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뮤지엄 타샤 튜더 전시회
타샤 튜더 작가의 전시회를 다녀왔다. 타샤를 처음 알게 된 건 《타샤의 정원》이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책장을 넘기다 정원사 타샤에게 반해버렸다. 전시회는 본업인 그림 작가로서의 타샤를 좀 더 가까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전시회에는 타샤가 삽화를 그린 책들의 초판본이 진열돼 있었다. '비밀의 화원'의 삽화를 타샤가 그렸다는 걸 이날 처음 알았다. 전시에는 없었지만 타샤는 《소공녀》와 《작은 아씨들》의 삽화도 그렸다.
어린 시절 제일 좋아했던 책 중 하나가 소공녀였는데 50년 쯤 전에 내가 이미 타샤의 이름을 그 책 표지 구석에서 봤을 거라는 게 신기하다. 책이 많지 않아 본 책을 또보고 또보고, 동네 또래들의 책은 다 빌려본 한국의 저 시골 구석에서 자라는 어린 아이에게 타샤의 그림은 상상력을 키워주는 선물이었다. 여섯살 때 쯤 따라 그리려고 해봤던 것 같은데 그 때는 도무지 사람의 손가락을 그릴 수가 없었다.
타샤가 그린 그림책들은 내가 어렸을 땐 구하기 힘든 책들이었다. 그런 컬러의 그림책은 6학년이 되어서 부산이라는 도시로 전학을 와서야 처음 보게 되었다. 친구와 나는 전시된 그림책들을 보며 "부잣집 아이들의 집에 있었을 법한 책이다"라고 소근거렸다.
타샤 튜더는 동화책계의 노벨상이라 할 만한 칼데콧 명예상을 두 번 받았다. 1945년 《Mother Goose》와 1957년 《1 Is One》. 두 책 모두 전시회에서 볼 수 있다.
전시장 한편에서는 타샤 튜더의 다큐멘터리 하이라이트가 조용히 상영되고 있었다. 화면 속에서 타샤는 자신의 행복의 원천이 정원을 가꾸는 일이라고 말한다.
모네의 정원에 가본 적이 있다.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과 정원은 압도적이다. 꽃들은 화려하고 찬란하다. 타샤의 정원은 좀 더 다정다감하다. 정원사의 손이 아니라 작가가 직접 평생을 일군 30만평의 정원이다. 그녀가 삽화를 그린 《비밀의 화원》처럼, 어느 구석에는 모란이, 어느 모퉁이에는 장미가 숨어 있다가 자기의 계절이 오면 눈부시게 피어난다.
코기를 그린 원화들도 여럿 있었다. 타샤는 평생 코기와 함께 살았고, 그녀의 집 이름도 '코기 코티지'였다.
요즘 SNS에는 코티지코어 미학이 넘쳐난다. 린넨 앞치마, 들꽃 한 다발, 창가의 빵 굽는 냄새. 자연과 가까운 소박하고 느린 삶에 대한 동경이다. 주로 2020년대 이후 Z세대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진 감성인데, 타샤 튜더는 그 감성을 수십 년 먼저 실제 삶으로 살았다.
버몬트 시골, 19세기풍 집, 직접 짠 옷감과 직접 만든 양초. 타샤의 삶은 코티지코어가 하나의 미학적 트렌드가 되기 훨씬 전부터 그 원형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타샤에게 그것은 콘텐츠가 아니라 삶이었다는 것.
전시회의 한 구석에는 타샤 튜더의 집을 재현해 두었다. 사진찍기 위한 소품들로 채워두었다. 뭔가 아이러니한 느낌이 들었다. 백화점 한 구석의 전시회장에 플라스틱 소품으로 재현한 타샤 튜더의 집과 정원...
타샤의 정원에 있는 꽃들과 양치류 식물들을 그린 그림들을 보고 있는데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이런 정도는 나도 그릴 수 있어." "쌉가능!" "집에 가면 바로 그릴 수 있지." 미술을 전공한 대학 동기들일까?
틀린 말은 아닐 수도 있다. 타샤의 수채화는 따라 그리기에 그렇게 난이도가 높은 그림처럼 보이지 않는다. 인물 표현은 솔직히 어색한 편이다. 그런데도 그녀의 그림은 수백만 명의 독자에게 수십 년간 사랑받았다.
그림의 한끗차이 그것은 어디에서 올까? 나도 이렇게 예쁜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타샤의 수채화는 자신이 실제로 키우고, 보고, 만진 것들을 그린 그림이다. 정원의 모란은 그녀가 직접 거름을 주고 기다린 꽃이다. 다람쥐는 박제를 해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보면서 그렸다고...
타샤의 삶은 겉으로 보면 느릿느릿하다. 19세기풍 집, 정원, 촛불, 수제 잼. 그런데 그렇게 사는 건 사실 꽤 부지런해야 가능하다.
겨울이 채 끝나기 전에 거름을 뿌려야 하고, 잡초는 매일 뽑아도 어느새 다시 자라 있다. 꽃이 피면 꺾어다 집 안을 채우고, 양초를 만들고, 계절 음식을 준비한다. 그 와중에 타샤는 100여 권의 그림책을 그렸다. 소파에 누워 넷플릭스를 4-5시간 정주행하거나 유튜브를 멍하니 볼 시간은 없었을 것이다.
느리게 산다는 건 사실 아무것도 안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해야 할 것들을 부지런하게 꾸준히 하는 삶이다. 타샤가 보여준 건 그런 종류의 느림이다. 실제로 타샤는 "게으른 손은 악마의 놀이터"라고 말했을 정도다.
"나는 다림질, 세탁, 요리, 설거지 같은 집안일을 하는 게 좋아요. 가정주부는 멋진 직업입니다. 잼을 저으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으니까요". 타샤가 네 아이를 키운 싱글맘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그 모든 일을 해내며 살았다는 게 믿기 힘들 지경이다.
타샤의 성은 어머니의 성이다. 아홉 살 때 부모가 이혼했고, 그녀는 어머니 쪽 성인 Tudor를 따랐다. 1938년, 작가 토머스 맥크리디와 결혼해 뉴햄프셔 450에이커 농장으로 들어갔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17개 방짜리 낡은 농가였다. 남편이 글을 쓰고 타샤가 그림을 그렸다. 아이를 넷 낳았다. 옷은 손으로 빨았고, 아마포를 직접 짰다. 그리고 1961년, 이혼했다. 아이들은 아버지 성을 버리고 Tudor로 바꿨다.
1971년, 쉰여섯의 타샤는 《Corgiville Fair》의 성공으로 번 돈으로 버몬트 고지대에 땅을 샀다. 아들 셋이 손으로만 공구를 써서 집을 지었다. 1740년대 케이프코드 양식의 작은 집 — 코기 코티지. 타샤는 이사하자마자 제일 먼저 수선화 천 송이를 심었다. 그 후 37년, 그녀는 그 집과 정원에서 살다가 2008년 93세에 눈을 감았다.
타샤가 남긴 말: 이혼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었어요.
니콜 키드만이 톰 크루즈와 이혼한 후의 표정이 겹쳤다. 해방의 얼굴.
전시 제목은 "STILL, TASHA TUDOR — 행복의 아이콘, 타샤 튜더의 삶"이다. 행복의 아이콘. 타샤는 왜 그 수식어를 얻었을까. 다큐멘터리에서 타샤는 말한다. "인생은 불행하기에 너무 짧아요." 그녀는 매순간 행복하기로 결심한 사람같다. 삶이 편안하고 즐거워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행복으로 가득채우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
하지만 그녀의 행복한 겉모습만 보고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아마 누구도 그 넓은 땅을 직접 손질하며 눈을 감는 그날까지 잼을 만들고 싶지는 않을 듯.
타샤의 말처럼 — 행복하기로 결심하고,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을 찾아서 그걸 아주 열심히 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