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막글 발행

부러우면 지는 것이라는 말의 의미

by 정하다


얼마 전 졸업 후 한참이나 연락이 끊겼던 동기 누나와 우연히 연락이 닿았다. 누나는 서울에 있으면서 한 주에 이틀은 부산의 어느 대학으로 강의를 나간다고 했다. '와. 교수님 되셨구먼. 축하하고 부럽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최근 들어 앞으로 뭘 하며 제2의 인생을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이 많은 나로서는 그녀가 부러웠다. 삶을 얼추 이뤄 놓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녀가 그간 어떤 노력을 했었을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았고, 생각할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앞으로 대학에서 더 탄탄히 자리 잡으며 평생 교수님 소리 들으며 살 것 같다는 단편만 생각하며 부러워했다. 누군가와 비교하며 내 삶을 돌아보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지만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니까.






2주 전쯤 주말이었던가? 누나와 만날 일이 생겼다. 사람 만나는 일에 흥미를 잃고 사는 요즘이지만 어찌하다 그녀를 만나 점심을 하게 되었다. 갈비탕 한 그릇씩 주문해 놓고 마주 앉아 밝은 성격의 누나가 재잘재잘 떠드는 소리를 듣다가 나는 뜬금없이 "반주할까?"라고 던졌다. 그녀는 그러자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주 한 병을 시켜놓고 그녀 이야기를 마저 들었다. 한국에서 석사 할 때까지만 해도 연락이 닿았었기에 그 이후의 삶을 주로 얘기했다. 누나는 컨설팅펌에 들어갔다가 일에 치여 견디지 못하고 무작정 미국 유학길을 선택했다고 했다. 미국서 석사를 다시 했고, 영국으로 넘어가 박사를 했다는 뭐 그런 줄거리.


그녀는 길었던 시간을 단 몇 문장으로 정리했다. 누나의 입을 통해 명쾌하게 정리된 삶의 여정을 들으며 끄덕거리는 내 머릿속은 여전히 부럽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 좋다는 회사를 단박에 때려치우고 미국으로 넘어갔다는 대목이 제일 부러웠던 것 같다.






시켜 놓은 소주병이 반쯤 비어가자 누나는 자못 진지해진 목소리로 자기가 왜 한국을 돌아왔는지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들어본 즉, 누나는 영국에 있을 때 유방암에 걸렸었다고 했다. 급히 귀국했고, 삼성병원서 수술하고 열 몇 차례의 항암까지 하느라 꽤 고생했다고 했다. 그녀는 그 당시가 떠올랐던지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리곤 투병과 별개로 외국생활도 참 고되었다 했다. 지독하게 외롭고 버거운 생활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암투병을 치를 때보다 그때의 상황이 더 끔찍하다고 했다. 오히려 한국 와서 가족 옆에서 수술받고 치료하는 과정이 더 편했던 것 같기도 했다고.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그랬던 것 같다고.






누나는 평생 교회 문턱도 밟아보지 않고 살았고 지금도 교회를 나가지 않지만, 외국 생활할 때 힘든 마음에 성경을 읽었다고 했다. 성경을 읽고, 기도를 드렸다는 그 말. 무신론자가 성경을 찾고 울며 기도할 때의 심정을 나 역시 어렴풋이나마 알기에 그 한마디에 깊이 공감했다. 그리고 절박함. 간절함. 핀치에 잔뜩 몰린 상태에 이르러서야 신을 찾게 되는 이기적이고 나약한 모습이 비단 내 모습 뿐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투병, 고독, 좌절 등의 단어에 더해 성경과 기도가 등장한 이상 누나의 삶은 몇 줄의 문장으로는 정리되지 않았다. 힘이 되었던 성경 구절이 나왔고, 가장 애절했던 기도 제목도 나왔다. 사람이 싫어졌다는 이야기부터 지금은 어떤 마음으로 살려고 하는지까지. 그렇게 소주 반 병이 식어가는 것도 잊은 채,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나를 생각했다.





우리는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다. 누구나 자신의 삶 안에서 아파하고 괴로워하는 순간을 겪는다는 것을. 하지만 자신이 아픈 와중에는 그도 아프다는 것을, 그녀도 많이 아파했다는 것을 까맣게 잊어버린다. 내 아픔의 크기를 키우는 것에 집중하고, 타인의 표면적 행복을 부풀리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앞도 뒤도 없이 "교수님 되어서 축하하고 부럽다."라고 떤 너스레 뒤로 들려온 피식하는 웃음소리 의미를 그녀와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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