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ense of an Ending> - 기억이라는 거짓말
"History is that certainty produced at the point where the imperfections of memory meet the inadequacies of documentation."
"역사는 불완전한 기억이 불충분한 기록을 만나는 지점에서 만들어지 확신이다."
"Memory isn't what we've done, but what we've told ourselves about what we've done."
"기억은 우리가 겪은 일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다"
줄리안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다시 읽었다. 몇 년 전 처음 이 책을 덮었을 때 느꼈던 그 불쾌감을 이제는 설명하고 정리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소설은 60대의 평범하고 온건한 남자 토니 웹스터의 시선으로 시작된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특별할 것 없지만 꽤 괜찮았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옛 연인 베로니카의 어머니가 남긴 기묘한 유산—자살한 친구 에이드리언의 일기장—을 추적하며 그가 쌓아온 '선량한 인생'의 성벽은 처참히 무너져 내린다.
학창 시절의 기억, 첫사랑 베로니카, 그리고 천재였던 친구 에이드리언의 자살. 소설 전반부에서 토니가 공들여 소개한 이 아름답고 아련한 기억들은 후반부에 이르러 모조리 '믿을 수 없는 거짓'임이 폭로된다.
처음 읽었을 때 나를 자극했던 것은 베로니카의 태도였다.
에이드리언과 베로니카 어머니 사이의 비극적인 관계는 어디까지나 성인 대 성인으로서 그들이 선택한 책임이다. 토니가 젊은 시절 보낸 비열한 편지가 방아쇠가 되었을지는 몰라도, 그것이 비극의 원인 그 자체일 수는 없다. 에이드리언의 질문, "만약 토니가(What if Tony...)"에 대해 나는 단호히 "No"라고 답한다.
그럼에도 베로니카는 "넌 여전하구나(You still don't get it)"라며 모든 비극의 화살을 토니에게 돌린다. 논리적 비약이자 감정적인 폭력처럼 느껴졌던 이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아주 작은 우연 하나로 세상은 변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쩌면 그 우연을 만든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는 건 아닐까? 게다가 토니는 어쨌든 악의를 가지고 있었다. 비난을 받아도 그리 억울할 것은 없다.
진정한 불쾌함은 작가의 메시지에 있었다.
토니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기억을 왜곡한다.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유지하려 그 잔인했던 편지의 기억을 뇌에서 삭제해 버린다. 현실에서 목격해온 '비겁한 사람들'—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딴소리를 해대며, 자신에게 유리하게 과거를 조작하는 이들—의 모습이 토니에게 투영되어 역겨움을 더했다.
작가는 독자를 토니의 합리화에 강제로 동승시킨 뒤 결말에 이르러 묻는다. "너도 토니처럼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이 질문은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해온 나에게 모욕적인 일반화처럼 느껴졌다. 나는 토니가 아니며, 내 기억을 그렇게 비겁하게 편집하지 않는다고 외치고 싶었다.
줄리안 반스는 토니를 통해 "이것이 인간의 보편성"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누구나 기억을 의도적으로 왜곡한다고. 너도 그렇다고. 그게 불쾌했다.
사실 나는 기억력에 꽤 자부심이 있다. 과거의 세세한 순간들을 영화 장면처럼 기억해 내는 나에게 친구들은 종종 놀라곤 한다. 그렇기에 작가의 질문은 더 당황스럽고 공격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나의 불쾌함은 작가의 의도를 다소 오해한 데서 기인했는지도 모른다. 토니의 '비겁함'은 소설적 장치일 뿐, 본질은 인간 기억의 근원적인 불완전성에 있다.
줄리안 반스가 사별한 아내를 그리워하며 쓴 『Levels of Life』에는 가슴을 울리는 문장이 있다. 아내가 떠난 후, 이제 누가 나의 기억을 '확인(Corroborate)'해줄 수 있겠느냐는 한탄이다. 내 기억은 그 기억을 공유한 타인과의 교차 검증을 통해 비로소 '사실'의 지위를 얻는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 기억을 함께 짊어졌던 이들이 하나둘 곁을 떠나면, 홀로 남겨진 내 기억이 진실인지 왜곡인지 증명할 길은 영원히 사라진다.
토니가 베로니카를 통해 마주한 것은 단지 끔찍한 진실만이 아니었다. 자신의 기억을 교정해 줄 유일한 통로인 타인(에이드리언)의 부재, 그리고 그로 인해 영원히 '자기만의 서사'에 갇혀버린 노년의 고독이었다.
나는 여전히 토니의 비겁함을 혐오하며, 내가 그와 같은 부류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러나 타인의 부재가 불러올 기억의 고립을 생각하면, 나의 선명한 기억력조차 일종의 오만일지 모른다는 서늘한 예감이 든다. 결국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확인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불완전한 역사를 각자 써 내려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