는... 참 마음에 안 들어, 쯧쯧."

충격이었다. 나를 싫어하거나 마음에 안 든다는 사실이 충격인 게 아니라, 그동안 자신이 내세운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시비를 걸면서 더 괴롭혔다는 건가? 해맑은 척은 어떻게 하는 걸까? 어이가 없었고 의문투성이였다. 또 해맑은 모습이 싫다는 건 본인의 삶이 얼마나 지옥이길래 이유 없이 타인을 공격하고, 또 굳이 이유를 만들어내 미워하면서 살아가는 것인가 하는 애잔함까지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때 팀장에게 들었던 애잔함은 우스움, 회의감, 분노, 슬픔 등이 섞인 복합적인 감정으로 몸집이 커지게 되었다.

각 부서의 팀장들이 진행하는 중요도 높은 회의 날이었다. 삼엄한 분위기 속 팀장이 발표를 해나가는데, 횡설수설해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였고 준비한 자료조차 엉망이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팀장의 모습에 발표를 보고 듣던 이들이 더 민망해했다.

회의가 끝이 나고 신입사원들 단톡방에는 불이 났다. 저렇게 실력이 없는데 애초에 어떻게 입사한 거며, 누가 누굴 가르친 거냐면서 원성이 자자했다. 다들 팀장으로부터 보고서가 던져진 적이 있는 일원들이었다. 그동안 소리쳤던 게 자신감이 아니라 자존감이 낮은 데서 오는 분노였다는 것에 확신을 갖게 해준 사건이었다. 하찮은 사람 때문에 받았던 스트레스마저 몹시 아까울 뿐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