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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시인 Jan 08. 2020

일엽편주(一葉片舟)처럼 떠난 베트남 북부. 2

- 하노이, 하롱베이, 사파 , 닌빈의 자유 여행기

    3. 산과 물처럼 스스로 주인으로 사는 삶은?     

    

    하롱베이를 다녀온 다음 날, 나의 3일 차 일정이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여기저기의 명소나 유적을 하나라도 더 보겠다는 욕심은 없었다. 더 많은 것을 보는 게 남는 것, 또는 그렇게 해서 본전을 뽑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많이 보는 게 중요한 것은 결코 아니다. 하나라도 제대로 보고 즐길 때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지난여름, 후에의 왕궁을 돌아볼 때 대다수 한국인은 전기차를 타고 외곽을 한 바퀴 돌고는 또 다른 코스로 가는 것 같았다. 물론 단체 투어이다 보니 그래야 또 다른 명소를 들를 수 있을는지는 모른다. 그에 반해 다수의 유럽인은 왕궁의 귀퉁이, 궁전의 후원까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건물의 배치, 형태, 문양까지 낱낱이 살피는 그들에게 나도 배운 점이 많다. 어쩌면 한국인들의 관광문화나 패턴도 그렇게 바뀌는 날이 올지 모른다.

호안끼엠 호숫가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호텔을 나섰다. 오늘은 호안끼엠 호수 주변에 자리한 하노이의 구시가지를 산책하는 것이 일정의 전부다. 한 시간쯤 걸어 피곤할 무렵이면 찻집에서 주스를 마시며 사람 구경, 오토바이 구경하다가 상점에서 기념품도 잠깐 골라보면서 걷다 보니 호수에 도착했다. 그리 크지 않은 호수이지만 관광객들로 붐빈다. 나도 그들과 합세해 응옥 썬 사당을 둘러보았다. 입장료는 30만 동 우리 돈 천오백 원이다. 이 사당은 성인으로 대접받는 영웅 셋을 기린 곳이다. 또한 거북이(내가 보기에는 자라)와 관련된 전설도 곁들여지고 있다. 그리고 1968년 잡혔다는 길이 2m 무게 250킬로의 거북이 박제가 전시되어 있었다. 그곳 사당의 기둥에는 문인이자 대학자로 칭송되어 사당에 모셔진 ‘반 승’이 지은 시구절로 보이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산명부재고 수령부재심 자유주자”란 글이다.(원문은 사진 참조 바람)

호안끼엠 호수 가운데 응옥썬 사당에서

    대략 짧은 한문 실력으로 그 뜻을 풀이해보았다. “산은 이름이 없지만 높고, 물은 영혼이 없지만 깊으니 스스로가 존재하며 자신의 주인이라.”는 뜻일 것이다. 조금 의역하면 “산은 명성이 없으나 높이 자리하고 물은 영성이 없으나 깊어지나니 타고난 그대로 스스로가 주인이어라.” 쯤이 되지 않을까(?) 이 구절은 아마 산과 물에 빗대어 당대 인간들의 속됨을 꾸짖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러한 준열한 비판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것 같다. 출세와 명성을 꿈꾸고 고결하고 뛰어난 정신과 사상을 희구하여 도를 닦고 기도와 참선을 하는 것은 오늘도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다만 거기에 ‘부’ 즉 돈이 첨가될 뿐이다. 자기가 자신의 주인으로 사는 것, 자신 삶의 주체로 선다는 것은 쉬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대다수는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하는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즉 자기의 의지와 감정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지위와 명성과 돈을 위해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을 하며 그 속에 자기를 예속시키고 굴종시키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3일 차 일정은 처음부터 휴식을 통한 재충전의 시간으로 계획했었다. 점심은 가볍게 쌀국수로 해결하고 나니 오후 2시가 넘었다. 호텔 앞의 마사지 가게에서 전신 마사지를 선택했다. 발마사지는 대략 우리 돈 9천 원 전신 마사지는 60분에 1만 5천 원 정도다. 

    마사지를 하는 현지인은 키가 자그마한 20대 후반쯤의 남자다. 그동안 내 기억에 남자에게 마사지를 받은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작은 손으로 열심히 한다. 뜨거운 돌을 데워서 주로 흉추 쪽을 집중으로 마시지를 한다. 어쨌든 경직되었던 인대와 근육이 풀어지기를 고대하며 뜨거운 돌로 등을 문질러대는 통증도 참았다. 돌 마사지는 다시는 사양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다음에 그냥 근육만 풀어주는 마사지 혹은 발만 받고 싶다.

    마사지 가게에 있는 동안 스콜이 있었다. 도로가 흠뻑 젖었다. 점심을 부실하게 먹었으니 저녁만이라도 푸짐하게 먹자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 인근 거리에는 이른바 맛집이 많았다. 책자에 소개되거나 구글 지도에 표시된 식당에는 줄을 서 있는 모습도 보인다. 기다리는 것이 싫어서 여기저기 마땅한 곳을 찾다가 어제 들른 마담 비엔 앞까지 왔다. 역시 오늘도 손님들로 만원이다. 야외 의자에서 음식을 즐기는 머리 노란 친구들로 여럿 보인다.

나는 그곳에서 한 20미터쯤 떨어진 곳의 식당으로 들어섰다. 뭔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풍기는 식당이었다. 입구를 들어서서 메뉴를 묻자 웃는 얼굴을 한 30대 후반쯤의 직원이 “온리 트래디셔널 베트남 푸드”라고 한다. 즉 베트남 전통 가정식 하나만 한다는 것이다. 약간은 늦은 시간이라서인지 식당 안에는 손님이 없다.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베트남 전통식(집밥)

   곧바로 식사가 나왔다. 자기에 담긴 밥과 국, 대멸치만 한 생선 튀김, 달래를 소금에 절였다가 볶은 것, 채소 무침, 두부와 소스, 베트남 롤 등이었다. 나는 튀긴 두부를 소스에 찍어먹었다. 아 이것은 튀긴 두부를 멸치젓갈에 찍어 먹는 맛이다. 투명한 소스가 아닌 멸치의 뼈와 살이 남아있는 거친 소스는 약간은 비릿하지만 맛있다. 국도 어제와는 다르게 된장을 약간 풀어 야채와 끓이면 비슷할 것 같다. 한 끼 오천 원, 베트남 전통의 집밥은 한국의 집밥처럼 맛있다. 가성비 최고다.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마주한 행운, 이게 사실 자유여행의 별미이다. 이름 난 맛집은 대체로 값이 비싸다. 그런데 그 맛이 기대를 배반할 때는 짜증이 나게 마련이다. 반면 기대 없이 들른 곳에서 반전은 늘 기쁨을 선사하는 것이다.  


    4. 대낮에 침대 버스 안에서 뒹굴다

        - 4일 차, 사파로 가는 여정     


    ○ 새벽 두 시에 기상     

    자정 무렵에 간신히 잠들었다. 그래도 네댓 시간은 수면을 취한 것 같은데, 시계를 보니 고작 두 시다. 다시 몇십 분 뒤척이며 잠을 청해 보지만 편안한 잠은 이미 도망간 것 같다.

    타국의 깊은 밤,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다. 이미 싸놓았던 짐들을 풀어 다시 정리하고 텔레비전을 켠다. 관심 있는 채널은 별로 없다. 한두 군데 채널에서 지나간 축구 중계를 하고 있다. 라리가 리그와 프리미어 리그 팀들의 경기다. 화질도 그렇고, 내가 관심이 있는 손흥민이 출전하는 것도 아니기에 그저 무시하고 노트북을 켠다. 어제 오후에 작성한 원고를 대략 수정하고 다시 글을 쓴다.  

    슬리핑 버스는 이미 호찌민과 다낭에서 달랏과 후에로 이동할 때 이용해본 적이 있지만 이번 사파행은 그보다 더 걸린다. 더욱이 사파에서 닌빈으로 향할 때는 9시간이나 타고 가야 한다. 그래선지 다수의 여행객들은 심야 슬리핑 버스를 이용한다고 한다. 잠을 자면서 이동하면 그만큼 시간과 숙박비를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낮 시간을 선택했다. 버스 타고 가면서 바라보는 정취도 쏠쏠하다. 앉거나 누워서 베트남 곳곳을 보는 것도 괜찮은 관광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차로 이동하는 것을 검토해보았으나, 기차의 침대 버스도 철로가 오래되어 흔들림이 심하다고 한다. 또한 시간이 더 걸리는 단점도 있다.

    버스표 예약을 호텔에 부탁했더니 43만 동이란다. 우리 돈 2만천 원 정도다. 픽업은 아침 6시 반, 미리 짐을 싸 두고 알람을 5시 30분에 맞춰놓았는데 새벽 두 시에 기상한 것이다. 괜찮다. 침대 버스에서 낮잠을 자면 오히려 덜 지루할 것이다. 안 오는 잠을 오라 오라 간절히 청한다고 올 것인가? 그렇다고 나의 수면제인 막걸리가 냉장고에 들어있는 것도 아니니, 어쩌랴! 

    도심인데도 닭들이 운다. 아날로그식 알람이다. 시계를 보니 이제 새벽 4시 반, 나는 노트북을 접는다. 계획에는 없던 샤워도 하고 여유 있게 출발 준비를 하려 한다. “그래 오늘은 천천히 황소걸음으로 고산지대인 사파로 오르자!” 

    픽업 장소에 이르자 버스 한 대가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버스는 여기저기 돌면서 승객을 태운다. 거의 40여분 동안 승객을 태우고 나서야 슬리핑 버스가 있는 곳에 내려주었다. 내 이름을 확인한 남자가 “비 세븐틴”이라고 외친다. B열 17번 좌석, 버스의 뒤에서 두 번째 그것도 이층이다. 매번 일층만 탓었는데 어찌하랴 받아들여야지. 달랏이나 후에를 갈 때 탄 침대버스보다 이번 차는 매우 낡았다. 의자도 조정이 안되고, 주는 담요도 낡았다. 그리고 생수 한병의 서비스도 없다. 그러냐 어쩌랴. 베트남인들은 1/3 정도이고 승객 대다수가 외국인이다.     6시 30분에 픽업했지만 하노이에서 본격적인 출발은 7시 30분이 되어서야 했다. 스모그가 가득한 하노이를 한 시간 정도 지나자 평지에 세워진 공장과 마을이 보인다. 내가 매번 베트남에서 만나던 정경이라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버스 뒤편의 이층이라서 그런지 요동이 심하다. 가끔 예측하지 못하는 덜컹거림이 잠을 쫓아내고 있다. 현지인 젊은 친구들은 그 사이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다. 뿅뿅 대는 소리가 유쾌하지는 않다. 엊그제의 여행 복이 다 달아난 것일까? 사파 가는 버스운은 어째 별로다. 

    버스는 하노이를 지나 두 시간쯤 달린 것 같다. 오전 9시 30분, 6시 호텔을 나오면서 화장실을 들른 지 3시간 반이 지났다. 그런데도 휴게소에 정차할 생각은 없는 것 같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심정이 굴뚝이다. 차량 맨 뒤에는 간이 화장실이 있다. 그런데 잠가 놓았다. 차는 30분은 더 달려 휴게소에 닿았다. 그동안 나는 지옥이었다. 장거리 여행이란 걸 알고 물도 별로 마시지 않았는데 버스가 그저 흔들어대서 몸이 경고 신호를 보내는 것일 터이다. 

    휴게소에서 3천 동(?) 우리 돈 150원을 주고서 다시 지옥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위장이 무언가를 요구한다. 아침도 안 먹고서 버스에서 흔들렸으니 그도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다. 이번에는 반미를 30만 동, 1500원을 주고서 샀다. 하노이 길거리에서 파는 것보다 약 두배는 더 비싸다. 나는 반미와 콜라로 아침을 해결한다. 그런데 이 버스는 언제 떠나는지? 이전에 탄 버스처럼 차장도 없고, 기사는 아무 안내 멘트도 하지 않고 자기만 밥 먹으러 사라졌다. 사파까지 가는 동안 두 번 휴게소에 들른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어느 정도 쉬는지는 모르기에 반미를 파는 처녀에게 물었다. 그러자 답 “저도 몰라요.” 정답은 시간을 재어보니 약 15분이다. 

    휴게소 한 곳을 더 들러 다시 화장실에 다녀오고 담배를 피우고, 15분 전에 신발을 벗고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15분이 지나 25분이 되어도 시동만 걸어놓고 출발하지 않는다. 나를 비롯한 외국인들은 전부 대기 중인데… 30분이 넘어서야 현지인들 대여섯이 올라타자 그때 출발한다. 아직 베트남은 교양에서는 후진국이라는 사실을 그때 확인한다.

    버스는 라오까이를 지나자 급격한 고갯길로 접어들었다. 이제부터는 2차선 좁은 길이다. 마치 70년대의 한계령이나 새재를 넘듯 버스의 엔진 소리가 거칠어진다. 고갯길로 접어들자 안개가 서서히 몰려오기 시작했다. 한 이십 분쯤 오르자 내가 누워있는 왼쪽 아래쪽은 절벽과 연해있다. 내려다보니 까마득하다. 만약 기사가 방향을 잘못 틀기라도 하면 살아남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험악한 고갯길 중간에 짐을 잔뜩 싣고 고장 난 대형트럭이 한 대 멈춰있다. 상하행 차들 모두 번갈아 가며 그 트럭을 간신히 비켜간다. 전진과 후진을 몇 번 한 다음 내가 탄 버스도 다시 제 길로 접어들 수 있었다. 후진할 때마다 벼랑과 가까워진다. 그때마다 간이 오그라들 정도다. 만약 고산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이런 경험을 한다면 짜릿한 정도를 넘어 식은땀을 흘릴 것이다.

    언덕의 능선을 거의 오르자 안개는 더욱 짙어진다. 대략 20미터 전방의 삼나무들도 형체만 흐릿하게 보인다. 내려오고 올라가는 차들은 헤드라이트로 서로의 몸체를 확인하고 비켜갈 뿐이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자 이제는 다소 밋밋한 내리막을 지난 다음에야 사파의 여행사 사무실 앞에 나를 내려주었다. 택시도 보이지 않고 안갯속에 내리막 오르막길만 보인다. 막막한 안갯속에서 나는 담배만 피워댔다. 한참 지나자 소형택시 한 대가 온다. 앳된 기사는 내게 어디 가냐고 묻는다. 사파가든호텔이라고 하자 머리를 갸우뚱한다. 휴대폰으로 지도검색으로 보여주자 그는 5만 동(2,500원)을 요구한다. 나는 흔쾌히 “오케이”라 답하고 택시에 오른다. 안갯속에서 구세주를 만나는데 이천오백 원이면 하노이에서는 비싼 가격이지만 내겐 감지덕지다.

    5분 정도 비탈길을 내려가서 호텔 앞에 내렸다. 부슬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얼굴이 까무잡잡한 중년의 사내가 우산을 들고 서 있다. 그리고는 내 짐을 들고 간다. 어찌 알고 여기서 기다린 것일까? 아니면 우연일까? 그 사내는 알고 보니 호텔 지배인이었다. 한국에서 아고다와 익스피디아로 고르고 고르다 예약한 호텔인데, 고객만족도가 높다는 것은 이유가 있다. 

    호텔은 내가 묵었던 하노이 비전 부티크 호텔의 반값이지만 방을 훨씬 넓고 깨끗하다. 게다가 전망이 보이는 베란다가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경험에 의하면 베트남의 호텔 가격을 좌우하는 요소는 대략 위치, 시설, 서비스의 질 등이지만 또 다른 요건 하나는 창문과 베란다이다. 같은 평수의 창문 없는 골방이 2만 원이라면 창문 있는 방은 3~4만 원, 베란다가 있는 방은 5~6만 원으로 값이 오른다. 대다수의 호텔에서 값싸게 내어놓은 룸은 거의가 창문 없는 골방이다. 그 방을 미끼로 매달아놓은 것이다. 따라서 싸다고 덥석 물면, 출입문만 있는 형무소 독방과 같은 곳에 갇혀 지내야 한다. 우리말 ‘싼 게 비지떡’이란 우리 속담이 여기서도 통한다.

사파에서 저녁 식사

    세시쯤 되어서 호텔 지배인에게 점심 먹을 만한 곳을 묻자, 내일 조식을 할 드래건 호텔의 레스토랑으로 나를 안내한다. 고기가 먹고 싶어 진 나는 쇠고기가 철판 위에 지글대며 나오는 한국의 불고기 비슷한 요리와 파슬리와 배추를 마늘과 함께 느억맘 소스로 볶은 야채 요리를 시켰다. 고수 향도 아닌 독특한 향신료가 사용된 것 같은데 전혀 거부감은 없다. 만약 야채를 시키지 않았다면 고기와 밥 둘로 먹어야 했는데, 두 가지 합해 우리 돈 7천 원 정도로 점심을 해결하고 우선 호텔로 들어가 쉬기로 한다.

    저녁 여섯 시, 안개가 어둠과 합해지자 답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린다. 사파에서는 여행복이 따르지 않는 모양이다. 나는 숙소 주변을 둘러보기로 한다. 안개가 자욱해선지 길거리는 사람이 없고 한산하다. 길 옆의 가게들도 힐끔 보니 손님이 없다. 길을 혼자 걸으면서 동료가 술 마시면 즐겨하는 말 ‘그래 어쩌라구!’가 생각난다. 

    한때 종양으로 투병할 때, 책에서 읽은 암을 극복하는 방법 중 첫째로 제시된 항목은 ‘긍정적인 사고’였다. ‘하필 나만 왜 이런 일이!’라고 하면 더욱 비관적이 되고 그 스트레스는 몸의 저항력을 극도로 떨어뜨린다고 한다. 정신적 스트레스는 몸의 근육과 인대를 경직시킨다. 근육의 경직은 피와 림프 같은 순환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신경계의 혼란을 초래한다. 그런 상태가 되면 아무리 방사선 치료 항암치료를 동원해도 살아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최악의 경우라도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위로해야 한다는 것이다. “괜찮아 나보다 더 심한 사람도 많잖아!” 혹은 “이 정도면 다행이다.”라는 사고방식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었다. 

    우리 사는 인생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걱정하고 기도한다고 되는 것도 아닐 때는 긍정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그간 5년 동안의 그런 마음가짐이 나를 변하게 만들었을까? 안개가 자욱해도 비까지 와도 충청도 사투리로 말하면 “괜찮아유!”다. 나는 일부러 한산한 커피집을 골라 들어섰다.

    손님은 나 혼자뿐인 커피숍은 주인인듯한 중년 사내와 종업원인듯한 십 대 후반쯤의 처녀 둘이 있었다. 커피를 시켰더니 베트남식의 물을 부어 내려먹는 조그만 기구와 그 밑에 받힌 찻잔을 내어온다. 노트북을 펴고 작업을 하려는 데 동그란 테이블이 힘없이 흔들린다. 테이블도 바꾸고 서투른 베트남식 커피 추출 작업도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몸집이 작은 앳된 여종업원이 도와준다. 한 시간 반쯤은 그곳에서 메일도 검색하고, 카카오톡에 소식도 올리고, 일정에 대한 글도 작성했다. 춥고 습한데 문까지 개방해놓은 그곳에서 오랫동안 작업을 할 수 없어 나는 길을 나섰다. 

커피숍 - 춥다

   비 오고 춥고, 닭갈비에 소주 한 병이 그립다. 호텔 앞 널찍한 공간의 레스토랑, 손님은 없고 벽난로가 보인다. 나는 무조건 들어간다. 공간은 붉은색 천들과 주렴 같은 것들로 장식된 그곳에 들어서자 주인인 듯? 종업원인 듯? 젊은 여자가 “웰컴”이라고 말한다. 그 곁에는 아주 귀엽고 예쁘게 생긴 아이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곳 사파는 여러 소수민족이 있는데 그중 몽족이 제일 많다고 한다. 지리적으로는 태국 북부, 중국과 가깝다. 그래선지 오래전에 중국에서 피난 온 종족도 있음을 알고 있다. 키는 그리 크지 않고 몸집이 가늘고 호리호리한 이곳의 여인들, 중국 남부 사천이나 대리, 여강 등에서 만나는 묘족들과도 닮은 것 같다. 시기를 거슬러 올라가면 어쩌면 한 종족에서 갈라져 나왔는지도 모른다.

물담배 피우는 카페에서

    묘한 분위기의 그곳에서 나는 맥주를 시켰다. 그리고 마른 감자를 튀긴 스낵도 함께, 맥주는 한 병에 우리 돈 이천 원 정도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테이블마다 이집트 물담배를 피우는 기구가 놓여있다. 내가 물어보니 이곳 사람들도 물담배(시샤/shisha)를 즐긴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산소통 같은 것도 한쪽에 놓여있다. 그것은 분명 스마일 가스일 것이다. 맥주 한 병을 즐기고 두 병째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왁자지껄하다. 현지인 젊은이들이 갑자기 들이닥친다. 이제 일을 끝내고 물담배 피우러 온 모양이다. 그들은 당구도 잠깐 치더니 전부 한쪽으로 몰려간다. 그러고자 이번에는 일곱 여덟의 앳된 남자애들이 또 들이친다. 나는 주섬주섬 가방을 메고 그곳을 나섰다. 나를 보고 젊은 현지인 아이 엄마는 손을 흔든다. 나도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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