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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시인 Jan 25. 2021

일상에서 만나는 아름다움과 기쁨. 21

파랑새가 사는 섬에서

        1. 오랜만에 떠나다     


  “파랑새가 살고 있는 푸른 섬”

  선착장에서 십 여분, 힘들게 당산 능선에 올랐을 때 안내 표지판에 적혀 있는 말이다. “어청도(於靑島) 지명 자체가 푸른 섬이란 뜻이다. 그런데 파랑새까지 산다니…”

  내가 어청도에 오게 된 것은 순전히 송 교수님, 이 교수님의 덕이다. 충남 공주의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두 분은 대학의 선후배로 만나서 수십 년을 알고 지낸, 나와는 아주 막역한 사이다. 우리는 평소 테니스, 낚시, 여행을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 둘이 지난여름 전화를 했었다. “서 교수, 통영에 가자!” 하지만 그때는 일정 때문에 같이 하지 못했다. “다음에는 꼭 가겠습니다!”란 약속만 하고…

  시월 초에 다시 연락이 왔다. 시월 말에 어청도를 갈 계획이니 꼭 함께 가잖다. 그 시기는 중간고사 기간이기도 하고 물때도 조금이라 최적의 시기라고 한다. 나는 흔쾌히 가겠다고 답했다. 오랜만에 바다낚시 장비를 꺼내 정리하고 겨울용 파카도 배낭에 꾸렸다. 바다 장대, 감성돔 대, 우럭 대 등이 있지만 뭔가 허전해서 바다 루어 대를 인근 낚시점에서 사면서 랜턴도 같이 꾸렸다.

  새벽 네 시 반에 집에서 출발했음에도 송 선배가 사는 세종시에는 약속 시각이 십여 분 지난 뒤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공주대학교 주차장으로 출발한 뒤, 이 교수와 합류해 군산항으로 내달렸다. 가을 안개가 내린 도로를 한참 지나자, 색색이 물들고 있는 단풍과 일출로 물든 동편 하늘이 오랜만의 여행을 실감하게 한다. 두 분과는 거의 이십 년 만의 출조다. 언제이던가 셋이서 안성 인근에서 잉어와 향어를 잡아 올리던 날이…     


    2. 어청도에 닿다     


  군산항 인근에서 미끼를 산 뒤, 전주식 콩나물 해장국 식당에서 아침을 들었다. 이런저런 환담과 함께 모주도 시켜서 한 잔, 이것이 우리의 어청도 낚시팀의 발대식이었다.

  군산항에서 9시 30분 출발 예정, 5명의 이박삼일 일정이라선지 짐이 보통이 아니다. 각각의 낚시 장비에 미끼, 음식 재료에 식수까지 꼼꼼히 챙긴 이 교수 덕분에 출발 때부터 중노동(?)이다. 뱃전에 한 무더기 짐을 싣고 어청도행 여객선이 출발한다. 선실은 예전과 달리 좌석으로 되어 있다. 마치 낡은 고속버스에서 떼어다 달아놓은 듯한 좌석에 나란히 앉아서 분위기를 살핀다. 그런데 여행객은 우리뿐인 것 같다. 배낭이나 낚싯대를 메고 여객선을 탄 사람은 눈 씻고 보아도 없다.

  군산항 앞바다를 지나 큰 바다로 접어들었는데도 파도는 별로 없다. 커다란 엔진 소리와 약간의 흔들림, 마치 낡은 기차를 탄 느낌이다. 배는 한 시간 정도 운행한 뒤, 연도라는 작은 섬을 잠시 들렀다. 그곳에서 배의 승객 중 절반이 하선한 뒤 휑하니 비어버린 듯한 여객선은 다시 어청도로 떠난다. 나는 선미 쪽으로 나가서 바다 구경을 하다가 돌아온다. 송 선배는 눈을 감고 잠시 휴식을 하고 있다.

  군산항에서 출발한 뒤 2시간 30분이 지나서 우리는 어청도항에 도착했다. 섬의 산자락에 둘러싸인 아늑한 분위기를 풍기는 작은 항구다. 대략 십여 명의 승객들이 하선을 한다. 배는 30분 뒤 곧바로 군산으로 회항한다고 한다.

  이 교수가 예약해 둔 민박집은 항구 바로 앞에 있는 2층 건물이다. 아래층은 가게이고 위층은 방이다. 손님은 우리뿐이다. 민박집 사장은 인사를 나누고 나자 대뜸 “하필 왜 이때 왔냐?”라고 반문한다. 며칠간은 바람이 거세어서 낚시가 힘들 거란다. 하지만 어쩌랴!

사진 가운데 건물의 이층이 우리의 숙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우선 점심부터 하고 낚시터로 나가기로 했다. 이 교수는 10년 전부터 1년에 한두 번은 꼭 왔었다고 한다. 그래선지 식당 주인과도 흉허물 없는 사이인 것 같다. 식당 주인은 요즘은 고기가 잡히지 않아서 준비된 생선이 없으니 그냥 밥이나 먹으라고 한다. 백반에 소주 한 병, 맥주 한 병으로 우선 허기와 갈증을 달랜다. 여주인이 오늘은 별로 반찬이 없다고 하더니 생선구이와 게장 그리고 바지락 국이 입맛을 다시게 한다. 바닷가에 오면 나는 늘 밥을 잘 먹는다. 평소 생선과 젓갈을 좋아하는 내 입에는 모든 반찬이 꿀맛이다.        

첫 날 식당에서 점심을

    

  3. 바람 센 날에 출조하다     


  “저녁에 매운탕 먹을 만큼만 잡으면 돼!” 출조하기 전에 내가 이 교수에게 한 말이다. “선배님 고기 걱정은 마세요. 얼마든지 잡을 수 있어요. 제가 책임질게요!” 이 교수는 어청도 인근의 포인트에 대해서는 모두 훤하게 알고 있다고 한다. 어디는 우럭이 어디는 노래미와 농어가… 등등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오후에 찾아가는 포인트는 방파제 인근의 갯바위다. 그런데 변수는 바람이다. 시속 30km를 넘나드는 바람이 불어댄다. 돌풍이 불 때는 몸이 휘청이기도 한다. 이 교수는 갯바위 쪽으로 가자고 했지만 송 선배와 나는 비교적 바람이 덜 타는 방파제 쪽을 선택했다.

  원투 채비에 미끼로 가져온 갯지렁이를 달고 힘껏 캐스팅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송 선배가 먼저 개시를 한다. 그런데 한 뼘쯤 되는 작은 노래미다. 그러자 선배는 갯바위 쪽으로 옮겨간다. 밑걸림이 심한 방파제 쪽에서 완만한 언덕으로 자리를 옮긴 나 역시 같은 크기의 노래미로 첫수를 한다. 그러나 너무 작아 방생을 한다.  

  나지막한 산으로 안온하게 둘러싸인 어청도 내항에는 제법 덩치가 큰 어선들이 피항해 있다. 작은 바위산으로부터 시작되는 방파제와 그 끝에 서 있는 작은 등대… 둘러보면 모두가 낚시 포인트인데도 내항 쪽의 낚시꾼은 나뿐이다. 바람 탓인지 코로나 19 탓인지 인적이 끊긴 바다 앞에서 혼자 적적하게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낚시터에서 돌풍이 부는 바다를 보다

   방한 파카와 스카프까지 착용하였지만 바람은 쉴 새 없이 파고든다. 돌풍은 수면에 푸른 주름을 만들고 지나간다. 멀리 방파제 밖 먼바다는 흰 물결이 일고 있다. 나는 잠시 휴대전화를 꺼내 몇 장의 사진을 찍는다. 문득 홀가분함과 쾌감이 밀물처럼 몰려든다. “까짓것 고기 몇 마리 못 잡으면 어떠냐? 푸른 바다와 붉은 노을을 낚았는데!”

  노래미 잔챙이들이 얼마 되지 않는 갯지렁이를 다 먹어 치운 탓에 죽어버린 작은 고기를 썰어 미끼로 대신한다. 그리고 먼바다로 던져놓고는 다시 멍하니 경치에 취한다. 장구한 세월 동안 비바람에 침식된 바위산,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 미세먼지도 없는 하늘… 나 홀로 호강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다. 어청도의 풍광에 빠져든 사이, 초릿대가 심하게 움직인다. 묵직한 감이 느껴진다. 어라! 노래미인데 요놈은 꼭 명태만 하다.

생태급 노래미들이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할 때, 송 선배와 이 교수가 갯바위에서 돌아왔다. 큰 것 서너 마리가 있으니 횟감으로 충분하고, 작은 것들은 기름에 튀겨 먹자고 한다. 노래미 큰 놈들은 회를 치고 작은 것들은 매운탕을 끓여 저녁을 먹었다. 바닷가에서 먹는 자연산 노래미의 맛은 몇 마디의 말로 표현하기가 참으로 어렵다. 그저 ‘달다’라고 말할 수밖에…

  바람은 밤이 되자 더욱 심해졌다. 내일은 군산에서 여객선이 출항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우리보다 하루 늦게 출발하기로 했던 두 명은 올 수 없을 것 같다. 잠시 휴식한 뒤 우리는 단단히 옷을 껴입고 출조를 한다. 이번의 포인트는 밤이고 바람이 심해서 숙소에서 오 분 정도만 걸으면 닿는 항만의 끝이다. 밤인데도 배들의 불빛에 랜턴이 없어도 환하다. 이 교수는 루어 채비로, 송 선배와 나는 원투 채비로 공략을 한다. 하지만 원투 채비는 밑걸림이 심하다. 여러 번 바늘을 끊어버린 뒤 나도 루어로 바꾸었다.

피항한 어선 옆에서 캐스팅

  돌풍을 동반한 바닷바람은 수시로 몰아친다. 등대 뒤에 숨어서 몇 번인가 캐스팅 한 뒤에 우럭 한 마리를 끌어냈다. 두 시간 정도에 셋이 손바닥만 한 것부터 횟집에서 만날 수 있는 30cm 안팎의 우럭까지 대략 이십여 수를 잡았다. “그래 오늘 저녁 횟감과 내일 아침 매운탕 거리는 충분하니까.” 만족해하며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환하게 반달이 비추고 있다.     


   4. 조촐한 술상을 차리다     


  엊저녁에 얼큰한 매운탕을 먹은 탓에 아침에는 우럭을 맑은탕으로 끓였다. 고춧가루 대신 청양고추를 몇 개 썰어 넣었다. 그런데도 시원한 맛은 여전하다. 막걸리를 곁들여 해장한다.

  오전은 썰물이고 바람도 여전하니 섬을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숙소 뒤편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대나무 숲길과 오솔길로 이삼십 분을 오르자 시야가 확 트인다. 어청도 항만이 한눈에 보이고 멀리 한반도의 최서단에 있다는 격렬비열도도 눈에 선하게 들어온다. 숲 속에 들어서자 바람도 잦아든다. 늦가을이어서 단풍이 든 나무들, 여전히 푸른 동백도 지천이다. 어청도의 가장 높은 지역은 봉수대가 있는 당산이다. 해발은 198m이지만 섬 특유의 지형 때문인지 오밀조밀한 산책로와 사방이 푸른 바다로 둘러싸인 경치가 가히 황홀경이다.

  봉수대에 앉아서 사진 한 장씩을 찍고 팔각정이 있는 곳까지 내려온다. 계획에는 어청도 등대까지 돌아보는 것이었지만 돌풍이 워낙 강해서 포기하고 초등학교 쪽으로 하산한다. 어청도 초등학교 입구에는 명물이 하나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향나무 두 그루다. 마치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백 년이나 넘었다는 향나무 앞에서 나는 휴대전화를 꺼내 든다.

어청도의 명물, 초등학교 정문의 향나무

   어청도에 딱 한 군데라는 중국집에서 우리는 짬뽕을 먹으며 배갈을 마셨다. 짬뽕에 넣은 홍합과 소라가 육지에서 먹던 것과는 맛이 다르다. 두서너 시간의 산책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피곤함 때문인지 잠시 낮잠을 즐기고 나서 우리는 첫날처럼 방파제 인근으로 다시 출조한다. 그리고 씨알이 굵은 노래미를 여러 수 낚았다. 그리고 밤에 역시 항만 쪽으로 나가서 우럭 이십여 수를 낚고 나서 숙소로 돌아왔다. 늦은 시간이지만 술 한잔 아니할 수 없다. 오랫동안 정을 나눈 선후배와 함께 한, 우럭회와 노래미 튀김의 조촐한 술상이지만 이 맛과 분위기는 아마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산에 오르며, 멀리 보이는 섬이 격렬비열도

     

  5. 하루 더 묵다     


  이른 아침의 햇살이 바다를 비추고 있다. 포구를 감싸고 있는 바위산들이 황금빛의 이마를 드러내고 있다. 바람은 어제보다 잦아들고 있다. 안성에서는 늘 시야를 가로막던 미세먼지는 말끔히 가셔 있다. 아침 햇빛과 푸른 바다가 서로 어울리며 환상적인 정경을 펼쳐놓았다.

  오늘은 내 생일이기도 하다. 마침 식자재로 가져온 미역을 물에 불리고 우럭을 넣어 이 교수가 미역국을 끓였다. 멀리 떨어진 섬에서 막걸리 반주까지 곁들인 단출한 생일상이지만, 마음만은 진수성찬이다. 마음 맞는 지인들과 함께 하는 생일상이라서 그런지 아침부터 마신 막걸리로 불콰하다.

어청도에서 생일상

  아직 바람이 잦아들지 않는 탓으로 오늘도 여객선은 운항하지 않는다고 한다. 2박 3일을 계획하고 떠나온 여행이지만, 어쩌랴! 천재지변인데… 그냥 마음 편하게 하루 더 묵기로 한다. 아직 썰물 때인 오전의 일정에 송 교수님과 이 교수는 어제 눈여겨보아 두었던 산책로를 다녀오겠다고 한다. 포구와 작은 바위산을 끼고서 이어지는 산책로는 잔교까지 있어서 바닷가 정취를 느끼기에는 아주 좋은 장소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엊그제의 피로와 막걸리의 취기가 겹쳐지는 탓에 쉬기로 한다.

  포구가 내려다보이는 계단 옆의 의자에 앉아 가을 바다를 멍하니 바라본다. 바다는 마치 전설 속의 한 마리 커다란 괴물인 양 비늘을 번득이며 꿈틀거리고, 갈매기 무리가 그 위를 날고 있다. 어제보다는 잔잔해진 탓인지 피항해 있던 배들도 보이지 않는다. 아마 큰 바다로 나간 모양이다. 바람만 가득한 한적한 빈 포구를 바라보다가 문득 파랑새를 생각한다.     


   6. 파랑새를 떠올리다.     


  “파랑새가 사는 섬 어청도” - 파랑새 하면 늘 떠오르는 것은 벨기에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모리스 마테를링크의 동화극 『파랑새』다. 80년대 후반, 첫째가 두세 살 적에 읽어주던 동화책 중에 그 이야기가 있었다. ‘가난한 나무꾼 아버지를 둔 치르치르와 미치르 남매가 크리스마스 전야에 요술쟁이 할머니의 부탁을 받고 파랑새를 찾아 여행하는 이야기였다. 남매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는 추억과 회상의 나라, 유령과 도깨비가 있는 밤의 궁전, 온갖 맛있는 음식과 부와 사치가 있는 행복의 궁전, 태어날 아이들이 있는 미래의 궁전 등을 개와 고양이와 함께 여행하면서 파랑새를 찾는다. 그러나 그곳에서 만난 푸른 깃털의 새들은 금세 검게 변해버리고 파랑새는 찾지 못한다. 그러다 아침이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생일날 선물 받아 집에서 기르던  산비둘기가 파랑새인 것을 발견한다.’라는 이야기였다.

  이 동화극에서 암시하는 교훈은 너무나 명백하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다.’는 것이다. 추억과 부와 미래의 세계가 아닌 현재 지금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다. 참 평범하고 어쩌면 진부하다고 느껴지는 이야기였지만 젊은 시절 나는 그것을 소재로 시를 쓴 적이 있었다.   

   

  파랑새를 본 적이 있나요.

  촛불도 없고 크리스마스트리도 없는 어둠의 저 너머

  어디엔가 어디엔가 있을 것만 같은 그 새를

  혹시 보셨나요.

  먼 회상의 나라에 살던 새들의 푸른 깃털은

  이제 검정빛으로 변해버리고

  밤의 궁전 속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파랑새를 부르는 소리도 들리지 않아요.


  일하지 않아도 기름진 음식에 배부를 수 있는

  행운의 나라에도

  밤의 나라, 회상의 나라, 숲의 나라에도

  파랑새 울음소리는 들리지 않아

  나는 그대에게 물어봅니다.

  불 꺼진 벽난로 곁에 잠든 치르치르 미치르에게

  누덕누덕 누더기 옷의 어머니가

  생일날 선물한, 혹 파랑새를 아세요

  아직 잊지는 않으셨는지.


  무릎 해진 옷을 입은 아이는

  해열제를 먹고 간신히 잠들었고 아내는 만삭인 채

  술 취해 날을 넘겨 돌아온 남편을 기다리다

  새벽녘 겨우 잠들었지요.

  술의 나라, 요정의 나라, 불의 나라에서 나만의

  파랑새를 찾아다니다 담배 연기에 젖은 채

  중얼거립니다, 파랑새가 있을까.


  웃음처럼, 무지개처럼 가벼이 떠오르는 깃털들

  동해바다 파도 한 잎 같은 날개 빛

  산골 물소리 같은 지저귐이여...

  터진 풍선을 가지고 놀다 잠든 아이들에게

  깊은 주름 골골마다 시름 가득한 어머니

  욕설과 발길질로 돌아와

  날 푸른 비수를 품고 잠든 형제들에게 언젠가

  파랑새 날아오르는 숲의 이야기를,

  불의 요정과 빛의 요정, 행운의 여신들이 살고 있는

  쌍무지개 뜨는 나라가 있음을

  증거 하고 싶어요.


  봉황새 날아온다던 오동나무도 찍혀나가고

  천년 묵은 여우도 쫓겨 사라진

  구십 리 먼먼 길 회색의 나라에도

  파랑새 한 마리쯤 날아다니더라고

  파랑새 키우는 사람들이 살더라고

  노래하고 싶어요.


  파랑새를 본 적이 있나요.

  당신이 살던 회상의 나라, 당신이 가야 할 밤의 궁전

  당신이 잠드는 이 땅의 숲 속 어디에선가

  붉은 깃으로 변하지 않고 검은 깃으로 물들지 않는

  한 마리 파랑새를,

  소문이라도 듣고 싶어요.

  치르치르 미치르가 병든 소녀에게 선물한,

  그들이 다시 하늘로 높이 날려 보낸 한 마리 파랑새를

  혹 당신은 아시나요.   

               -「파랑새」 전문(제2 시집 『죽산에 이르는 길』에서)     


  「파랑새」 동화의 이야기를 변용한 이 시는 3연을 보건대, 1991년 대전 판암동 주공 아파트에 살 때 쓴 시일 것이다. 아내가 둘째를 임신했던 시기, 첫째 아이가 만 세 살 때다. 그때 나는 대학을 전전하는 가난한 강사였고 경제적인 핍박에 아내는 늘 시달리곤 했다. 아내와 아이에게 맛있는 음식, 좋은 옷을 사주지 못하는 나 자신의 무능함에 대한 자책, 미래에 대한 불안, 냉혹한 현실과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시적 이상과 괴리 속에서 늘 괴로워했던 시기였다. 아내와 아이에 대한 연민과 미안함, 신화와 전설과 민담이 사라진 회색빛 도시의 잔혹함 속에서 ‘행복’이란 시적 이상향에 대한 동경이 시의 주제가 될 것이다.

  돌이켜보면 이 작품은 「파랑새」의 이야기와 나 자신의 자전적인 삶과 감정을 서로 교직(交織)하여 짜낸 작품이다. 그러나 파랑새라는 시적 소재는 단순히 관념적인 행복만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파랑새는 착취와 억압, 분노가 만연한 냉혹한 회색빛 현실에는 부재하는 따스한 사랑과 순수함과 선함이 내포된 참된 행복이며, 나란 시적 자아가 닿아가고자 하는 시적 유토피아였다. 언젠가 시낭송회에서 이 시를 낭송한 적이 있다. 그날 한 여류시인이 내게 “시가 너무 슬퍼요.”라고 말한 것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7. 반달이 뜬 바다와 마주하다    


  어제보다 바람이 많이 잦아들었다. 그래선지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포구 안의 바다는 마치 엄마 품에 잠든 아이처럼 안온하게 느껴진다. 이제는 바람이 부는 휘파람 소리도 먼바다의 분노에 가득한 파도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갈매기의 울음소리가 온전하게 들리는 오후이지만 출조는 포기한다. 분명 노래미들의 파티가 이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틀 동안 노래미는 충분히 잡았다. 회도 먹고 튀김도 먹었으니…

  저녁을 먹고 나니 반달이 떴다. 내 생일이 음력으로 8일이니 쪽배처럼 생긴 반달이 하늘 위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다. 우리는 숙소에서 걸어 오 분도 되지 않는, 포구의 불빛이 비치는 바다 한가운데 자리한 접안 시설의 끝자락에 자리를 잡았다. 배들도 보이지 않고 더욱이 낚시인들은 우리 셋뿐이다. 한적하고 광활한 바다를 온전히 차지한 듯한 풍요로움이 즐거움과 기쁨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오늘은 아이스박스를 채웁시다. 그래야 집에 가져가지요!” 이 교수가 분명하게 오늘 밤의 목표를 제시한다. 송 교수님은 접안 시설 바로 아래의 수심이 깊은 곳을 공략하고 이 교수와 나는 보다 먼 거리로 루어를 투척한다. 몸을 가눌 수도 없이 바람이 거세었던 지난날과 비교하면 오늘은 천국과 같은 날이다. 달빛은 교교하게 내리고, 바람은 잔잔하며 춥지도 않다.

  마치 며칠 동안 굶주린 것처럼 우럭이 연달아 미끼를 물어댄다. 한두 번 캐스팅할 때마다 한 마리씩 잡아 올린다. 이러다가 어청도 우럭을 거덜 내고 가는 것은 아닌지? 걱정 아닌 걱정도 든다. 이틀간의 캐스팅이 이제는 숙달된 탓인지 바람이 없는 탓인지 밤바다 멀리까지 형광 루어가 날아간다. 그리고 그때마다 씨알이 굵은 우럭들이 연달아 올라온다.

  두어 시간 지난 뒤 송 교수님이 한 마디 던진다. “인제 그만 갑시다. 이거면 충분해요!” “아니? 이왕에 아이스박스 다 채워야지요!” 이 교수가 답한다. “마지막으로 한 마리씩만 잡고 귀가합시다.” 내가 중재한다. 결국 예상보다 빠르게 밤 10시쯤 펜션으로 돌아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게까지 쉬지 못했다. 낚시보다 훨씬 힘들고 번거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밤 열두 반까지 고기의 비늘 벗기고 손질해야 했으니까.   

  

  8. 파랑새를 눈에 담다     


  이틀 동안의 폭풍 때문에 배가 군산항에서 출항하지 않는 동안에도 우리는 늘 즐거웠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취미를 즐기고, 맛있는 자연산 회와 막걸리를 만끽하면서 보낸 날이었다. 다만 마음 한구석에 살생(殺生)했다는 꺼림칙함만 없다면 완벽한 일정이었을 것이다.

  일요일 부랴부랴 짐을 정리하고 12시 30분 어청도를 떠나는 배에 올랐다. 짐은 올 때보다 줄었지만, 아이스박스는 훨씬 더 무거워져 있었다. 지난밤 잡은 냉동된 우럭이 가득 들어있으니까. 출발하기 전 우리는 선실의 좌석에 나란히 앉았다. “선배님 내년에도 같이 옵시다.” 이 교수가 내게 말을 건넸다. “아주 이 기회에 우리 모임을 정례화하자!” 송 교수님이 거든다. “내년에는 봄에도 한 번 오고 싶어요.” 내가 답한다.

어청도는 서해에서  육지외는 두 번째로 먼 섬이다. 그 첫째는 물론 격렬비열도이지만… 그래선지 봄이 되면  서식지로 날아가던 철새들이 이곳에서 잠시 쉬어간다고 한다. 5월쯤이면 탐조객들로 붐비는 섬이 어청도이다. 겨울이면 따뜻한 남쪽에서 월동하던 파랑새도  봄이 되면  잠시 이곳에서 쉬었다가 한반도로, 러시아로, 중국으로 날아가는지 모른다. 그때쯤  오면 실제 파랑새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뱃고동 소리를 신호로 여객선이 어청도항을 떠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선실을 나와 선미의 난간 쪽으로 나갔다. 배는 흰 물보라를 일으키며  섬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어청도의 방파제를 돌아서  먼 바다로 나아가자 푸른 바다에 떠 있는 진초록의 섬이 온전하게 보인다. 내년 봄에 다시 오리라고 기약하며 멀어지는 그때, 두 눈 속에 바다와 섬을 담는 그 순간에 나는 파랑새를 생각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꿈꾸었던 그 새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은 문득 깨달았다.           

파랑새가 산다는 어청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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