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북 2/100]달리기를 말할 때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고통은 필수, 고뇌는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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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와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회고록이다. 지난 달 (1월 14-24일) 하와이의 해변가에서 달리기를 하다 왔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곳도 하와이였다. 20여년 전인 2005년, 지금의 나와 나이가 비슷한 50대 후반의 하루키는 하와이에서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하고 자신에 대한 이야기 같기도 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왠지 기쁘다. 이 인기있는 작가와 나 사이에 공통점이 하나 있는 것 같은 기분.



작가는 32세에 달리기를 시작했다. 하루키가 소설가가 되기 전 식당을 했다는 사실은 이 책을 보고서야 알았다. 매일 12시가 넘어 가게 문을 닫고 장부를 정리하면 두시 쯤이 넘어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고. 꾸준히 정말 열심히 해서 빚을 다 갚을 수 있겠다고 희망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쯤 작가는 처음 소설이란 걸 써보았고 이걸로 당선이 되고. 이후에도 가게를 계속 하면서 새벽에 시간을 쪼개어 두 어 권을 더 썼다. 그러다 진지하게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고 가게를 정리한 다음, 2년인가 걸려 장편 소설을 쓰고 나니 살이 찌고 건강이 엉망이 되어서 32세가 되었을 때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재능'보다 중요한 건 '지속성' (Focus & Endurance)


하루키는 소설가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로 재능 다음으로 '집중력'과 '지속력'을 꼽는다. 달리기와 글쓰기에 공통적으로 필요한 능력이다.


하루키는 달리기가 꾸준한 반복을 통해 '근육에 명령을 내리는 과정'이라고 얘기한다. 너는 매일 10킬로를 달려야 하니까 이 정도는 강해져야 해라고 말이 아닌 행동을 통해 내리는 명령. 그리고 글쓰기가 신체적으로 엄청난 집중력과 에너지를 요하는 작업이라고 털어놓으며 달리기를 통해 체력을 키우고 늘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되었다고 한다.


그는 자유롭고 놀기 좋아하는 소설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하루키가 본인을 평범한 재능의 소유자이며 다만 엄청나게 성실하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 놀라웠다. 겸손한 사람이다.


그리고 어쩌면 나도 지금부터라도 내게 글을 쓰는 재능이 있는지 알아보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 재능이 있는지 알아보려면 그 전에 최소한 하루 4시간은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며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 선택이다. (Pain is inevitable. Suffering is optional.)


영어로 더 의미가 명확해지는 문장이다. 곱씹을수록 좋은 문장이다.


어느 마라토너가 항상 되뇌던 문구라고 한다.

「痛みは避けられないが、苦しみは自分次第だ」 (이타미와 사케라레나이가, 쿠루시미와 지분시다이다)


하루키는 달리기를 할 때 너무 힘들어서 "아, 괴롭다, 더는 못 뛰겠다"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고백한다. 이때 '아프다(Pain)'는 것은 신체가 보내는 정직한 신호라 거부할 수 없지만, 그 뒤에 '괴롭다(Suffering)'고 느끼며 무너지는 것은 순전히 자신의 재량(의지)에 달린 문제라고 말한다. 즉, "아프지만, 이 고통을 내가 어떻게 요리할지는 내 마음이야"라고 주도권을 놓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소설 쓰기를 우아하고 지적인 작업이라 생각하지만, 하루키는 이를 '삭막하고 육체적인 노동'이라고 정의한다. 장편 소설을 쓰는 건 몇 달, 몇 년간 책상 앞에 앉아 근육을 쥐어짜는 일이라고. 그리고 달리기를 통해 그 '육체적 고통을 견디는 훈련'을 했다고 한다.


하루키는 평생 풀마라톤을 거의 30여번 완주했다. 많은 러너들이 그렇 듯, 하루키는 마라톤 시합에서 남을 이기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 이기고 싶은 대상은 오직 '어제의 나'. 어제보다 1초라도 빨리 뛰거나, 어제보다 조금 더 즐겁게 뛰는 것. 그 과정에서 겪는 피로를 '고통'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자신을 완성해가는 공정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 책은 달리기에 대한 그러면서 작가로서의 하루키에 대한 회고록이었다.


러너스 블루


하루키는 홋카이도에서 100km 울트라 마라톤을 완주하면서 예상치 못한 경험을 한다. 본인의 신체적 한계를 넘은 고통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 마치 해탈한 것처럼 평온해지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이 마라톤 후에 이른바 '러너스 블루(Runner's Blue)'가 찾아온다. 갑자기 달리기에 대한 신선한 의욕이 예전처럼 솟구치지 않게 된 것.


하루키는 트라이애슬론으로 종목을 넓혔다. 수영을 배우는 과정, 트라이애슬론 도전기를 책에 소개했다. 이 기간 중에도 달리기를 하긴 하지만 그 전만큼의 열정은 없었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서 그 전보다 조금씩 퍼포먼스가 떨어져 간 것도 이유 중의 하나일 수도 있겠다고 했다. 그러나 또 어느날 갑자기 달리기에 대한 신선한 열정이 다시 찾아오고 보스톤 마라톤을 준비하면서 이 책을 쓴 것.


거의 30년을 달려온 작가가 러너스 블루에서 벗어나 다시 열정에 차서 달리기에 대한 글을 쓸 때, 나는 이제 막 달리기를 시작한 지 4개월이 되었다. 비교할 만한 경험이 없다. 아직 풀마라톤도 뛰어보지 않았고, 100km 울트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러너스 블루가 무엇인지, 해탈 같은 평온함이 무엇인지, 열정이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 무엇인지 -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달리기가 나에게 힘을 주고, 근육을 주고, 지속할 수 있는 능력을 주기를 바란다. 하루키처럼.



ps: 이 책은 강남구 전자 도서관에서 전자책으로 빌려 읽었다.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행복한 기분으로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다. 처음 사용해보는 전자 도서관. 세금으로 제공되는 혜택들을 좀 더 알뜰하게 사용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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