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8장 — 고전주의 vs 구성주의 학자 정리
핵심 대립: 고전주의는 감정이 진화적으로 내장된 본질적 실체이며 외부 자극에 자동 반응한다고 본다. 구성주의는 감정이 뇌가 신체 신호·맥락·개념을 바탕으로 능동적으로 만들어내는 구성물이라고 본다. 배럿은 이 싸움에서 구성주의의 현대적 승리를 주장한다.
구성주의의 뿌리는 놀랍도록 깊다. 우리가 흔히 감정 연구를 20세기의 산물로 생각하지만, 마음이 세계를 능동적으로 구성한다는 생각은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의 마음은 즉석에서 지각을 구성한다. 무수한 물방울이 모여 강이 되듯. - 헤라클레이토스 (BC 5세기)
플라톤보다 100년 앞선 헤라클레이토스는 "인간의 마음은 즉석에서 지각을 구성한다. 무수한 물방울이 모여 강이 되듯"이라고 말했다. 외부 세계가 그대로 마음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그것을 구성한다는 이 통찰은 배럿 이론의 가장 오래된 선조다. 그러나 이 씨앗은 플라톤의 강력한 이성-감정 이분법에 눌려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18세기에 이르러 데이비드 흄과 임마누엘 칸트는 구성과 지각을 바탕으로 인간 경험을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음은 세계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경험을 능동적으로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철학은 이후 배럿이 신경과학으로 정식화할 "예측하는 뇌" 개념의 철학적 기반이 된다.
19세기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감정에 관해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주장을 했다. 우리는 흔히 슬프기 때문에 운다고 생각하지만, 제임스는 반대라고 했다. 우리가 울기 때문에 슬픔을 느끼는 것이라고. 즉 신체 변화가 먼저 일어나고, 감정은 그 신체 상태에 대한 뇌의 지각이다.
배럿이 특히 중요하게 보는 것은 제임스 이론의 철학적 태도다. 윌리엄 제임스에게 감정은 신체 변화에 대한 '지각'일 뿐, 그 뒤에 숨겨진 '본질'이나 '목적' 같은 것은 없다. 감정은 미리 배선된 프로그램이 아니라 뇌가 신체 신호를 해석하면서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다. 배럿은 이것이야말로 순수한 구성주의적 태도라고 본다. 배럿 자신의 이론—신체 내부 신호인 내수용감각(Interoception)이 감정의 재료가 된다는—은 사실 제임스의 이 통찰을 현대 신경과학으로 정식화한 것이다.
그런데 배럿은 8장에서 이 지성사의 흐름에서 결정적인 오류가 발생했다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바로 존 듀이다.
듀이는 제임스의 이론을 대중화하는 과정에서 치명적인 변개를 가했다. 그는 제임스의 이론에 다윈의 목적론을 슬쩍 끼워 넣었다. "우리가 신체 신호를 감정으로 지각하는 이유는 생존을 위한 특정한 목적과 기능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해석을 더한 것이다. 배럿의 표현을 빌리면, 듀이는 "제임스의 반본질주의적 견해를 다윈의 본질주의적 견해에 접목해버렸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심리학 입문서에서 배우는 '제임스-랑게 이론'의 교과서적 버전이 탄생했다. 그러나 그것은 제임스의 생각이 온전히 담긴 것이 아니라 듀이가 편집한 버전이다. 제임스는 감정이 '지각된 결과물'이라고 보았지만, 듀이는 감정을 '반응의 프로그램'처럼 묘사했다. 배럿은 듀이가 단어를 교묘하게 사용하여 마치 감정이 뇌 속에 미리 배선된 어떤 실체인 것처럼 오해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결과적으로 구성주의의 싹이 틀 수 있었던 제임스의 이론은 오히려 고전적 견해를 뒷받침하는 도구로 전락해버렸다. 이것이 20세기 심리학이 잘못된 방향으로 굳어진 결정적 계기 중 하나라는 것이 배럿의 시각이다.
이 견해는 인간의 내면에 '내면의 짐승' 혹은 '감정 전용 회로'가 있다고 믿는다. 감정을 우리가 조절할 수 없는 자동적인 반응으로 파악한다. 즉 "감정은 타고난 본능이다"
고전주의의 핵심 가정은 세 가지다. 감정 범주마다 보편적 본질이 있다는 것, 감정이 우리의 통제를 벗어나 얼굴과 신체를 통해 자동적으로 표현된다는 것, 그리고 감정이 외부 세계의 자극에 의해 촉발된다는 것. 배럿은 이 모든 가정이 현대 신경과학의 증거 앞에서 무너진다고 주장한다.
고전주의의 철학적 뿌리는 플라톤에서 시작된다. 플라톤은 이성과 감정을 날카롭게 분리했다. 감정은 욕망이며, 이성이 통제해야 할 내면의 짐승이다. 이 이분법은 이후 2000년간 서양 철학을 지배했다. 17세기 데카르트와 스피노자는 이를 이어받아 감정적 실체의 목록을 작성하려 했다. 감정에는 명확히 구분되는 본질이 있다는 가정 위에서. 배럿은 이 전통이 감정을 발견해야 할 자연적 실체로 보는 오류의 시작점이라고 본다.
19세기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서 감정 표현이 진화적으로 보존된 본능이라고 주장했다. 공포의 표정, 분노의 표정은 생물학적으로 내장되어 있으며 인종과 문화를 초월해 보편적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은 이후 폴 에크만에게로 이어진다. 배럿은 다윈의 본질주의적 견해가 이후 뇌과학에 잘못된 틀을 제공했다고 비판한다. 특히 뇌의 특정 부위에 감정 기능을 할당하려는 시도—변연계 개념—가 이 오류의 해부학적 표현이라고 본다.
20세기 심리학자 폴 에크만은 고전주의의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적 버전을 만들었다. 행복·슬픔·분노·공포·혐오·놀람의 6가지 기본 감정은 생물학적으로 내장되어 있으며, 문화와 무관하게 보편적인 얼굴 표정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에크만은 파푸아뉴기니 오지 부족을 연구하며 이를 입증하려 했고, 그의 이론은 교과서적 정설이 되었다. FBI·CIA의 거짓말 탐지 훈련, 공항 보안 프로그램, AI 감정 인식 기술이 모두 에크만의 이론 위에 세워졌다.
배럿의 비판은 방법론적 허점을 파고든다. 에크만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선택지를 미리 제시했다. 자유롭게 분류하게 한 것이 아니었다. 배럿과 연구자 마리아 겐드론이 나미비아 오지 마을 사람들에게 선택지 없이 사진을 분류하게 했더니 에크만의 6가지 보편적 패턴이 나타나지 않았다. 수천 건의 신경 영상 연구를 메타 분석한 결과, 같은 감정을 경험할 때도 뇌의 활성화 패턴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달랐다. 감정의 생물학적 지문은 없었다.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는 감정이 신체 기관처럼 전문화된 기능을 담당하는 정신 기관이며, 특정 유전자들이 감정의 실체라고 주장한다. 레다 코스미디스는 감정마다 관찰 불가능한 생득적 본질이 있으며 이것이 일종의 프로그램과 유사하다고 본다. 에크만과 같은 맥락이지만 진화심리학의 언어로 표현한 버전이다.
배럿은 뇌를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정신 모듈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고 반박한다. 우리가 관찰할 수 있는 것은 복잡한 방식으로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는 핵심 체계들뿐이며, 이를 통해 문화에 따라 여러 종류의 마음이 산출될 뿐이라고.
신경과학자 야크 판크세프는 뇌의 피질 아래에 있는 특정 회로가 감정의 실체라고 주장한다. 인간과 동물이 공유하는 원초적 감정 회로가 진화적으로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다. 배럿은 판크세프의 30년 이상의 연구를 직접 언급하며 반박한다. 피질 하부 회로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특정 감정을 전담한다는 증거는 없다는 것이다. 같은 회로가 여러 다른 심리적 상태에 관여한다는 것이 배럿의 반론이다.
데카르트의 오류》로 유명한 신경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고전주의와 구성주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다. 그는 감정이 신체 상태에서 온다는 신체 표지 가설을 제안했다. 신체의 신호가 의사결정에 핵심적 역할을 한다는 이 주장은 배럿이 부분적으로 계승한다. 내수용감각(Interoception)이 감정의 재료라는 배럿의 이론이 다마지오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마지오는 여전히 감정에 생물학적 본질이 있다고 보는 점에서 배럿과 갈라진다. 배럿은 다마지오를 유용한 선배로 존중하면서도, 그가 본질주의의 마지막 끈을 놓지 못했다고 본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대니얼 카너먼은 인간의 사고를 시스템 1(빠르고 자동적이며 감정적)과 시스템 2(느리고 의식적이며 이성적)로 구분했다. 《생각에 관한 생각》으로 널리 알려진 이 이분법은 플라톤의 이성-감정 대립의 현대적 버전이다. 카너먼은 시스템 1,2가 비유적 표현이라고 말했지만 배럿은 이러한 비유가 마치 뇌의 구조처럼 오해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이론이 단순한 학문적 논쟁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 배럿을 더욱 긴박하게 만든다. 고전주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막대한 예산과 자본을 빨아들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얼굴 사진을 분석해 감정을 인식하겠다는 목표 아래 AI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고, 애플은 표정에서 감정을 탐지하는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 이모션트(Emotient)를 인수했다.
공항에서는 에크만의 마이크로 익스프레션 이론을 기반으로 훈련된 보안 요원들이 테러리스트를 식별하겠다며 승객의 표정을 분석하고 있다. FBI와 CIA도 같은 훈련을 받았다. 스페인과 멕시코의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표정에서 투표 성향을 읽겠다는 이른바 신경정치학에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시스템의 과학적 정확도는 동전 던지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감정의 생물학적 지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얼굴에서 감정을 읽겠다는 시도 자체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배럿은 이것이 단순한 예산 낭비가 아니라고 말한다. 법 집행, 공항 보안, 채용 심사에서 얼굴 표정으로 내려지는 판단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틀린 이론 위에 세워진 시스템이 실제 사람들에게 실제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것이다.
배럿은 말한다. 고전주의와 구성주의의 이 싸움은 역사가 기록된 이래로 끊임없이 계속되었으며, 지금까지의 전투에서는 고전주의가 줄곧 우위를 차지했다고. 고전주의는 너무나 직관적이다. 우리의 감정은 자동적인 반응처럼 경험되기 때문에, 뇌의 특수한 부위에서 발생한다고 믿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이 이론은 수천 년간 법률·의료·교육 시스템에 뿌리 내렸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 신경과학은 우리에게 이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도구를 선사했고, 고전주의는 압도적인 증거에 직면하여 점점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헤라클레이토스에서 시작해 흄과 칸트를 거쳐 윌리엄 제임스에서 꽃을 피웠던 구성주의의 통찰이, 배럿의 손에서 마침내 현대 신경과학의 언어로 정식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한 학문적 논쟁이 아니다. 배럿의 말처럼, "당신은 세계의 사태에 그저 반응하도록 배선된 수동적 동물이 아니다. 당신은 당신의 경험과 지각을 생각보다 훨씬 더 크게 좌우한다. 당신은 예측하고 구성하며 행동한다. 당신은 당신 경험의 설계자다."
배럿은 이 싸움에서 구성주의가 이기고 있다고 선언하지만, 고전주의와 구성주의의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다. 배럿 스스로도 최근 논문에서 여전히 고전주의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을 정도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다만 흐름은 분명히 바뀌고 있다.
핵심 감정(Core Affect) 이론의 제임스 러셀, 배럿의 공동 연구자 크리스틴 린드퀴스트, 나미비아 실험으로 에크만을 반박하는 증거를 쌓아온 마리아 겐드론 등 구성주의 진영은 점점 두터워지고 있다. 상담과 심리치료 분야에서도 배럿의 이론이 실제 치료 모델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편도체 = 공포 센터"라는 개념을 대중화한 신경과학자 조셉 르두가 입장을 바꾸었다. 그는 편도체는 생존 회로일 뿐이며, 공포라는 감정은 그 신호를 뇌가 의식적으로 구성할 때 비로소 생겨난다고 말한다. 배럿이 비판한 바로 그 개념의 창시자가 배럿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 셈이다. 조셉 르두의 책은 다음 독서 목록이다.
과학은 옳거나 틀리거나이지 좋아한다의 대상이 될 수는 없지만 구성주의를 응원하게 된다. 2500년간 묻혀 있던 통찰이 이제야 과학의 언어로 복원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우리에게 수동적 반응자가 아닌 능동적 설계자로서의 가능성을 돌려준다는 것.나는 내 경험의 설계자가 되어 나를 바꾸어나 수 있다는 믿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