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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하구름 Oct 27. 2024

14. 두 번째 문

소설


그럼에도 나의 회사 생활이 점점 힘들어져 갔던 건 팀장 때문만은 아니었다. 신입사원 때는 드러나지 않았던 진실이, 1년의 병아리 시절이 지나가고 중요한 일을 맡게 되면서 서서히 드러났다.

이곳에 입사하고 싶었던 이유는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 기업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일을 하면서 마주한 진실은, 마냥 좋은 일을 하는 곳으로 세상에 비쳤던 건 누군가 나쁜 면을 덮어주고 감춰주면서 포장해냈기에 가능한 이미지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누군가는 당연하게도 조직 내 일원들이었고.

세상 일이 그렇다는 걸 깨닫게 된 건 세상을 알만큼 알고 난 후였다. 아니 실은 진작부터 알면서도 애써 부정하며 내 가치관과 부합하는 곳이 어딘가는 있을 거라 믿고 싶어 한 건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꿈을 위해 몇십 년을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착각한 꿈이었단 걸 인정하기 싫었을 테니까.

회사에 입사했을 땐 꿈을 이뤄 마냥 기뻤는데 꿈이었던 이유가 거품을 걷어낸 듯 싹 사라지고 나니 마음이 텅 비어 허탈했다. 그래서 꿈이 아닌 그저 돈을 벌고자 다닌다 생각하며 괜히 헛헛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지인들을 더 자주 만나고 취미생활도 해 보고 소비도 하며 나를 달래기도 해보았지만, 전혀 달래지지 않았다.

나라는 사람은, 열정을 가지고 항상 하고 싶은 일만을 좇았는데. 회사 생활을 하면서 배운 점은, 조직 내에서 튀지 않기 위해 일을 덜 열심히 해야 했고 열정은 적당히 보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채용할 때는 창의적인 인재를 원했지만 입사 후에는 회사의 색깔에 맞춰 비슷하고 평범한 일원이 되어야 했다. 난, 세상과 누군가에 해를 끼치지 않는 좋은 일만 하고 싶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고 일이 힘들어도 해내는 성취감을 았다. 비록 그게 돈이 되지 않는다 해도.

그런데 지금은 모든 게 반대 방향을 향해 있었다. 주변에서 어디 다니냐고 묻거나 자기소개를 할 때면 내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자랑스러웠는데, 이젠 더 이상 자랑스럽지가 않았다. 남들은 부러워하는 수식어인데도 나는 내 스스로가 부럽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든 걸 알았는데도 너무 많이 와 버려서 다시 돌아가기가 막막했다.

사무실에 우두커니 앉아 동료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표정에서 어떤 감정도 생기도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마 의욕이 느껴지는 직원은 조용히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래가 순식간에 그려지는 듯했다.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단 걸 깨달았음에도 합리화하며 이대로 계속 가는 것이 맞을까 하는 회의감이 몰려왔다.

꿈을 가졌던 죄와 벌일까. 꿈 하나 보고 달려왔는데 내 욕심이 너무 컸을까. 차라리 꿈을 꾸지 않았더라면 꿈이 없었더라면 실망도 덜 했을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니까. 희망을 가져다주던 꿈이 절망을 가져다주니 배신감이 컸다. 꿈이란 단어가 마냥 허상처럼 느껴져, 싫어지고 거부감까지 들었다.

끝내 버리기엔 아까운 수식어를, 그리고 수식어를 위해 노력해 온 수많은 세월을 과감히 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사표를 내었다.

하지만 퇴사 후에도 미련이 자꾸 남았다. 열심히도 쌓아온 세월을 한 번에 놓아버리기란 쉽지가 않았다. 현실에 타협해 보며 다른 곳은 다를 거라며 그나마 마음에 드는 한 곳에 다시 지원서를 내고 시험을 봤다. 결과가 공개되고 난 소수점 몇 점 차이로 탈락했다.


그 순간, 다행이다 하고 안도감이 들어 놀랐다. 나도 모르던 내 마음을 나한테 들키고 만 것이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꿈에서 낭떠러지로 떨어져 화들짝 놀라 깨어난 것처럼 정신이 번뜩했다.

그래서 이제는 미련마저 버리고 이 의미 없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원하지 않았고, 치열한 경쟁 속 누군가는 간절할 기회를 간절하지 않은 미련으로 앗아갈 자격도 내겐 없었다.

결승점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시야에서 결승점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앞뒤로 자신 있게 흔들며 움직이던 팔다리를, 당황한 나머지 허우적거리다 이내 곧 우뚝 멈춰 섰다. 계속이고 뜨겁게 솟아나던 땀은, 움직임을 멈추자 곧 차갑게 식어버렸다. 나를 빠르게 지나쳐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만 땅밑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기분이었다.


식어버린 땀마저 모두 증발해버리자, 난 어딘가로 달려가는 다른 이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 길 옆으로 빠져나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마음에 균열이 생기며 조각이 나, 자꾸만 부스러기가 나왔다. 첫 번째 문이 닫히고 막혀있는 공간인 줄로만 알았는데, 안쪽에 두 번째 문이 또 바로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 두 번째 문마저 닫혀버렸다. 몸을 웅크린 채 눈을 지그시 감으니, 한동안 고요한 어둠만이 날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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