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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석 Aug 21. 2022

하루끼 씨를 말할 때 하고 싶은 이야기

하루끼씨와 소설 속 소실점에 대해

좋은 작가에 대해 이야기는 하는 건 역시 늘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역시, 편하게 읽어주시고 '흠...' 정도의 반응이라도 보내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더위가 계속 될 거라면, 마음 같아선 '25미터짜리 풀장 하나가 가득찰 만큼의 맥주나 마시고, 바 하나의 바닥이 가득찰 만큼 5센티미터 두께의 땅콩 껍질이나 어질러 놓고 싶을' 정도입니다. 하루끼 씨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속 주인공들처럼 말이죠. 각자의 여름을 어떻게 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제가 줄곳 상상해왔던 여름은, 가벼운 차림과 존 르카레의 신작으로 어영부영 시작합니다만 요즘은 이런저런 일들로 그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워커홀릭은 아닙니다만, 이상하리만치 일이 몰리는 시기가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같은 시기에도 이렇게 꾸준히 찾아주시고 어떤 일이던 믿고 맡겨주시는 분들이 계신다는 사실에, 새삼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런 마음으로 매 주 마주하게 되는 일들에 임하고 있습니다. 워커홀릭도 거물도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바쁘게 지내다보니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에 대한 기호가 점차 뭉특해지는 것 같습니다.


선호나 기호같은 감각이란 건 어느 날 갑자기 둔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쉽게 알아차릴 수 없죠. 그렇게 이러한 종류의 문제들은 대부분 일종의 소실로 이어지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 알 수 없고, 그래서 끝을 모르는 교통 정체만큼이나 난감하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하루끼 씨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저는 하루끼 씨 소설들을 참 좋아합니다. 하루끼 씨의 소설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그들 기저에 소실된 삶의 일부를 각자의 방법으로 메꾸고 회복하려는 의지 같은 게 있습니다. 저는 감히, 하루끼 씨가 그 부분을 숙련된 열쇠수리공처럼 소설 속에서 술술 풀어내는 부분을 늘 높게 삽니다. 물론 저에게는 '색깔을 상징하는 이름의 친구들과 함께한 믿을 수 없이 완벽한 균형의 그룹' 같은 걸 만들어 본 적도, '사랑하는 이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미스터리한 이유 혹은 어떠한 사정상의 설명 따윈 없이 홀현히 곁을 떠난 적' 또한 없습니다만, '삶의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손에 쥔 모래가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처럼 때때로 알게 모르게 갖가지 것들을 조금씩 소실해 가고 있다' 라고 생각 할 때가 있습니다. 선호나 기호가 뭉뜩해지는 것도 저는 그러한 부류의 일들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스스로에게 일어난 제 나름의 '소실'들을 그간 어째어째 나름대로 잘 회복해왔던 것 같습니다. 그건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 그래왔던 것처럼, 저에게도 동일하게 회복하려는 의지를 부여하곤 합니다. 그러나 저는 아닌 밤중에 멋들어지게 스파게티를 삶는다거나, 삶은 그린 피 따위에 맥주를 홀짝홀짝 마시며 갑작스럽게 걸려온 전화 같은 걸 받지도, 더더욱이 고양이와 대화를 시도하거나 마른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일도 절대하지 않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푸조 205 해치백 모델 같은 걸 타고 동해의 삼척 같은 해변가 마을로 무작정 떠날 형편과 여유가 있다면 좋겠지만 막상 그렇지도 않고, 재규어나 레인지로버의 기품있는 구형 모델을 번갈아 모는 여유있고 지긋한 중년 이웃의 도움 따위도 받을 수 없죠. 저에게는 그저 좋은 가격에 싸게 구입한 1인용 암체어 하나가 있을 뿐입니다. 이런 날에 이런 기분이라면 아마도, 덱스터 고든의 <You've Changed>콜트레인 퀸뎃의 <Say It> 같은 걸 듣는게 적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길 기다리는 게 그저 전부인 날엔 이만한 것도 없는 셈이죠. 그러다 보면, 어딘가에서의 하루끼 씨 말처럼, '현실적으로 평범한 그룹과 비현실적으로 평범한 그룹의 인간들 사이' 그 어딘가 쯔음에 위치하거나 도달해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 걸, 저는 묶인 매듭 같은 걸 풀기에 더 없이 흥미로운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싫어했지만 좋아진 것과 좋아했지만 싫어진 것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시작했으나, 쓰고보니 이야기가 샜습니다. 싫어했지만 좋아진 것도, 좋아했지만 싫어진 것도 이제는 다소 뭉특해져가는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또 한 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늘 그렇듯 과정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좋은 쪽으로던 나쁜 쪽으로던 삶을 더 풍부하게 만듭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글을 썼더니, 그만 두서 없이 길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좋은 글과 나쁘지 않은 글은 분명히 다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운 좋게 쓰는 일의 안 팎에 머물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꼭 좋은 글을 써보는게 꿈입니다. 제 소개가 늦은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모쪼록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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