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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시인 Jan 08. 2020

일엽편주(一葉片舟)처럼 떠난 베트남 북부. 3

- 하노이, 하롱베이, 사파, 닌빈의 자유 여행기

    5. 안개의 나라에서 고독을 

        - 5일 차, 사파에서


    ○ 벽난로 앞에서     

    지난 저녁, 에어컨을 30도로 최대로 올리고 잤다. 에어컨 온도를 올리면 온풍기가 된다는 사실을 호텔 주인이 가르쳐준 것이다. 그러나 평소 돌침대를 구들처럼 사용하던 터라 추웠다. 미리 준비해온 보온 내의 하의를 껴입고 긴팔 셔츠 둘을 껴입고 잠들려 했지만 그래도 뭔가 서늘하다. 다시 일어나 경량 패딩을 껴입고 잤다.

지난밤에는 계속 부슬부슬 비가 내린 것 같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꿀잠을 잤더니 개운하다. 샤워 후 조식, 뷔페식 종류는 많지 않지만 괜찮다. 호텔로 돌아와 대강 짐 정리를 하고 날씨도 검색한다. 그러나 어제처럼 오늘도 안개가 완강하다. 나는 호텔 주인에게 만약에 오늘도 안개가 짙으면 숙박을 하루 더 연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정은 내일 아침 말해주겠노라고 하자 주인은 얼마든지 좋단다. 사파의 겨울은 비수기여서 내가 묵는 호텔의 경우 2/3 정도 빈방인 것 같다.

사파 호텔에서 조식

    숙소 베란다에서 내다보니 안개는 저녁보다 덜 한 것 같다. 한 30미터 정도의 사물은 보이지만 그 이상의 시야는 확보되지 않는다. 습한 안개는 산과 나무와 모든 사물을 완벽하게 가리고 있다. 어제 잠시 스친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생각났다. 두 줄로 서서 깃발을 든 가이드를 일제히 따라가던 그들이 안됐다고 생각이 든다. 멋진 풍경을 기대하고 먼길을 왔는데 보이는 것이 안개뿐이니… 영화 보러 왔다가 흰 스크린만 보고 간다면? 오늘 하루 더 묵었을 그들, 그러나 오늘도 안개뿐이니 돌아갈 때 얼마나 속상할는지…

    한국에서 하노이와 사파의 숙박만 결정하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예약하겠다고 계획을 세운 것은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3일 동안 돌아보기로 한 닌빈을 하노이에서 1일 투어로 계획을 변경하면 된다. 닌빈은 하롱베이보다 가까워서 하루 투어를 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무리가 될 것은 없다. 기상예보를 보니 내일은 맑을 것이라고 한다. 물론 사파는 나오지 않아 하노이의 기상을 검색한 것이지만…

    그래도 안개가 안 걷히면 며칠 더 기다려도 무리될 것은 없다. 비싼 하노이 호텔보다 반 정도는 저렴한 이곳에서 푹 쉬고 가는 것도 결코 나쁘지 않다. 하노이의 매캐한 스모그와 정신없는 오토바이 행렬, 비싼 호텔비를 피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어찌 보면 한적한 것은 단점이자 장점이다.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언젠가 터키의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를 같이 탄 한국인 대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두 달 간의 일정으로 유럽을 여행하던 그는 열기구를 타기 위해 3일을 카파도키아에서 기다렸다고 했다. “숙박비도 비쌀 터인데 고생했네요.”라고 내가 말하자 그는 숙박비는 괜찮은데 오늘도 기상상태가 안 좋으면 어떡하지 걱정을 했었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생님은 운이 좋으신 거예요. 그동안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기상 때문에 열기구에 타보지도 못하고 그냥 돌아갔어요.”라고 말해주었다.

    안개가 없었다면 오늘은 케이블카 타고 3천 미터를 오르고 인근의 소수민족이 사는 깟깟 마을도 방문하고 사파의 경치가 한눈에 보이는 함롱산을 가려했지만 마음 편하게 미루기로 했다. 아침 9시, 내가 묵고 있는 사파 가든호텔 앞의 사파 드래건 호텔 레스토랑의 벽난로 앞에 자리 잡고 노트북을 꺼내 들었다. 이 두 호텔은 같은 주인이 경영하는 곳으로 그래서 오늘 조식은 내가 묵는 숙소가 아닌 이곳에서 했었다.

    호텔과 주변에는 꽃들이 쉽게 눈에 띈다. 길 건너는 벚꽃이 활짝 피어있다. 나는 꽃들을 사진에 담는다. 매화, 동백, 벚꽃, 철쭉 외에도 인터넷으로 꽃 검색을 해도 나오지 않는 꽃이 여럿 피어있다. 한겨울에 꽃잔치에 초대받은 기분이다. 달랏처럼 고산지대인 이곳도 한해 내내 꽃이 피고 질 터이다. 겨울에 핀 꽃 모두 예쁘다. 늙으면 꽃만 보인다고 한다. 그래 나도 늙었음을 자인한다.

    가든호텔에 묵고 있는 손님인 줄 지배인은 한눈에 알아보고 아직 치우지 않은 뷔페의 커피를 가져다 먹으란다. 나는 별도로 주문을 하려 했는데… 몸집이 조그맣고 귀엽게 생긴 현지의 여종업원이 벽난로에 장작을 더 지핀다. 그녀들은 모두 빨간 산타 모자를 쓰고 있다. 넓은 레스토랑에 손님은 나 혼자다. 이따가 점심이나 주문해 먹기로 하고, 글을 쓰는 동안 미국 여행 중인 이장식 교수님께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LA에서 모하비 사막을 거쳐 300마일을 달려왔다고 한다. 역시 나보다 활동적인 분이다.    


     ○ 판시판 케이블 카에 올라     

    오후가 되자 갑자기 분위기가 바뀐다. 바람이 불자 안개(구름인지 안개인지 구별이 잘 되지 않는다.)가 사라지고 햇살이 비춘다. 안개와 구름 사이로 잠깐 사파의 푸른 하늘이 얼굴을 내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다시 안갯속에 도시가 잠긴다. 나는 노트북을 접고 작은 배낭을 챙긴다. 그리고 호텔에서 얼마 멀지 않은 판시판 산으로 오르는 케이블카가 출발하는 선 플라자로 바삐 걸음을 옮긴다.

호텔에서 바라본 사파 도심 정취

    케이블카의 요금은 케이블카 탑승구까지 오르는데 경유해야 할 트램 탑승비용까지 합해 73만 동 우리 돈 3만 6천 원 정도다. 탑승비는 어쨌든 베트남 여행비를 가늠할 때 싼 게 아니다. 탑승시간은 대략 트램 탑승 시간까지 합하며 40여분 정도는 될 것 같다. 비성수기라서 그런지 주말인데도 그리 붐비지는 않는다. 나는 베트남인들 여럿과 함께 케이블카에 올랐다. 출발 선은 아직 안개가 완강하다.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자 안개가 걷히고 사파의 전경과 저 멀리 또 다른 계곡과 산들이 보인다. 그렇게 한참을 오르며 사진을 찍고 또 동영상도 촬영한다. 비로소 사파의 대략의 얼개만 마주하게 되었다.

    한참 광경에 취해 있다 보니 벌써 도착지점에 가까워진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다시 안개다. 아니 구름 속이다. 안개와 구름을 경계가 모호해진다. 내가 갇혀 있을 때는 안개이고 벗어나서 바라보면 그것은 분명 구름이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이틀 동안 안개에 갇혀 있던 것이 아니라 구름 속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케이블 카에서

    정상 아래에는 꽤 널찍한 건물이 들어서 있다. 음식점, 카페, 선물점 등이 들어선 그곳에서 캔맥주를 하나 마시며 구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 대략 한 시간 동안 푸른 하늘과 구름이 걷힌 전망을 기대했지만 나의 기다림은 부질없었다. 건물 밖은 대략 3천 미터의 고도, 바람도 심하고 춥다. 건물 밖으로 나가 봐야 구름의 습기와 바람에 온몸이 젖을 뿐이다. 그렇게 기다리다 나는 발길을 돌렸다. 인연이 없으면 어쩔 수 없는 것, 그나마 올라오는 중간에 본 산맥과 계곡과 구름으로 만족해야 한다며…

    하산하는 동안 나는 사진이나 동영상은 없이 그냥 내 눈에 풍경을 담는다. 구름은 바람을 따라 흐른다. 마치 물줄기처럼 흘러가다 계곡이나 분지에 고인다. 구름은 그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오르는 것이란 나의 편견을 깨뜨리고 때로는 낮은 곳으로 흘러 계곡과 마을을 품는다. 그렇다 나는 그동안 구름 속에서 있었다.     


    6. 깟깟 마을로 산책을

         -6일 차, 사파에서     

    

    ○ 부랴부랴 깟깟 마을로     

    호텔에서 조식 후 기다려본다. 오늘은 걷히겠지 하고… 안개 때문에 사파에서 일정을 하루 더 연기했다. 

나의 기다림은 헛되지 않았다. 안개의 농도가 어제와는 다르다. 안개(구름)가 지나면 푸른 하늘과 사파의 시내와 산의 가파른 능선도 보인다. 아직 판시판 산은 이마를 구름 속에 숨기고 있지만 산의 허리와 어깨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몇 장의 시내 사진을 찍은 뒤, 인근의 깟깟 마을로 트레킹을 나간다. 소수 민족이 살고 있는 깟깟 마을은 사파와 가까워 여행자들이 빠짐없이 가는 코스로 알려져 있다. 나는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사파 시내를 가로질러 계곡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길은 자동차 두 대가 간신히 비켜 갈 수 있을 만큼의 넓이로,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다. 그런데 내가 걷는 계곡 쪽은 아찔한 절벽이다. 빗물이 흘러 질퍽해진 길을 따라가다가 계곡에 접해 있는 카페에서 음료를 시킨다. 깟깟 마을을 조망할 수 있는 이 카페는 그림들이 걸려 있고, 유럽인 여럿도 계곡을 마주하고 풍경을 즐기고 있다. 그곳에 앉아 한 참 생각에 잠겼다. ‘그래 사진만으로 보다가 정말 오기는 왔구나’ 하는 감상에 젖어 있다. 사진보다 실지의 정경이   훨씬 낫다. 사진으로 담아낼 수 없는 색감, 바람, 향기, 분위기 등등… 친지들에게 모두 담아 보내고 싶지만 한계를 절감한다.

깟깟 마을 가는 길 - 카페에서

    호텔 지배인은 한 20분이면 갈 수 있다고 했지만 그것은 입구다. 입구에서 다시 한참을 걸어서 매표소에 도착하고 다시 10여분 걸어야 마을 입구에 닿는다. 옹기종기 마주한 고산족의 집들 사이로 작은 골목길이 연해 있다. 점심때를 넘어서인지 아니면 계속 걸었기 때문인지 배가 고프다. 나의 허기를 알고 있는지 몇몇 식당에서 꼬치를 굽는 냄새가 진동한다. 나도 발걸음을 멈추고 돼지고기 꼬치 몇 개와 찰밥, 캔맥주 하나를 시켰다. 우리 돈 5천 원 정도 베트남 물가로는 비싼 가격이다. 그런데 어쩌랴 먹어야지.

깟깟 마을에서 점심 대신

    식사 후 골목길을 따라 내려간다. 내가 어릴 적 그랬듯 골목길에서는 아이들이 노느라 떠들썩하다. 가끔 개와 고양이도 골목에서 쉬고 있다. 계속 계곡 쪽으로 내려가자 냇물과 둑이 있는 마을에 당도한다. 그리고 그 앞쪽에는 폭포가 있다. 자연적인 폭포에 인위적인 요소를 가미한 폭포다. 여기까지 당도하는 동안 한국인은 딱 두 명 만났다. 입구에서 20대 초반의 대학생으로 보이는 여성 둘이 내게 “홧 유어 칸츄리!”라고 물었었다. “예 저 한국인입니다.”라고 답해주자 그녀들은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른다. 내가 오늘 처음 만나는 한국인이란다. 그리고는 많이 헤매었다며 어디로 가야 출구냐고 묻는다. 나는 내가 지나온 길을 그녀들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좋은 여행 하세요!”라고 덕담을 건네주었다.

    폭포에서 몇 컷 찍고 나서 다시 계단을 따라 계곡을 오른다. 그런데 만만치 않다. 몇 계단 오른 것 같지 않은데 힘이 든다. 앞장서 가던 40대 중반의 여인이 나를 보며 힘들다고 표현한다. 나도 그렇다. 간헐적으로 등산을 하던 나이기에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어야 하는데 하고 의아해하던 내 뇌리에 갑자기 “이곳은 고산이야.”란 생각이 스친다. 

깟깟 마을의 일부

    골목길의 계단을 올라 광장에 이르자 오토바이 타라고 난리다. 사파 시내까지 80만 동, 우리 돈 사천 원이란다. 비싸다. 그래도 다시 “어쩌랴!”이다. 사파 시내까지 오르막으로 갈 생각을 하니 막막하다. “오케이!” 현지 청년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몸을 싣는다. 오토바이는 내가 걸어온 길을 다시 되돌아 금세 사파 광장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사파 광장에 접해있는 성당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진 탓인지 성당 앞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놓여 있고, 현지인 아이들이 전통의상을 입고 구걸을 한다. 나도 한 아이에게 몇 푼의 동을 내려놓는다. 주어야 옳은 것인지, 주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판단을 하지 않기로 한다. 어제저녁에도 추운 날씨에 서너 살쯤 된 구걸하는 아이들을 만난 적 있다. 그들의 부모는 그 근처에 잠복(?)해 있다. 아이들을 구걸의 방편으로 내모는 것은 부모 탓인가? 아니면 문명화되고 자본화되는 탓일까? 그래도 울지 않고 잘 적응하는 아이들이 신통하다. 나는 한 아이와 함께 사진도 찍는다. 그는 셀프 카메라봉을 보고 웃는다. 이 세상의 모든 아이는 예쁘다.    

사파 광장 옆 전통 시장에서

    ○ 세 아이의 아빠 꾸옹     

    깟깟 마을에서 돌아오다. 꾸옹을 다시 만났다. 그는 내가 묵고 있는 호텔 옆의 가게를 하고 있다. 그는 가게의 주인이자, 호텔 앞 마사지샵의 지배인이다. 이틀 전 처음 늦게 그의 가게에 들렀을 때 그는 처음 보는 낯선 인물인데 환하게 웃어주었다. 그의 웃음이 너무 순박해서 보기 좋았다. 내가 캔맥주를 고르자 한 다섯 개는 사가라고 농담을 건넜다. 나는 그의 말대로 하노이 맥주 다섯 개를 산 적이 있었다.

    어제도 만났다. 마사지샵도 네가 주인이냐는 물음에 그는 아니라고 했다. 결혼했냐고 했더니 아이가 셋이란다. 그리고 나이는 스물일곱 살이라고 한다. 결혼 안 한 나의 둘째 아들보다도 어리다. 몽족은 아니고 자기의 고향도 사파는 아니란다. 그러면서 아이 때문에 열심히 일한다고 한다. 참 신통하고 착한 청년이다. 그가 깎아준 덕분에 14불에 90분 동안의 마시지를 받았다. 마사지하는 아가씨는 사파에서 30킬로 떨어진 곳(아마 라오까이)에서 자랐다고 했다.  이제 스무 살이라는 순박해 보이는 이 아가씨, 힘들었을 텐데 몇 달러 팁을 주자 활짝 웃는다.  내가 사파를 떠나던 날 아침에 꾸옹은 나와 헤어짐을 섭섭해하는 것 같았다. 며칠 동안 만날 때마다 웃어주던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마사지샵이 언젠가는 네 것이 되기를 빈다.’고 덕담을 해주었다.        

사파의 번화가

7. 리무진 버스로 하노이로

    -7일 차 일정이


    호텔 지배인은 내가 하노이로 돌아간다고 하자, 리무진 버스를 권해주었다. 호텔 앞에서 8시에 픽업을 한다고 그는 일러주었다. 가격은 42만 동 우리 돈 2만 천 원가량이다.

    지난 저녁 열한 시쯤부터 통잠을 잤는데 눈을 떠보니 새벽 5시다. 커튼을 젖히고 베란다 쪽을 보자 날이 밝고 있다. 일출의 광경이 단연 장관이다. 내가 떠난다고 하니 이제 사파의 진면목을 제대로 보여주려고 하는가? 이틀 동안은 안개뿐이더니 떠나려는 오늘은 안개도 걷히고 먼산의 능선도 제대로 보인다. 베란다에 서서 일출을 장면을 한 참 보고 있으려니, 그래도 고맙다는 느낌과 함께 하루 더 일정을 연장한 것이 신의 한 수였다는 생각이 든다.

호텔에서 새벽에 바라본 사파 

    만약 이틀의 숙박으로 끝났다면 저 장엄한 광경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햇빛은 산과 구름을 물들이고 그 아래 고요히 깨어나는 사파 시내의 정경은 아름답다 못해 장엄하다. 아마 이틀 동안의 안개가 없었다면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기다림이 있었고, 궁금함이 있었기에 안개 걷힌 사파의 풍경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가파른 산의 능선, 산의 정상을 살짝 가린 구름, 장엄함이야말로 가장 큰 감동을 가져다준다. 아마   뒷 날에도 이런 정경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오늘 다시 스모그가 가득한 하노이로 간다는 것이 내키지 않지만 또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사파행 버스는 8시 20분쯤 되어 호텔 앞에 도착했다. 열명쯤 탈 수 있게끔 개조한 소형버스는 이미 승객들로 가득하다. 내가 마지막 픽업 승객이었던 모양이다. 버스는 작지만 좌석은 비교적 널찍하게 배치해놓았다. 기내의 비즈니스 좌석을 흉내 낸 것이다. 침대버스와는 달리 앉아서 가야 하지만 더 넓고 안락하다. 무엇보다 넓은 차창으로 밖의 경치를 감상하면서 하노이로 간다는 것이 다행이다.

    버스는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내려간다. 라오까이까지 삼십 여분을 가면서도 안개와 구름의 마술쇼는 계속된다. 안개의 장막에 드리웠던 곳을 벗어나면 햇빛과 푸른 산, 첩첩의 다랑논의 풍경이 드러난다. 그러다가 잠시 장막이 시야를 가리고 다시 벗어나면 까마득한 계곡과 마을 그리고 시냇물이 보인다. 사파를 떠나기 위해 여장을 꾸리던 때, 잠깐 스치고 지나던 허무감 또는 허전함을 다시 새로운 정경이 채워주고 있다. 이곳을 떠나 다시 저곳으로 구름처럼, 아니 일엽편주처럼 흐르는 여정, “그렇다 때로는 비워야 한다. 그래야 새롭게 채워진다.”는 직관적인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사파의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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