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iano Tuner's Wives
"아주 오랫동안 남편의 팔을 잡아주었던 여자.
피아노를 살살 달래 되살아나게 하는 남편을 여러 집으로 방으로 안내한 여자가 여전히 자기 존재를 주장하고 있었다.
성가신 유령, 불확실하게 존재하는 어떤 용서 없는 망령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일부가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 안에 남겨진 것 같았다."
(<비 온 뒤>, 한겨레출판, 2016)
뛰어난 미모를 가졌음에도 그 미모는 맹인인 남자 앞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벨은 그 남자, 드롬굴드의 첫번째 아내가 죽은 뒤에야 그를 차지한다. 59세. 이제는 늙어갈 일만 남아 있는 때에 앞을 못 보는 남편을 맡아 돌보는 일이 쉬운 일일까 싶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남편의 전처, 바이올릿이 죽은 것 같지 않다. 남편의 일생을 같이 했던 그녀가 아직도 집안 어디에선가 숨쉬고 있는 것 같다. 전처의 눈으로 세상을 보아왔던 남편은 사고의 틀마저 전처의 것을 가져왔다. 죽은 사람과 싸워야 하는 벨의 고군분투는 과연 성공할까.
자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상대와 잘 맞을지도 잘 파악한다. 드롬굴드가 벨이 아닌 바이올릿을 처음에 선택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맹인인 그에게 여자의 미모는 그다지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었다. 그보다 강한 생활력이 중요했다. 또한 벨이 드롬굴드를 기어이 선택한 데에도 역시 이유가 있다. 마을에 그만한 남자가 없었다. 어쨌거나 '살아 있는 사람이 늘 이기는 법'이기에, 흰 것을 검다 하고, 검은 것을 희다 한다 해도 드롬굴드는 결국 벨을 따르게 될 것이다. 그것이 평생을 기다린 여자에겐 그나마 공정한 일이니까.
최근 들어 단편소설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빠져 있었는데 이런 글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의 삶 혹은 인간관계를 슬쩍 들여다보는 눈길’- 아일랜드 작가 윌리엄 트레버가 내린 단편소설의 정의다. 이보다 더 명쾌할 수 있을까. 그의 작품 또한 온도가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작은 탄성과 함께 시선을 멈추게 한다. 잘은 모르지만 트레버씨는, 참 재미있는 그리고 멋진 하지만 무서운 아저씨다. 그의 작품을 읽어가면서 주목하고 싶은 구절과 짧은 단상을 함께 정리해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