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 대한 7가지 사실
Seven and a Half Lessons About the Brain
2월 21일 전자도서관 대출
저자인 리사 펠드먼 배럿 교수는 첫 강을 한 강이라고 하기엔 내용이 간략한 소개 정도라서 1/2강이라고 이름 붙였다. 하고 싶은 말만 간략하게 쓴 책이다. 불필요한 말을 삭제할 노력을 기울이기 싫어서 길게 출판한 책들과 달리.
7강과 1/2강, 20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얇은 책이지만 밀도가 높다. 뇌과학이라는 방대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군더더기가 없다. 읽고 나서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오류였던 걸 알고 당황했다. 뇌과학 입문서로 아주 좋은 책이다.
뇌는 '생각'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라, 신체의 에너지 자원을 관리하는 알로스타시스(Allostasis)를 위해 존재한다. 알로스타시스는 비유적으로 말하면 신체 예산(Body Budgeting) 작업.
파충류의 뇌, 포유류의 뇌, 인간의 뇌가 층층이 쌓여 있다는 유명한 삼위일체 가설은 틀렸다. 뇌는 하나다.
뇌는 네트워크다. 1280억 개의 신경세포, 500조 개가 넘는 연결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하고 유연한 구조.
아기의 뇌는 완성품이 아닌 조립 키트 상태로 태어나 태어난 후의 환경(적소)에 따라 배선된다.
뇌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예측하고 재구성한다. 경험이란 '주의 깊게 제어된 환각'이다.
말은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라 타인의 신체를 직접 조절하는 도구다. 신경계에 가장 좋은 것도, 가장 나쁜 것도 다른 사람이다.
정동(Affect)은 감정이 아니다. 뇌가 신체 예산을 관리하면서 실시간으로 보내는 원초적인 요약 신호다. 감정은 여기에 뇌가 의미를 덧입혀 만들어낸다.
최초의 생물은 아주 단순했다. 캄브리아기로 넘어가면서 상황이 달라졌는데 5억 년 전, 지구에 포식이 등장한 것. 잡아먹고 잡아먹히는 경쟁이 시작되면서 생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주변 세계를 더 정밀하게 감지하도록 진화했다. 그 결과물이 뇌다.
뇌는 왜 있는가? 우리는 보통 생각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그러나 리사 배럿의 대답은 다르다. 뇌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신체 예산을 관리하는 것이다.
신체 예산. 낯선 단어지만 개념은 직관적이다. 몸은 매 순간 에너지를 쓴다. 심장을 뛰게 하고, 근육을 움직이고, 체온을 유지하고. 이 모든 지출을 효율적으로 조율하는 것이 뇌의 본업이다. 그리고 여기서 결정적인 포인트가 등장한다. 신체 예산에 관한 한, 예측이 늘 반응을 앞지른다.
포식자가 덮친 다음에 도망치는 것은 이미 늦다. 뇌는 위험이 오기 전에 먼저 몸을 준비시킨다. 이 선제적 에너지 관리를 알로스타시스(Allostasis)라 부른다. 항상성(Homeostasis)이 변화에 '반응'하는 것이라면, 알로스타시스는 변화를 '예측'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뇌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우리가 전혀 모르는 사이에 일어난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뇌는 소화를 조율하고, 혈압을 조정하고, 다음 호흡을 준비하고 있다. 의식적 사고는 이 거대한 운영 시스템 위에 올라탄 얇은 인터페이스에 불과하다.
"뇌의 2%밖에 안 쓴다"는 오래된 미신이 왜 생겼는지, 이제는 이해가 된다. 우리가 의식하는 영역이 너무 작으니, 나머지는 잠자고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사실은 반대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그 98%가 더 근본적인 일을 하고 있었을 뿐.
뇌는 철학자의 도구가 아니라 생존 기계로 진화했다. 생각은 그 부산물이다.
뇌과학 책을 꽤 여러 권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강을 읽고 나서야 내가 오래된 오류를 그대로 믿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삼위일체의 뇌. 도마뱀의 뇌(본능적 생존), 포유류의 변연계(감정), 인간의 신피질(이성). 이 세 층이 진화 순서대로 쌓여 있고, 본능과 이성이 끊임없이 싸운다는 그 이야기.
다윈이 《인간의 유래》에서 인간에게는 오래된 내면의 야수가 있으며 합리적 사고로 그것을 길들인다고 했을 때, 그리고 칼 세이건이 1977년 《에덴의 용》에서 이 개념을 대중에게 퍼뜨렸을 때, 우리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 이야기가 너무 그럴듯하게 들렸기 때문이다. 합리적 사고로 동물적 본성을 이겨내고 지구를 지배한다는 서사는, 인간이 믿고 싶어 하는 자화상과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최근 연구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진화는 뇌를 퇴적암처럼 층층이 쌓지 않았다. 뇌는 커지면서 재조직되었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처음에는 방 하나였다. 그 안에서 점점 더 많은 일을 하게 되자, 방을 거실과 침실로 나눴다. 나중에는 서재도 생겼다. 새로운 방이 덧붙여진 게 아니라, 같은 공간이 계속 리모델링된 것이다. 분리와 통합을 반복하면서.
척추동물의 뇌는 겉보기엔 제각각이지만, 생물학적 구성 요소는 놀랍도록 같다. 다만 만들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를 뿐이다. 대뇌피질의 신경세포가 형성되는 단계에서 인간은 설치류나 도마뱀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더 커진다. 새로운 부품이 추가된 게 아니라, 같은 재료로 더 정교하게 더 크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신피질(Neocortex)', 즉 '새로운 피질'이라는 이름 자체도 사실 정확하지 않다.
인간의 뇌가 도마뱀보다 더 진화한 것이 아니라, 다르게 진화했다는 것. 이 작은 표현의 차이가 꽤 많은 것을 바꾼다.
그렇다면 우리 안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무엇인가. 본능과 이성의 싸움이 아니다. 뇌는 하나이고, 신체 예산을 가장 합리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협동한다. 다만 뇌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예측하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서는 가끔 엇박자가 난다. 이것이 우리가 "비합리적"이라고 부르는 순간들의 정체다. 야수가 이성을 이긴 게 아니라, 뇌가 낡은 지도로 새로운 길을 찾으려 한 것뿐이다.
대니얼 카네만의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은 사람이라면 시스템1과 시스템2를 기억할 것이다. 빠르고 본능적인 반응의 시스템1, 느리고 사려 깊은 시스템2. 나도 오랫동안 이것이 뇌의 구조를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배럿은 여기서도 쐐기를 박는다. 그것은 마음의 작동 방식에 대한 심리학적 비유일 뿐, 뇌의 해부학적 구조가 아니라고.
뇌는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다.
1280억 개의 신경세포, 500조 개가 넘는 연결. 숫자로는 감이 잘 오지 않는다. 효율을 위해 신경세포들은 공항처럼 클러스터로 묶이고, 허브 역할을 하는 일부 클러스터는 뇌를 가로질러 멀리 떨어진 영역들을 연결한다. 이 배선 속에는 세로토닌,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흐르며 연결의 강도를 끊임없이 조율한다.
이 네트워크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신경세포는 죽고 또 태어난다. 연결은 사용할수록 강해지고, 쓰지 않으면 약해진다. 뇌 가소성이다.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공사 중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개념이 등장한다. 축중, Degeneracy. 어떤 행동이나 경험은 매번 다른 신경세포들의 조합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정 기억이나 감정을 담당하는 단 하나의 신경세포 조합이 있는 게 아니라, 비슷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로가 여럿 존재한다. 이 중복성이 뇌를 유연하고 강건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네트워크가 가진 가장 강력한 특성이 복잡성(Complexity)이다. 복잡성이란 단순히 복잡하다는 뜻이 아니다. 뇌가 이전에 만든 오래된 패턴의 조각들을 재조합해 엄청나게 다양한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내는 능력이다. 기억도 마찬가지다. 뇌는 컴퓨터처럼 파일을 저장하고 불러오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조각들을 끌어모아 재구성한다. 우리가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매번 새롭게 이루어지는 '조합'이다.
이 복잡성 덕분에 인간은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의 가장 넓은 지역으로 퍼져나간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막과 빙원, 열대우림과 고원.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뇌가 과거 경험을 새로운 방식으로 결합해 낯선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복잡성만으로는 부족하다. 인간의 뇌가 추상적 사고와 언어, 사회적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데에는 다른 동물에게서는 발견되지 않는 능력이 하나 더 필요하다. 압축(Compression)이다. 이것은 7강의 주제인데 2강과 연결한 편이 좋았을 듯 싶었다.
압축이란 무수한 신호들에서 중복을 제거해 요약하는 것이다. 모든 감각에서 들어오는 데이터를 압축하면 감각 통합이 일어나고, 감각 통합은 추상화를 가능하게 한다. 추상화가 가능해지면 물리적으로 전혀 다른 것들이 기능적으로 유사할 수 있음을 이해하게 되고, 소리를 단어로, 단어를 아이디어로 조합하는 언어가 탄생한다. 그리고 인간은 이 추상화된 예측을 소통과 협력을 통해 타인과 공유함으로써 사회적 현실을 창조한다.
돈의 가치, 국경의 의미, 법의 구속력. 이것들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함께 믿기로 한 것들이다. 사회적 현실을 만들고 공유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압축과 추상화 능력을 가진 동물은, 지구상에 인간뿐이다.
아기의 뇌는 태어난 후 주변 환경의 자극에 따라 이끌리고 조절된다. 이 과정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세부조정(Tuning)과 가지치기(Pruning).
세부조정은 자주 쓰는 신경 연결을 더 빠르고 강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미엘린(Myelin)이라는 절연 물질이 신경 회로를 감싸면서 정보 전달 속도를 높인다. 자주 다니는 흙길에 아스팔트를 까는 것과 같다. 반대로 가지치기는 쓰지 않는 연결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불필요한 잡음을 줄여 뇌를 효율적으로 만든다.
이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적소(Niche)다. 아기는 양육자가 만들어준 환경(적소) 안에 놓인다. 무엇을 보고, 어떤 소리를 듣고, 어떤 접촉을 경험하느냐가 그 아이의 뇌 배선을 결정하는 설계도가 된다.
그런데 왜 이런 리스크를 감수할까.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태어나는 것은 생존의 관점에서 보면 엄청난 도박이다. 인간이 덜 성숙한 채 태어나는 이유를 흔히 직립보행으로 설명한다. 좁아진 골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찍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그런데 뇌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 불가피한 선택이 오히려 엄청난 이점을 만들어냈다.
미리 완성된 뇌 대신, 태어난 후 환경에 따라 배선되는 뇌를 갖게 된 것이다. 북극에서 태어나든 사막에서 태어나든, 그 환경에 최적화된 뇌를 가질 수 있다. 진화 입장에서도 효율적이다. 수조 개의 신경 연결 지침을 유전자에 일일이 적어두는 대신, 태어난 후 주변을 보고 배워라는 짧은 전략 하나로 충분하다.
결핍처럼 보였던 것이 사실은 가장 유연한 전략이었다.
우리는 눈으로 세상을 본다고 생각한다. 귀로 듣고, 피부로 느낀다고.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뇌가 재구성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뇌가 만들어낸 '주의 깊게 제어된 환각'이다.
물을 마시면 혈류에 도달하는 데 20분이 걸린다. 그런데 갈증은 마시는 순간 거의 바로 해소된다. 뇌가 미리 예측해서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경험이란 세상을 있는 그대로 찍은 사진이 아니라, 뇌가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그려내는 예측도다.
그리고 여기서 더 놀라운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무언가를 감지하고 나서 행동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반대다. 뇌는 우리가 인식하기도 전에 이미 행동을 개시하도록 배선되어 있다. 과거의 경험과 현재 상황을 바탕으로 다음에 일어날 일련의 행동을 미리 준비한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의식 밖에서 일어난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뇌의 예측에 끌려다니는 존재인가.
배럿은 여기서 중요한 반전을 제시한다. 예측은 난데없이 나타나는 게 아니다. 과거의 경험에서 온다. 그 말은 곧, 지금 내가 무엇에 나를 노출시키느냐가 미래의 예측을 바꾼다는 뜻이다. 반복 연습을 통해 특정 자동 행동을 더 많이 일어나게 할 수도 있고, 미래의 경험을 더 많이 제어할 수 있다.
오늘의 행동이 내일 뇌가 내놓을 예측이 된다. 그리고 그 예측이 자동으로 내일의 행동을 이끌어낸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왜 그렇게 우리에게 영향을 끼칠까? 칭찬 한마디에 하루가 달라지고, 무심코 던진 말에 하루 종일 언짢은 경험. 배럿은 이것이 단순한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뇌에서 언어를 처리하는 많은 영역이 몸 내부도 함께 제어하기 때문이다. 말은 생각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신체를 조절하는 도구다.
다른 사람의 말은 당신의 뇌 활동과 신체 계통에 직접 영향을 끼친다. 당신의 말도 타인에게 똑같이 작용한다.
그렇다면 말이 몸을 해칠 수 있을까. 일시적인 모욕이나 위협은 신체 예산에 순간적인 부담을 주지만, 뇌나 신체에 물리적 손상을 남기지는 않는다. 심장이 뛰고 혈압이 변하고 땀이 나지만, 신체가 회복되면서 뇌는 오히려 더 강해질 수 있다. 어쩌다 경험하는 스트레스는 운동과 같다. 신체 예산에서 잠시 인출했다가 곧바로 채워 넣으면, 우리는 더 강해진다.
문제는 회복할 기회 없이 반복되는 스트레스다. 만성 스트레스는 신체 예산을 지속적으로 적자 상태로 만들고, 시간이 지나면서 뇌를 조금씩 갉아먹어 실제 질병을 일으킨다. 언어폭력, 따돌림, 방치. 인간이 서로를 괴롭히는 방법들이 단순히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을 망가뜨린다는 뜻이다.
신경계에 가장 좋은 것은 다른 사람이다. 신경계에 가장 나쁜 것도 다른 사람이다.
좋든 싫든, 우리는 매 순간 주변 사람들의 뇌와 몸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마음의 보편적인 특징에 가장 가까운 것을 하나 꼽으라면, 배럿은 정동(Affect)을 든다. 우리가 흔히 '기분'이라고 부르는 것, 몸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느낌이다.
정동은 감정이 아니다. 뇌는 항상 정동을 만들어내고 있다. 지금 유쾌한가 불쾌한가, 에너지가 넘치는가 처지는가. 뇌가 신체 예산을 관리하면서 실시간으로 보내는 요약 신호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 요약 보고서를 기반으로 뇌는 나를 살리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 다음에 무엇을 할지 예측한다.
다만 신체 예산 활동이 어떻게 정동으로 변형되는지, 다시 말해 신체적인 것이 어떻게 정신적인 것으로 바뀌는지에 대한 명료한 답은 아직 없다.
우리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감정, 어쩌면 그것은 그저 신체가 지금 건강하고 적절한 상태라는 것을 전달하는 신호에 불과한 게 아닐까. 배럿의 또 다른 책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