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감정을 잘 말하는 사람이었다.
느낀 것은 곧바로 문장이 되었고,
문장은 다시
오해받지 않기 위해 정렬되었다.
앞뒤를 살피고,
톤을 낮추고,
혹시 모를 상처를 피해
의미를 둥글게 말았다.
그렇게 하면
어느 정도는 전해질 거라고 믿었다.
설명은 진심의 증거라고,
말을 다 하면
마음도 도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말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의 시선은
조금씩 흐트러졌다.
고개를 끄덕이던 얼굴은
어느새
결론이 있는 쪽을 먼저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종종 멈췄다.
이미 많은 말을 했는데,
정작 감정은
아직 출발도 하지 못했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감정을 다듬기 시작했다.
불분명한 말은 지우고,
거칠 수 있는 표현은 덮고,
이해되기 쉬운 방향으로 고쳐 썼다.
문장은 점점
매끄러워졌고,
감정은 점점
원래의 온도를 잃어갔다.
설명은 남았지만,
느낌은 빠졌다.
마치 포장지만 남은 선물처럼,
열어도
더 이상 놀랄 것이 없는 상태.
어느 날 문득
내가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보다
어떻게 말해야 무난한지가
더 중요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순간부터
말은 더 정확해졌고,
나는 더 멀어졌다.
그래서 나는
설명을 줄였다.
침묵을 택한 게 아니라,
감정을 보호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설명되지 않은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들은
말을 요구하지 않는 곳으로 이동해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쌓여간다.
그리고 언젠가
문장이 아닌 방식으로,
준비되지 않은 순간에
나를 다시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