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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시인 Jan 08. 2020

일엽편주(一葉片舟)처럼 떠난 베트남 북부. 4

- 하노이, 하롱베이, 사파, 닌빈의 자유 여행기

    8. 엉성한 현지 투어를 떠나다

        -8일 차닌빈 여행      


    ○ 호아루 사원을 거쳐 땀꼭으로

    사파에서 예약했던 하노이의 호텔은 엉망이었다. 호안끼엠 호수를 끼고 있는 구시가지에 위치해서인지 가성비가 좋지 않았다. 가격은 사파와 비슷하지만, 시설과 서비스 등은 한참 뒤진다. 직원들의 영어 구사 능력도 떨어지고, 창문은 있으나 마나 한 골방이다. 에어컨을 틀지 않으면 습기가 차고 게다가 바로 옆 건물이 리모델링 공사 중이어서 낮에는 소음 때문에 잠깐이라도 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하지만 어쩌랴! 운이 없다고 치부하는 수밖에…  

    하노이 구시가지의 현지 여행사에 닌빈 하루 투어를 문의했더니 78달러를 달라고 한다. 리무진 버스로 떠나는 여행이란다. 닌빈보다 더 멀리 있고 배도 타야 하는 하롱베이를 38달러에 즐겁게 다녀왔는데, 78달러라니 너무 비싸다. 호텔에 문의했더니 50달러를 제시한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닌빈 하루 투어였다.

    16인승쯤 되는 소형 투어버스에 오르자 또다시 승객들의 픽업이 시작된다. 30여 분쯤을 이곳저곳을 돌아 버스 가득 여행객들을 태우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길을 나선다. 둘러보니 역시 한국인은 나 혼자뿐이다. 베트남 사람들 셋을 제외하고 모두 유럽인들이다. 또 어떤 사람들과 동행을 할까? 궁금해진다.

    버스는 2시간쯤을 달려 짱안에 도착했다. 닌빈 투어의 핵심 코스는 땀꼭과 짱안이다. 두 코스 모두 배를 타고 석회암 침식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들 사이를 지난다. 두 코스의 특징이 비슷하기 때문에 투어는 두 곳 중 한 곳만 가고, 바이딘 또는 호아루 사원을 지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내가 가는 곳은 호아루 사원과 땀꼭 지역이다.

닌빈에 도착해서

    차는 우선 짱안에 정차한다. 그런데 이곳에서 나와 뒷자리의 유럽인 셋만 남고 다 내리란다. 젊은 유럽인 여성 둘이 자기들은 땀꼭으로 가야 한다며 항변한다. 그러자 가이드가 땀꼭은 호아루 사원을 지나 두 시간 뒤에나 간다고 어렵게 소통한다. 그리고 땀꼭은 여기서 8Km이니 택시를   타고 가라고 한다. 그러자 유럽 여성 중 한 명이 자기들은 택시 탈 의향이 없다며 또다시 따지자 이번에는 운전기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베트남 말로 가이드(사실은 차장)에게 소리소리 지른다. 내가 웃으며 뒤돌아보자 내 뒤에 앉아있는 유럽인들도 빙그레 웃는다.

호아루의 사당

    항의하는 유럽계 여성들을 뒤로하고 차는 십여 분 달려 10~11세기 베트남 최초의 왕조라는 딘 왕조의 수도인 호아루에 닿았다. 그곳에는 왕을 기리는 작은 사원들과 사당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가이드는 영어를 할 줄 몰라서인지 40분을 줄 테니 보고 오란다. 투어 참가자인 나와 프랑스 남자와 여성 둘은 그저 알아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사진 몇 장 찍고 안내문을 훑어본다. 무슨 가이드가 영어를 할 줄도 모르고, 유적에 대해 설명을 해주지도 않고… 호텔이 엉망이다 보니 추천한 투어도 같은 격이다.  

    호아루 사원을 대강 보고 나서 짱안 근처의 뷔페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은 여행자들로 가득하다. 둘러보니 김치도 메뉴에 있다. 닌빈에 오는 동안 차가 주유소에 들렀었다. 그때 그곳에서 중년 베트남 여성이 수돗가에서 배추를 씻고 있었다. 그 정경을 보고 겉절이 배추김치 생각이 났었다. 그런데 마침 김치라니… 하지만 정작 김치의 맛은 감미료를 넣었는지 너무 달다. 

사당에서 한국인에게 촬영 부탁

  식사하며 나는 동행하는 프랑스인 셋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둘은 부부지간이고 한 명의 여성은 아내의 친구란다. 부부는 한 달의 일정으로 여행을 나섰다고 한다. 베트남, 태국을 거쳐 말레이시아 싱가포르까지가 여행 일정이고 친구는 베트남에서만 열흘만 동행한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자 차장은 자전거를 40분간 탄다고 한다. 식당 앞에는 낡은 자전거 수십 대가 놓여 있고 그중 몇 대를 골라 안장을 조정해준다. 일행은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호아루에서 오다가 본 풍경이다. 왜 이곳을 자전거를 타고 둘러봐야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이없는 웃음이 나온다. 도로는 차도 별도 없고 한산하다. 닌빈에서 2박의 일정을 염두에 두었지만 사파의 안개 때문에 당일치기로 변경되었기에 선택한 당일 투어, 어쨌든  열심히 페달을 돌리며 가이드 뒤를 따라가며 주변 경치를 둘러본다. 프랑스인 셋도 열심히 따라온다.

    별 의미 없는 자전거 투어를 마치고 우리는 땀꼭으로 이동했다. 작은 강변을 끼고 있는 그곳에서 나는 프랑스 남자와 한배를 탔다. 내 나이 또래쯤의 현지인 여성이 발로 노를 젓자, 배가 물길을 따라 내려간다. 짱안과 달라서 이곳은 강폭도 좁고 깊지도 않다. 겨울이라서 그런지 햇살이 내리쬐지만 그리 따갑지 않다. 여름에 이곳에 온 사람들의 여행기를 보면 햇볕이 너무 강하니 우산을 준비하라고 조언한 구절이 생각났다. 겨울 여행이라서인지 바람도 시원하다.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자 물풀과 연꽃들도 보이고 오리 떼도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관광객은 거의 보이지 않는 아주 조용하고 한적한 풍경이 지속된다.

땀꼭의 투어 풍경

    석회암이 퇴적되어 생긴 봉우리들은 이미 하롱베이에서 보았던 섬들과 닮아있다. 작은 봉우리들이 연해 있고 겹쳐서 보이기도 한다. 강변을 내려가면서 나는 프랑스인 남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프랑스 영화, 배우 이야기부터 프랑스의 시인들, 소설가들까지… <쉘부르의 우산>이란 영화에 출연했던 ‘까트린느 드뇌브’가 아직 생존해 있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한다. 그는 어떻게 프랑스 영화와 문학을 잘 아느냐며 놀라움을 표시한다. 사실 70년대에 학교를 다닌 세대들은 누구나 ‘아랑 드롱’이나 ‘장 폴 벨몽도’ 등은 잘 알고 있다. 아랑 드롱이 출연한 <태양은 가득히>란 영화를 고등학교 때인가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친구의 연인을 사랑하게 된 우수가 가득한 아랑 드롱의 서늘한 눈매와 푸른 눈동자는 당대의 여성들을 매료시킨 바 있었다.

동굴을 지나며

    배는 물길을 따라 내려가다 동굴을 지난다. 석회암이 물에 녹으면서 생성된 동굴은 어둡다. 뱃사공은 머리에 랜턴을 두르고 불을 켠다. 동굴을 지나자 작은 호수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뱃전을 다시 돌린다. 잠시 휴식하는 사이 현지 뱃사공 여인은 작은 기념품을 사라고 내민다. 나무로 깎은 배와 거북이다. 아이가 없는 우리 일행에게는 아무런 흥미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물건들이다. 배는 다시 출발선으로 돌아온다.

강물 위의 아직 피지 않은 연꽃

    하노이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는 현지인 서넛을 더 태운다. 이 버스는 도대체 운송용인지 투어용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버스가 닌빈을 벗어나 하노이가 가까워지자 다시금 스모그가 뿌연 하늘이 계속된다. 스모그 속에서 희미해진 저녁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버스 기사는 우리 일행을 호안끼엠 호수 근처에 내려주었다. 나는 프랑스 친구들과 덕담을 나누고 헤어졌다. 우연히 만난 사이지만 점잖고 교양 있는 친구들이었다. 여행을 떠나오지 않았다면 만날 수 없는 그런 사람들, 하지만 이승에서의 인연은 한나절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뿐이다. 

    호텔로 돌아와 지배인에게 공사 소음 때문에 너무 시끄러워 쉴 수 없다고 하자, 그는 방을 바꾸어준다고 한다. 3층에서 2층으로 층만 바꾼 것이다. 2층의 방은 창문이 없는 완전한 골방이다. 차라리 창문이 없으니 소음도 덜할 것 같아 그냥 수긍했다. 어차피 오래 묵을 곳도 아닌데 이틀 밤만 참자는 것이었다. 

    크리스마스 전야라서 그런지 호안끼엠 호수 근처의 구시가지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현지의 젊은이들까지 몰려와 불야성을 이루고 있다. 일행이 있다면 인근의 맥주 거리로 나가서 그 떠들썩함에 끼어들고 싶지만 스모그가 짙은 거리를 쏘다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몇 군데의 식당을 둘러보다 비교적 한산한 레스토랑에서 소불고기에 모닝글로리를 곁들여 식사를 했다. 가격은 1만 원대 베트남의 물가로는 결코 싸지 않은 그저 그런 음식이었다.


9. 하노이의 역사박물관에서

    -9일 차 그리고 귀국      


    호텔 방은 습기로 눅눅했다. 이곳은 아고다나 트립어드바이저의 평점 같은 것은 염두에 두지도 않는 것 같았다. 오전에 한 무리의 중국인들이 몰려들었다. 위치 하나만을 장점으로 삼아 그럭저럭 손님들을 유치하는 호텔뿐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한다.

    새벽 5시에 눈을 떠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에 대략 소식을 전하고 7시 반쯤 식당으로 내려가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매번 그렇듯 바게트 두 조각에 볶음밥 조금 그리고 주스 한 잔과 과일 두 쪽이다. 그나마 한국에서는 아침을 먹지 않았는데 여행을 다니면서 에너지의 소모가 많아서 그런지 아침밥도 잘 먹는다. 음식과 물이 바뀌었는데도 배탈 없이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은 다행이다. 그것도 여행복이라면 복이다. 한국에서는 저녁에 맥주를 몇 잔 하면 그다음 날 꼭 탈이 있는데, 베트남에서는 그마저도 없다. 틈만 나면 왕성하게 먹어치우는 고수를 비롯한 향채가 내 몸에는 잘 맞는 것 같다. 쌀국수를 먹을 때도 야채 한 접시를 다 먹고 또 달라고 해서 느억맘 소스에 찍어 먹고는 했다. 나의 모습을 스스로 상상해보아도 신기하다. 

하노이에서 쌀국수

    내가 베트남을 자주 여행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음식이 잘 맞는다는 것이다. 아울러 생동감이 넘치는 도시, 바쁘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에 있는 것 아닌가 한다. 물론 물가가 싸다는 것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비교적 안정적인 치안, 순박한 현지인, 싼 물가, 먹을 만한 음식 등이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추운 한국 현지의 날씨를 피해 따뜻한 남쪽 나라로의 여행,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 충분하지 못한 관광 콘텐츠와 인프라, 정돈되지 못하고 체계화되지 못한 관광 시스템, 급격히 산업화와 자본화되면서 파생되는 사회적 문제들 – 예컨대 사기 요금, 소매치기, 바가지 상술 등.

    관광 가이드에 소개된 하노이의 명소들이 몇 군데 있다. 호안끼엠 호수와 응옥 썬 사당. 성요셉 성당, 호찌민 묘소, 바딘 광장, 문묘, 오페라 하우스, 호아루 수용소, 롱비엔 다리 등등이다. 이미 성요셉 성당과 응옥 썬 사당은 첫째 날과 셋째 날에 둘러보았고 나머지는 사파에서 이동한 날 오토바이 시내 투어를 통해 주마간산 격이지만 둘러본 적이 있다. 그래 오늘은 박물관 견학을 계획한다.

    오늘이 크리스마스 날인데 베트남은 국경일이 아니다. 그래서 박물관도 문을 연다고 한다. 호텔 앞에서 그랩으로 차를 잡고 국립 역사박물관으로 이동하였다. 입장료는 40만 동 우리 돈 2천 원이다. 프랑스풍으로 지어진 박물관은 2층으로 나누어져 있다. 관람객은 나를 포함해 서넛 명이 전부다. 무엇인가 한산할 것 같은 공간 안에는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국보급 유물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박물관 입구

    금속탐지기가 설치된 입구를 지나자 국보급 도자기, 왕관 등이 전시되어 있고 조금 더 지나자 가장 중요한 유물이라는 청동 북이 전시되어 있다. 청동 북에 새겨진 문양과 그림들은 농업과 관계된 시기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설이 붙어 있다. 그곳에는 과거 베트남 고대의 유물부터 참파 왕국의 유물, 불교 힌두교의 색채가 짙은 유물 등이 전시되어 있다. 도자기, 자개장, 의복, 칼과 화살 같은 전시용 도구, 목각으로 된 여러 형상 등이 있었다. 나는 여유롭게 천천히 둘러보았다. 특히 향로 중에서는 우리의 국보인 7세기경에 제작되었다는 백제 금동대향로와 형태가 유사한 향로도 발견한다. 백제 금동대향로처럼 정교하거나 화려하지는 않지만, 연꽃 봉우리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또한 몇몇 유물은 우리의 것과 흡사하다. 역사적으로 보면 중국문화권에 접해있기도 하고 불교 문화권에 속해 있기에 그러리라 추측해본다.  

2~3세기에 만든 청동제 향로

    한참을 둘러보다 기념품 가게에 잠깐 들렀다. 혹 기념될만한 물품이 있는가 눈여겨보지만  도자기 접시류 외에는 크게 볼만한 것이 없다. 그곳에서 나는 한국인 아주머니 두 분을 보았다. 내가 전시실을 둘러볼 때 의자에서 서로의 이야기에 열중하고 유물 관람은 도외시하던 분들이다. 옷매무새가 길이나 시장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전형적인 60대쯤 보이는 아주머니들이다. 그런데 박물관은 뭐하러 왔을까? 관람도 하지 않던데…그 아주머니들은 박물관 기념품점에 있는 실크 스카프 몇 점을 둘러보더니 한 아주머니가 기념품 가게의 점원에게 말을 건넨다. 그런데 영어가 아닌 한국어다. “박항서! 박항서!” 그리고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킨다. “나는 박항서의 나라인 한국에서 왔다.” 아니면 “나는 한국 사람이다.”를 그런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이다. 점원은 아무 말 없이 빙그레 웃기만 한다. 나도 먼발치에서 그냥 웃고 지나왔다. 굳이 무슨 통역이 필요할까?   

베트남의 국보 청동 북

    역사관을 나와 길 건너 있는 민족관으로 이동하였다. 그곳은 주로 프랑스와의 독립투쟁, 그들이 미국 전쟁이라고 부르는 베트남 전쟁의 기록물이 위주다. 총을 비롯한 몇몇 무기류와 기록물들 외에는 사진 위주의 전시여서 그저 대략 둘러보고 나왔다. 

   박물관 앞에서 구글 지도를 검색해보니 언젠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한국의 유명 요리사가 소개한 베트남식 순댓집이 근처에 있다. 걸어서 9분 정도란다. 나는 산책 삼아 걸어서 가기로 했다. 점심때가 가까워서인지 인근 은행의 직원들도 제복을 입은 채, 점심 먹을 곳으로 삼삼오오 흩어진다. 

    구글 지도는 여기라고 하는데 도대체 음식점을 찾을 수 없다. 인근 가게의 현지인에게 물었더니 맞은편 골목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골목에 식당이 있다. 빈 공터에서 음식을 하고 골목 끝부분에 테이블이 세 개 놓인 식당이다. 그곳에서 순대 죽과 순대 한 접시를 시킨다. 우리 돈 4천 원 정도다. 먹는 방법을 몰라 그곳의 손님에게 묻자 그는 내 테이블에 다가와 자세히 가르쳐 준다. 

하노이의 순대와 순대죽

    새우로 만든 젓갈에 라임을 짜 넣고 거품이 날 정도로, 저어준다. 순대와 고기는 젓갈 소스에 찍어 향채에 싸 먹으면 된다. 순대와 내장 고기의 맛은 한국의 그것과 거의 같다. 다만 간과 허파는 기름에 튀긴 것 같았다. 순대를 먹으면서 갑자기 한국의 막걸리 친구가 생각이 난다. 함께 왔다면 좋아했을 터인데… 두 가지 다 먹어볼 요량으로 시켰지만, 양이 많다. 순대 죽은 우리 순댓국에 녹두를 넣어 끓이면 비슷해질 것 같다. 다만 느억맘 소스를 조금 타서 간을 맞추면 말이다. 냄새도 없고 부담도 없어 술 마신 다음 날 먹으면 속도 편할 것 같았다. 

    계산을 마치고 일어서자 주인 할머니는 많이 남겼다고 뭐라고 그런다. 한국이나 여기나 음식 남기는 것은 미덕이 아닌 것 같다. 두 종류 다 먹어보고 싶은 호기심이 불러온 결과다. 그렇다고 남은 음식 싸 들고 갈 수도 없어, 미안한 마음마저 남기고 그곳을 나섰다. 골목을 나서 길을 하나 건너자 바로 호안끼엠 호수다. 나는 박물관에서 돌아서 왔지만 알고 보니 나의 숙소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다.       


    10.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제 오후 지인들에게 나누어줄 간단한 선물과 녹차 세 봉지로 쇼핑을 끝냈다. 공항으로 향하기 전에 아들, 딸과 카카오톡을 했다. “선물은?” 물었더니 망고 젤리랑 몇 가지를 요구한다. 할 수 없이 베트남 공항 면세점에서 젤리와 말린 과일 등을 샀다. 

    여러 번의 베트남 여행을 하는 동안 내가 좋아하는 기념 접시, 차 등을 산 적이 있다. 호찌민과 달랏에서도 여러 차 종류를 사서 그동안 쭉 마셔왔다. 그러나 값은 쌌지만, 품질은 그리 좋지 않아서 이번에는 차 전문점에서 품질이 최고로 좋은 녹차를 달라고 해서 구입을 했다. 점원은 고산지대에서 여름에 채취한 것으로 자기네 가게에서는 제일 좋은 차라고 한다. 하지만 한국의 녹차에 비하면 가격이 매우 싸다. 제대로 된 맛이 난다면 나는 또 거의 일 년 동안 녹차의 향을 계속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열흘 동안의 여행이었음에도 쇼핑한 것은 별로 없어 가방은 비교적 가볍다. 여행자들은 베트남에 와서 커피와 말린 과일, 견과류, 더러는 치약까지 잔뜩 사 들고 간다. 커피를 그리 즐기지 않는 나는 늘 차만 몇 종류만 사서 돌아가는 것이 상례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가방에는 한 번도 입지 않은 반바지가 들어 있다. 겨울이라 해도 남부와 북부는 다르다. 경량 패딩은 어차피 한국에서 입고 온 것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트레킹화를 신고 온 것은 잘한 일이다. 또한 여름 샌들이나 수영복을 챙겨 오지 않은 것도 그렇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여객기에서 나는 잠시 창밖을 본다. 한국 땅 위에서 날고 있지만, 아직 구름 위다. 뭉실뭉실한 구름 위로 햇살이 내리쬐어서 눈이 부시다. 어쩌면 나는 열흘 동안 구름 위에 있었다. 내가 닿아간 하롱베이, 사파, 닌빈…… 바다, 구름, 강물 위를 일엽편주(一葉片舟)처럼 떠다녔다. 때로는 나의 의지로 때로는 내 계획과는 무관하게. 나의 삶과는 이질적인 공간과 시간 속에서 생경한 사물, 낯선 사람들과 조우했고 다시 그들과 이별했다. 그러나 그들은 당분간 나의 뇌리, 가슴속에 엄연히 자리할 것이고 때로는 안갯속의 꽃처럼 아련한 아름다움으로 남을 것이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또다시 여행을 떠난다. 어차피 이승에서의 삶 자체도 여행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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