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0월. 춘천마라톤 완주했다는 자랑글이 마지막이었으니, 7개월 만에 다시 "달리기"라는 단어를 적어보는군요.
그동안 달리기에 대해 침묵했던 이유가 '마라톤을 끝으로 달리기는 이제 질려버렸어.' 뭐 이런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이유로, 달리기와 잠시나마 애틋한 별거를 했다고 표현하는 편이 맞겠네요.
마라톤은 권태로운 일상에 던져진 꽤나 강렬한 이벤트였습니다. 일상 속에서 쪼그라들었던 자신감은 완주라는 경험을 통해 어느 정도 회복되었고, 무엇보다 규칙적인 생활 습관과 건강한 몸 또한 획득했으니까요. 여러모로 제 삶에 도움이 되었던 소중한 경험입니다.
하지만, 첫 마라톤을 비교적 무난히 완주했다는 사실과, (제 기준) 만족스러웠던 기록은 독이 되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면, 대회 후 저는 은근히 우쭐해져 버렸습니다. 조깅을 할 때마다 '나는 이제 풀코스 마라토너'라는 허황된 자부심에 사로잡혀, 이전의 평범했던 페이스보다는 무조건 더 빠르게 뛰어야 할 것 같았고, 익숙했던 5km 거리는 어쩐지 부족하다는 오만한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대회 후, 아무런 체계적인 계산 없이 조깅 거리를 두 배로 늘렸고, 숨이 차오르는 무리한 페이스로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열흘 쯤 그렇게 무모하게 달려댔으니, 몸에 탈이 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허리에 묵직한 통증이 찾아 온 것이죠. '아마도' 급격하게 훈련 강도를 높여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사실 거의 '확실한' 이유였을 겁니다.
저는 이쯤에서라도 훈련량을 줄였어야 했지만, 4개월 뒤에 있을 "동아마라톤"에서 더 향상된 기록증을 손에 넣고 싶다는 욕심에 훈련을 강행했습니다.'허리디스크엔 달리기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서울대 정선근 교수님의 희망적인 말씀만 쏙 골라 듣고 마음의 위안을 삼으면서요. 허리를 짓누르는 통증은 목표 기록 욕심 뒤에 애써 감추고 모른 척 외면해 버렸습니다.
결국, 현실을 외면한 어리석은 행동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얼마쯤 지나자, 통증은 걷잡을 수 없이 심해져 평범한 걸음조차 버거워 진땀이 났습니다. 가벼운 산책조차 사치스러운 일이 되어버린 후에야, 비로소 욕심을 내려놨습니다. 그제야 달리기를 잠시 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몇 달이 지난 지금, 신기하게도 그 지긋지긋했던 통증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습니다. 다리를 타고 흐르던 찌릿한 방사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지니, 이제야 겨우 숨을 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동안 냉랭한 이별을 고했던 달리기를 조심스럽게 다시 소환합니다. 마치 오랜만에 헤어진 연인에게, 혹시 하는 마음으로 "자니?"라는 문자를 보내는 것처럼 말이죠.
천천히, 아주 조금씩, 녀석과 다시 서먹했던 관계를 회복해 나가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서두르지 않고, 몸의 작은 신호에도 귀 기울이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