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그치지 좀 마
나는 ‘2주의 법칙’을 믿었다. 아니, 신봉했다고 해야 맞겠다. 좋은 일, 괴로운 일, 간절히 갖고 싶은 욕망까지. 2주가 지나면 대개 마음이 가라앉았다.
몸도 그랬다. 큰 병이 아닌 이상, 아픈 몸이 2주를 넘기는 일은 드물었다. 몸살, 베인 상처, 어릴 적부터 달고 살던 허리디스크까지 대부분 2주 안에 나았다. 마음의 생채기, 이따금 찾아오는 공허와 무기력도 마찬가지였다. 2주의 법칙 안에 들어왔다. 경험을 쌓을수록 이 믿음은 더 단단해졌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찾아온 디스크 통증은 넉 달이 지나도 떠나지 않았다. 3월 초, 깊게 긁힌 마음 역시 한 달째 아물지 않고 있다. 믿었던 2주의 법칙이 깨졌다.
나에게 이유를 물었다. 회복이 느려진 까닭이 뭐냐고. 이내 답을 찾았다.
세월. 그중에서도 노화.
그렇다. 이제 나는 밤새 놀거나 일한 다음 날도 씩씩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다. 몸과 마음의 상처에 새살이 돋는 시간도 느려졌다. 요즘 흔히 말하는 ‘회복탄력성’이 낮아졌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그런데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조급했다. 회복되지 않은 몸과 마음을 자꾸 다그쳤다. 아물지 않은 허리로 무리하게 운동을 했고, 가라앉지 않은 마음에 좋은 글귀와 말씀을 억지로 쏟아부었다. 그러자 상처는 더 벌어졌고, 마음은 더 흐릿해졌다. 애쓸수록 악화되는 몸과 마음이 더 멀어지는 듯했다.
결국 멈춰 섰다. 살아가기보다, 그저 살아내자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소비했다.
그때부터 회복을 위해 애쓰지 않았다. 그냥 나를 놓아버린 채, 멍하니 뚱하니 시간을 흘려보냈다.
열흘이 지났다. 허리 통증이 제법 줄었고, 흙탕물 같던 마음의 찌꺼기도 적당히 가라앉았다.
나는 회복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2주로 단정 짓는 실수를 했다. 세월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는데, 나는 늙어가는 몸과 마음을 외면한 채 스스로를 2주 안에 가두었다. 그 좁은 시간 속에서 조급했고, 조바심에 상황을 더 꼬아버렸다.
어쩌면 회복이란 재촉한다고 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손대지 않아도 저절로 아물어가는 상처가 있듯이, 몸과 마음에도 가만히 내버려 두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 붙잡지 않으면, 언젠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갈 상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