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읽은 김애란 작가님의 [입동]은 어린아이를 잃은 젊은 부부의 슬픔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글을 읽는 내내 아팠다. ‘봄이랄까 여름이란 걸, 가을 또는 겨울이란 걸 다섯 번도 채 보지 못하고’라는 표현이, 아이를 잃고 나서도 아내를 ‘영우 엄마’라고 부르는 주인공의 모습이 아파서 책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세상엔 내가 감히 공감할 수 없는 감정들이 많지만,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은 그중에도 단연 1등이 아닐까 싶다. 아직 부모도 되지 못한 내가 그 슬픔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곤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가끔 마주하는 안타까운 소식들이나,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를 바라보며 가늠 정도 해보는 것이다.
몇 년 전, 신호를 깜빡 놓친 차에 치일 뻔한 적이 있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달려오는 차를 멍하니 바라보며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을 볼 때면, ‘저 정도면 피하고도 남았겠네’ 하며 비웃곤 했는데, 초록 불인데도 속도가 줄어들지 않는 승용차와 운전자의 경악하는 표정을 보면서도 정말 한 발짝도 뗄 수가 없었다. 어이없게도, 그 순간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와 이렇게 가는구나. 우리 엄마 아빠 어떡하지.’
다행히 승용차는 내 코 앞에서 멈췄지만, 그날 이후로 나는 내가 언제든 죽을 수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득문득 달려오는 차를 바라보며 했던, 어쩌면 내 마지막일 수 있었던 걱정을 떠올리곤 한다.
‘내가 죽으면, 우리 엄마 아빠는 어떡하지?’
그래서 가끔 나는 부모님께 괜히 장난스러운 말투로 “엄마 아빠, 가는 덴 순서가 없어. 내가 먼저 죽을 수도 있지.”하는 짓궂은 말을 건네곤 한다. 그럼 “기지배, 무슨 그런 재수 없는 말을 해?” 하시며 따가운 시선을 보내실 것을 알고 있지만, 애써 모른 척하며 장난 반 진담 반 저 불효 막심한 말을 건넨다. 그렇게 하면 두 분께 나의 죽음이 적어도 ‘상상 정도는 해본 일’이 될까 싶어서다.
물론 그런 일은 없어야 하겠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혹시라도 엄마 아빠가 당신 딸의 죽음을 먼저 마주하게 된다면, 그게 상상도 못 해본 슬픔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내가 위로해 드릴 수 없는 두 분의 슬픔이 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슬픔일까 봐, 나는 그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