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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시인 Jan 12. 2020

무이네 가는 길

- 호찌민, 무이네 자유 여행

     1. 모래 언덕에 앉아서

   

   따가운 햇볕, 그러나 푸른 바다에서 불어오는 짭짤한 바람이 그 뜨거움을 식혀주고 있었다. 낯선 곳의 모래 언덕에 앉아서 바라보는 사구와 호수와 먼 곳의 바다… 한 줌 쥐면 손바닥 안에서 마치 시간처럼 흘러내리는 모래알, 모래 언덕 아래로 내려가면 자연적으로 생성된 호수가 있고 그 너머에는 황무지처럼 거친 사막이 펼쳐진다.

화이트 샌듄의 일부 풍경

드문드문 나무들이 꽂혀있는 황량한 땅을 지나면 끊임없이 모래를 실어오는 바다가 흰 이빨로 해변을 물어뜯는다. 해가 뜨지 않아 아직도 어둠의 잔해가 남아 있는 낯선 모래 언덕에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하루를 맞이하고 있었다.     

  

    2. 두 번째로 호찌민에 


    2018년 7월 초, 금융계에 종사하는 후배 허 과장과 호찌민으로 날아왔다. 그와는 같은 운동 단체에 속해있어서 막역했고, 부부동반으로 중국이나 캄보디아를 같이 여행했던 여행 친구이기도 했다. 여름 방학을 통해 여행을 계획했지만 이번에는 부부간 서로의 일정이 맞지 않아 둘만이 함께 한다.

    호찌민은 2018년 1월에도 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학교의 김 교수의 일행 넷과 함께 한 7박 8일의 일정이었다. 방학만 되면 늘 자유 여행을 떠나는 김 교수에게 이번에는 나도 좀 데려가 달라 부탁하여 성사된 것이었다. 그들과 동행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여행을 하는지 경험하고 싶어서 동행한 것이었고 이번에는 내가 설계자가 되어 허 과장과 함께 하는 여정이다. 지난 1월은 관광이라기보다는 그저 휴식(힐링)을 위한 일정이었다. 늦게 일어나 산책하고 점심 먹고 차 마시고 마사지하고 저녁이면 맥주 한잔하는 등 휴식이 일정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호찌민의 초보인 나를 위해 노트르담 성당과 우체국 등을 들른 것이 관광의 전부였다. 

    6박 7일 일정인 이번 여행의 일정은 반은 휴식이고 절반은 관광이다. 전번과 크게 다른 점이 있다면 무이네에서 이틀을 지낸다는 것이다. 자유 여행의 초보자이기에 우선 경비 절약을 목적으로 한국의 저가 항공사를 선택하여 왕복 항공권을 구입했다. 아울러 호찌민의 숙소는 아파트로 정하고 무이네는 김 교수의 조언에 따라 중저가인 2~3만 원대의 숙소로 정했다.

    모든 일정은 내가 우선 짰지만, 하루하루의 구체적인 계획은 정해진 것이 없었다. 나는 허 과장에게 경비를 총괄하는 총무 역할을 맡겼다. 여객기 운임, 호텔비, 교통비, 식비, 기타 경비를 예상하여 100만 원씩을 각출하여 공동경비로 사용하기로 했다.      

  

노르트담 성당 주변

    3. 현지에서의 비싼 수업료


    호찌민의 공항에 내린 것은 오후 2시쯤, 전번 여행에서 체득한 여행의 비결, 택시는 마일린이나 비나선을 타야 한다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었다. 떤선녓(Tan Son Nhat) 국제공항에서 우리가 가야 할 아파트는 8~9km 정도다. 호객행위를 하는 기사들을 따돌리고 우리는 소형 마일린 택시를 잡아타고 시내로 향했다.  이미 두 번째의 호찌민이라서 그런지 지난 1월보다는 낯설지가 않다. 한참을 지나자 눈에 익은 길거리, 건물들도 보인다. 여름이지만 오히려 한국보다는 덥지 않다. 내가 떠나올 무렵 한국은 연일 30도 후반을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위력을 떨치고 있었다.

  “생각보다 그리 덥지 않네요!”

    허 과장도 내 생각을 읽었는지 한마디 보탠다. 열대지방으로 떠나왔는데 오히려 덜 덥다는 것은 어쨌든 여행의 복이다. 그러나 앞으로의 날씨가 어떨는지는 모른다. 배낭 속에 있는 우산과 방수 점퍼를 쓸 기회가 몇 번이나 있을 것인가? 나도 의아하다. 

    운전기사는 아파트 인근에 차를 정차해주었다. 그리고는 길 건너면 바로 목적지라고 손짓으로 일러준다. 택시비를 지불하고 차가 떠난 뒤 허 과장이 얼굴을 찡그리며 뭔가 잘못되었다고 한다.    

    “12만 동인데 120만 동을 준 것 같아요!”

    택시는 쏜살같이 문을 닫고 사라져 버렸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가는데 바가지요금이 심하다 해서 마일린을 탔는데 이번에는 환율에 대한 착각으로 실수를 한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쏟아진 물인데…

    “어쩔 수 없지 뭐, 그냥 한국에서 택시 탄 거라고 생각해요.”

아파트 베란다에서

    당황해하는 허 과장을 진정시키며, 오자마자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것이라고 여겼다. 처음부터 겪게 된 실수는 앞으로 일정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며칠 동안 어떤 일이 또 우리를 기다리게 될 것인가? 자유 여행 초보자들이 겪는 이러한 경험이 나중에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그 뒤에 깨닫게 되었다.

    사실 베트남 여행하는 사람들이 처음 겪는 혼란과 실수는 환율의 차이다. 베트남 동과 원은 대략 20:1이다. 12만 동은 20으로 나누면 6천 원이다. 그런데 택시의 미터기는 0 세 개는 대략 생략하고 천 단위로 제시된다. 5~7의 숫자(250원 ~350원)부터 시작하는 미터기에 120이 나오면 12만 동인데 이를 120만 동으로 착각한 것이다. 베트남의 상점에서도 대략 천 단위의 0 세 개는 제외하고 상품 가격을 표시하기도 한다. 따라서 368-로 적혀 있다면 368,000 동 즉 한화로 1만 8천4백 원쯤이라고 보면 된다. 허 과장이 겪은 혼란과 착각을 사실 나도 겪은 적이 있다. 택시비를 계산할 때 내가 관여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다.     

     

     4. 한산한 도심 주변의 아파트에서


    우리가 묵을 아파트는 제법 큰 건물이다. 10여 층의 빌딩 내에는 주민들이 거주하는 아파트, 우리처럼 관광객이 묵는 곳 그리고 호텔로 사용하는 곳 등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한국에서 출력한 예약 명세서를 내밀었지만 직원은 한참을 쩔쩔매고 있다. 그러더니 내가 예약한 평수는 없고 더 큰 방이 있는데 괜찮냐고 물어본다. 

    둘이 며칠 지낼 아파트는 방 두 개에 꽤 넓은 응접실까지 있다. 한국의 28평~29평쯤의 아파트와 비슷하다고 할까. 내부의 시설도 깨끗한 편이다. 베란다의 커튼을 열면 호찌민 시의 빌딩과 공원이 내려 보인다. 우리 돈 6만 원 정도의 비용이라면 싸다고 생각들 수밖에…

노트르담 성당 전면

    숙소에 대략 짐을 풀고 호찌민 시내를 산책하기로 하였다. 우선 먼저 벤탄 시장 근처의 쌀 국숫집으로 향했다. 1월에 김 교수가 나를 데리고 왔던 곳이다. 이곳에서 손님들이 주로 먹는 것은 소고기 쌀국수인 ‘퍼보’(pho bo)나 닭고기가 들어간 ‘퍼가’(pho ga)가 아니라 ‘분 리에우’라고 선지 덩어리와 베트남식 어묵, 고기완자 등을 향채와 함께 먹는 국수다.

    이번 여행의 동료인 허 과장은 평소 동남아 음식에 대한 일종의 결벽증이 있는 인물이다. 지난번 캄보디아 및 리장에서도 향신료가 곁들인 음식은 잘 먹지 못했다. 그래서 여행 때마다 컵라면은 물론 볶은고추장, 멸치, 깻잎절임, 김 등등을 한 가방 싸서 다녔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일절 한국 음식은 가져오지 않았다. 현지 음식에 대한 적응이 그의 목표 중 하나라고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표정을 살피면서 쌀국수에 고수를 듬뿍 넣어 한 젓가락 올린다. 그도 주저 없이 젓가락 가득 국수를 말아 올린다. 그리고는 한 마디 던진다.

    “먹을 만하네요!”  

벤탐 시장 앞 쌀 국수

    나는 처음 호찌민에 온 동료를 위해 프랑스 식민시절에 지어진 노트르담 성당, 호찌민 중앙우체국으로 향했다. 여름인데도 호찌민은 겨울과 마찬가지로 관광객이 그리 붐비지는 않는다. 유럽인들 사이에 가끔 한국인들도 보인다. 나는 중앙우체국에서 환전을 하고 우체국 옆의 책거리에서 주스를 마신 다음 베트남에서 콩 카페와 더불어 유명한 하이랜드에서 연유를 넣어 얼음과 함께 시원하게 즐기는 ‘카페 스어 다’(Ca Phe Sua Da)를 마셨다. 우리는 호찌민에서 누릴 수 있는 것들, 관광, 음식, 커피, 맥주, 마사지, 산책 등을 즐긴 다음 무이네로 떠났다.     

 

     5. 무이네 가는 길


    무이네로 향하는 침대 버스는 신투어리스트와 풍짱, 두 군데의 버스회사가 널리 알려져 있다. 2주 전쯤 무이네를 다녀간 김 교수의 조언을 따라 풍짱의 버스표를 예약하려 했지만 우리가 들른 현지 여행사에서는 탐한 버스표를 끊어주었다. 3일 차 아침, 우리는 부랴부랴 짐을 싸 들고 픽업 장소인 데탐 거리에 위치한 여행사로 나섰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서 문을 연 식당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여행사 근처에서 반미 두 개를 샀다. 가격을 우리 돈, 천 원 정도로 기억한다. 한참을 기다린 뒤 봉고차 한 대에 타라고 한다. 그리고는 이십 여분은 달려 도심을 벗어난 대로에 주차된 버스로 갈아탔다.

    처음 타보는 침대 버스라서 눈치껏 신발도 벗어 들고, 대략 자리를 잡자 버스가 출발한다. 호찌민 외곽을 지나자 숲이 우거진 평원과 황톳빛의 강물이 넘실대는 강변, 고무나무가 무성한 농장, 자그마한 마을 등을 지난다. 휴대전화로 뉴스를 보다가 음악을 듣다가 잠깐 잠이 들었다. 버스는 두 시간 여를 달려서 잠깐 휴게소를 접어든다. 잠시 쉬는 동안 나는 반미를 베어 물었다. 맛이 괜찮다. 그런데 허 과장은 먹을 생각이 없단다. 

    출발한 지 다섯 시간 정도가 지나자 해변을 끼고 버스가 달린다. 본격적으로 개발이 덜 되어서 그런지 한적한 해변이다. 늘어선 야자수가 바닷바람에 긴 머리칼을 날리고 있다. 버스는 작은 도시의 쇼핑센터 앞에 잠시 섰다. 차장 역할을 하는 베트남 청년이 여기서 내리라고 한다.     

숙소 베란다에서 바라 본 무이네

  

    6. 세계의 젊은이들이

 

   호텔은 골목길을 오 분쯤 올라서 언덕 위에 있었다. 서너 개의 건물 가운데는 작은 풀장이 있는 곳이었다. 창문을 열고 작은 베란다로 나가면 무이네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을 지나면 해변과 바다가 보이는 멋진 풍경이다. 쉬는 시간에 양말과 속옷을 빨아서 베란다에 널었다. 따가운 햇볕과 바람 속에서 금방 마르고 있다. 

    허 과장과 호텔 주변을 둘러본다. 호텔 가운데에 놓인 풀장 주변에는 유럽인들이 가득하다. 아무리 눈을 부라리고 찾아보아도 동양인은 우리만인 것 같다. 이 풀장에서는 수요일은 오후 7시부터 이벤트 행사가 열린다고 한다. 오늘도 수요일이니 저녁때 구경하러 나와야 할 것 같다. 풀 주변에 놓인 의자에는 수영복만 입은 젊은 유럽인들이 일광욕을 즐기고 있고 몇몇은 물놀이에 열중이다. 

   해질 무렵  산책을 나섰다. 무이네는 우리의 면 단위 정도의 아주 작은 읍이다. 호텔이나 리조트가 주이고 음식점, 기념품점을 겸한 가게, 커피숍 등이 도로를 마주해있고 도로를 건너면 해안가이다. 바닷가에 왔으니 해산물을 먹자는 나의 제안에 허 과장도 흔쾌히 응한다. 우리는 해안에 접해있는 비교적 큰 규모의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다. 기본으로 볶음밥을 시키고 게, 오징어 등 해산물 요리를 주문했다. 평소 소주를 즐겨 마시는 허 과장을 위해 베트남의 보드카인 25도의 넵 머이를 시켰다.

    이국의 바닷가에서 오랜만에 둘은 회포를 풀었다. 25도의 넵 머이도 소주 비슷한 맛이라 부담이 없다. 한 병으로는 모자라 한 병 더 마신 다음에 우리는 얼근해진 몸으로 호텔로 향했다. 호텔로 가는 골목에는 현지 여행사, 음식점, 가게, 맥줏집이 문을 열고 있었다. 우리는 현지 여행사에서 해돋이 관광을 신청하고 맥줏집에 들어섰다. 그곳에는 유럽인들이 삼삼오오 어울려 무이네의 저녁을 즐기고 있었다. 그곳에서 영국에서 왔다는 청년과 젊은 여성 둘과 합석해 잠시 대화를 나누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해변 근처의 레스토랑

    호텔의 풀에서는 아직도 이벤트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풀을 가로지르는 나무가 놓이고 그 위에서는 젊은이들이 베개 싸움에 열중이다. 베개에 얻어맞아지는 쪽은 풀에 첨벙 나가떨어진다. 그때마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박장대소한다. 얼핏 보아도 글로벌한 광경이다. 게임 진행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모인 것 같다. 월드컵 베개 싸움의 이벤트가 한참 진행되었다. 10년만 젊었으면 우리도 한국 대표로 한 번 나갔을 텐데…     

 

     7. 모래 언덕에서 해돋이를


    새벽 4시가 지났다. 어두컴컴한 방을 밝히고 시간을 확인한다. 오늘 5시에 해돋이 관광을 출발하기로 했는데, 허 과장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옆방의 방문을 두드려 준비하라고 일러주고는 대략 배낭을 꾸리고 나선다. 허 과장은 엊저녁의 술이 덜 깨었다. 똑같이 마셨지만 술이 깨지 않은 것은, 나보다 주량이 덜해서가 아니라 일정 속에서 몸의 관리가 달라서 그렇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제 아침도 그는 반미를 먹지 않았다. 깔끔하지 못한 길거리의 반미에 식욕이 동하지 않았다고 엊저녁 실토를 했었다. 또한 매끼마다 왕성하게 고수와 향채를 먹어대는 나와는 달리 억지로 먹는 음식이 제대로 소화될 리가 없다. 평소 음식에 까탈스럽고 소식하는 나이지만 집만 나서면 달라진다. 생존에 대한 본능일까? 아니면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의 발로인지는 모르지만 여행을 나서면 왕성해지는 나의 식욕을 어떻게 설명할는지… 어쨌든 나는 말짱한데 아직 숙취로 고생하는 그를 끌고 다니듯이 시작한 현지 투어이다.

    지프 투어의 운전자는 이십 대 중반의 현지 청년, 그는 우리는 화이트 샌듄(White sand dune), 레드 샌듄(Red sand dune), 요정의 샘, 피싱 빌리지로 안내하기로 되어 있다. 새벽 5시에 출발해 화이트 샌듄에서 일출을 보고 그 이후 여러 장소를 둘러보고 돌아오는 일정으로 오전 9시 30분 정도면 끝나는 투어다.

    낡은 일본제 지프는 우리를 태우고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길로 접어든다. 해안가를 끼고 달리는 차들 모두가 관광객이 타고 있다. 관광객 몇몇은 오토바이로 목적지로 향하고 있다. 30분쯤 달리고 나서 우리는 화이트 샌듄으로 오르는 언덕 아래에 도착했다. 벌써 많은 관광객이 일출을 보러 와있다. 그곳에서 다시 지프를 갈아타고 언덕을 오른다. 더러는 지프 더러는 4인승 둔버기로 사구를 오른다. 허 과장과 나는 지프에 몇몇의 동승자와 함께 탑승했다.

화이트 샌듄(White sand dune)에 올라서

    파도와 바닷바람이 만든 모래 언덕은 멀리까지 연해 있다. 바람은 끝없이 모래를 쌓아 올리고 또한 무너뜨린다. 모래바람이 만든 작은 언덕과 벼랑 위를 지프가 질주한다. 마치 곡예를 하듯 놀이기구를 타듯 그렇게 질주하고 나면 비교적 높은 모래 언덕 위로 오른다. 그곳에서 관광객들과 함께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자 붉어진 바다와 하늘 위로 해가 솟구친다. 아직 술이 덜 깬 허 과장과 몇 장의 사진을 찍으며 나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고 있었다. 얼떨결에 맞이한 무이네에서의 아침이다. 

    열대지방이라지만 아침은 선선하다. 바다가 인접해있어서 시원한 바람이 모래 언덕을 쓸면서 다가온다. 파도와 바람이 만든 이 자연의 걸작은 해변을 끼고 널리 펼쳐져 있다. 얼핏 보면 마치 사막 같다. 낙타 몇 마리쯤을 풀어놓아도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나는 모래 언덕 위에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동안의 긴장과 불안, 내일에 대한 염려까지도 내려놓고 바람과 햇빛, 바다와 구름이 연출하는 아름다운 광경에 젖어들었다. 욕망을 쫓아다니던 과거의 시간이 마치 한 줌 모래와 같다는 허무한 생각마저 떨쳐버리고 그저 장엄한 자연 속의 일부로 나란 존재마저 망각한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화이트 샌듄을 보고 나자 레드 샌듄은 그저 단순한 모래 언덕에 불과해 보인다. 화이트 샌듄과는 달리 레드 샌듄은 일몰을 보는 장소로 유명하다고 하지만 경치는 화이트 샌듄보다 못한 것 같다. 많은 중국 관광객들이 모래 언덕에 앉아서 떠들썩하게 대화를 즐기고 있는 그곳에서 우리는 반미와 계란 프라이로 간단하게 아침을 대신했다. 허기를 면하자 비로소 ‘조금 살 것 같다.’고 허 과장이 토로를 한다. 술이 덜 깬 그를 끌고 오다시피 해서 이루어진 무이네에서의 해맞이 었다.

   가이드가 요정의 샘 입구까지 데려다주고 40분을 줄 테니 다녀오란다. 요정의 샘은 침식된 지형을 따라 흐르는 시냇물을 말한다. 아주 작은 입자로 된 모래톱을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우리는 걷는다. 신발은 벗고 맨발로 말이다. 중국, 유럽 관광객들도 우리처럼 한 손에는 신발을 한 손에는 휴대전화를 들고 걸어간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침식된 지대가 만들어낸 풍경들을, 나무와 풀과 숲을 만난다. 엊그제 호찌민에서 산 짝퉁 아디다스 모자와 어제 무이네에서 산 리넨 옷을 입고, 배낭을 메고 모래 위를 걷는다.   

요정의 샘을 걷는 도중

    우리가 들리기로 했던 피싱 빌리지는 그저 바다뿐이다. 어제 파도가 세어서 배가 출항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기대했던 어시장도 열리지 않는다고 가이드가 전해준다. 해산물 안주에다가 해장을 상상했던 나는 실망이지만 어쩌랴, 용왕님이 도와주시지 않는데… 그저 황량한 풍경의 사진 한 장만 달랑 남기고 숙소로 돌아온다.

    우리를 안내했던 현지인 청년은 이제 스물넷, 가이드 생활을 해서 한 달에 얼마 정도를 받느냐고 묻자 그는 겸연쩍은 듯이 250불이란다. 우리 돈으로 30만 원도 안 된다. 새벽부터 부랴부랴 운전하랴, 안내하랴 고생했는데 한 달에 30만 원도 안 된다고 하니, 참 안됐다. 그래도 불만 없이 자기 일 묵묵히 하는 이 순진한 청년이 고맙다. 사진 찍고 5달러를 팁으로 주었다. 혹 너무 적은 것은 아닐까? 생각도 하면서…     

  

    8. 혼자서 수영과 산책을


   호텔로 돌아온 허 과장은 말 그대로 녹초가 되었다. 몸이 안 좋단다. 걱정이 된다. 호찌민에서 무이네까지의 일정, 그리 무리한 여정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장시간의 버스 탑승과 과다한 넵 머이까지, 겹친 피로가 풀리지 않은 탓일 것이다. 오늘은 사실, 오토바이를 빌려서 이곳저곳을 둘러보기로 했는데 모두 취소하고 숙소에서 쉬기로 한다. 오토바이 운전을 위해서 출국 전에 국제면허증까지 준비했는데…

   대략 점심을 먹고 허 과장은 침대 위에서 휴식이고 나는  풀에서 수영을 했다. 뜨거운 햇볕 때문인지 풀장은 나뿐이다. 대략 십여 번 자유형으로 풀장을 왕복하고 나서 쉬기로 한다. 그저 편안하게 헤엄치는 모습이 이채로웠던지 사람들이 물끄러미 쳐다본다. 10여 년 이상 수영을 해왔기에 몸에 밴 실력이 탄로 났지만 어쩌랴 나를 위해 하는 짓인데. 수영을 즐기면서 그동안 긴장되었던 근육도 풀어주고 마음도 느긋하게 재충전한다. 그런데 물이 너무 따뜻해 금방 지친다. 

    결국 허 과장은 홀로 두고 무이네 읍내로 산책을 나섰다. 햇빛이 따가워선지 거리에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카페에 앉아서 망고주스를 마시며 생각했다. 다음에 올 때는 키보드도 가져와야지 하고… 무게 때문에 탭북만 가져오고 키보드는 놓고 온 것이 후회가 된다. ‘키보드만 있었다면 이럴 때 글이라도 쓰면 좋을 텐데’란 생각이 든다. 그래 다음 여행부터는 그때그때의 생각을 글로 남기자고 다짐해본다.     

무이네의 해변 풍경

  

    8. 여행을 되돌아보며


    일주일의 일정으로 들른 호찌민과 무이네, 첫 번째 내가 설계한 자유 여행이었다. 처음부터 큰 기대를 한 것도 아니고, 큰 걱정을 하지도 않았기에 커다란 감동이나 즐거움을 느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소소하게 마주했던 정경, 사람, 음식, 사물들이 새로운 느낌, 정감으로 다가온 여행이었다. 어디엔가 구속되지 않고 무엇인가에 묶이지 않고 가방 하나 메고 자유롭게 쏘다닌 곳에서 마주친 자유롭다는 이 느낌, 그것이 나의 최대의 즐거움이고 행복이었다. 마치 주마간산 격으로 대강 둘러보고 온 무이네, 마치 사막과도 비슷한 모래 언덕이 있고 바다가 있는 공간, 호찌민과는 달리 한적하고 여유로워서 힐링의 장소로는 최적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일주일쯤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고 재충전하는 데는 적격이다. 심심하면 오토바이를 타고 여기저기를 구경을 한다든가, 해 질 녘에는 산책을 즐기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언젠가 다시 들러 찬찬히 보고 싶다.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  내가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 그 즐거움, 새로움, 느낌을 나누고 싶다. 

   

   무이네에서 호찌민으로 돌아오는 길, 침대 버스에서 6시간 동안 잠들지 못하고 여러 생각에 잠긴다. 이국에서 새롭게 인식하는 나의 삶, 그래 좁은 공간 속에서 닫힌 생각으로 살아온 나날들... 이제 보다 넓은 공간에서 열린 생각으로 살고 싶다는 느낌, 차창을 스치는 경치를 보면서 몇 구절의 메모를 한다. 그리고 얼마 뒤 그것은 한 편의 시가 되었다.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내게는 무이네의 정경과 내음이 깃들어 있는 마음의 사진 한 장이다.      

 

 무이네 가는 길     


늘 춥지 않은 나라

가도 가도 숲이 이어지고

이름 모르는 꽃과 나무를 만난다.

가방 하나 배낭 하나로 떠나온 길

일상日常과 이별하고 시작된 시간

해안을 지나 사구沙丘로 오른다.

바람은 모래를 몰아오고

모래는 쓸쓸한 발자국을 덮어버리고

모래 언덕 너머로 멀리 

바다가 고래처럼 웅크리고 있다.

물빛처럼 반짝이는 시간에 잠입해 있다가

침대 버스에 몸을 누이고 바라보는 세상

나는 왜 낯선 거리의 문자들만 해독하려는가.

저 멀리 천변만화千變萬化 하는 구름과

구름 너머의 하늘을 보려 하지 않는가.

              -졸시 <무이네 가는 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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