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무계획 제주여행(10) 김녕과 함덕 나들이(230118)
어차피 내일은 온라인 프로그램에 참여하니 거의 집콕이다. 그래서 오늘은 좀 나가기로 했다. 일어나기 좀 귀찮더라도 침대 시트부터 교환하며 몸을 움직이고 아침밥도 챙겼다. 그렇게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오늘은 김녕과 함덕을 가 볼 생각이었는데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음을 느꼈다. 그래서 우선 김녕을 가고 컨디션을 봐가면서 함덕을 추가하든, 다시 집으로 올 생각이었다. 최근 내 최애 버스자리가 된 맨 앞 오른쪽 자리에 앉아 2시간 가까이 달렸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다와 구좌체육관이 눈에 띄었다. 바다를 보면서 운동하는 일상이라니. 너무 낭만적이지 않은가.
바로 옆에 있던 바다로 향했다. 김녕의 바다는 경계선이 뚜렷하다는 점과 모래바닥을 다 덮어놔서 모래바람을 안 맞아도 된다는 점이 가장 눈에 띄었다. 그리고 현무암들이 군데군데 박혀있어서 그런지 점박이 같은 느낌도 들었다. 아쉬운 점은 걷기에 마땅한 길이 없었다는 것. 그래서 잠시 바다를 보고 멍 때리다 돌 위로 올라가 바다의 경계를 좀 더 자세히 지켜봤다. 누가 금이라도 그어놓은 듯 선명하게 에메랄드와 네이비 빛이 나뉘는 바다라니. 꽤나 매력적이어서 더 보고 싶었지만 바람도 강한 데다가 인도 없는 차도뿐인 길, 밥을 먹을 만한 곳도 보이지 않은 작은 바다여서 함덕으로 이동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함덕까지 가려면 아까 내렸던 김녕해수욕장에서 같은 버스를 타고 조금 더 이동하면 되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버스가 도착했고 금세 함덕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바다가 빼꼼히 보이기 시작했는데 왠지 기대가 되는 마음으로 바다를 향해 걸었는데 그곳에서 난 내가 지금까지 만난 바다 중 가장 예쁜 바다를 만났다.
김녕처럼 함덕도 네이비와 에메랄드의 경계가 뚜렷한 바다였다. 그런데 김녕은 뭐랄까, 동네 어귀 어딘가에 무심히 내던져 놓은 느낌이라면 함덕은 함덕의 오른쪽을 지키고 있는 산과 왼쪽의 다리의 조화가 참 어울리는 곳이었다. 관광지처럼 조성해 놓긴 했지만 월정리처럼 노골적인 느낌보다는 적당히 카페와 편의시설을 두루 갖춘 느낌이어서 거북한 느낌도 없었다. 그리고 함덕 바로 옆에 있던 카페에서는 내가 BGM처럼 틀어두는 플리에 있는 곡들이 그대로 나와서 나와 같은 채널을 구독하고 계신다는 걸 단박에 알아차렸다. 이럴 때 괜히 카페 사장님과 내적친분 느껴지는 건 나만 그런 게 아니겠지? 마음 같아선 잠시 들러볼까 했는데 이제 슬슬 배가 고파오니 밥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함덕에서 혼밥이 가능한 맛집을 폭풍검색했다. 그리고 갑작스레 내리는 비에도 식당을 향해 꿋꿋이 걸어갔는데 이게 무슨 일이람. 브레이크 타임이었다. 1시간 뒤에 영업이 다시 시작될 예정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아무것도 안 먹기엔 너무 배가 고픈데... 고민을 하다가 편의점 기프티콘을 이 기회에 털 겸 간단한 간식거리를 사러 향했다. 그리고 바다를 좀 더 구경한 뒤 근처에 있다는 개인서점으로 향했다.
만춘서점이라니. 봄이 가득하다는 것일까? 하는 궁금증으로 문을 밀고 들어갔다. 공간은 협소했지만 사장님의 코멘트가 곳곳에 붙어있던 책장과 음반들은 무척 매력적이었다. 장르는 대부분 소설과 에세이 위주였다.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한 권 사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눈에 들어오는 책이 없어서 빈 손으로 나왔다.
그렇게 브레이크 타임 이후 입장할 수 있었던 맛집 '회춘'. 원체 비빔밥을 좋아하기도 하고 아직 제주도에서 돔베고기를 먹어보지 못해서 1인 비빔밥 정식을 주문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결과물은 생각보다 훌륭했다. 돔베고기에서 약간의 잡내가 있었지만 못 먹을 수준은 아니었고 전반적으로 정갈하고 깔끔한 상차림이었다.
밥을 다 먹고 버스시간을 확인해 보니 곧 버스가 도착한다고 했다. 굳이 브레이크 타임을 기다려서라도 회춘을 택한 이유는 숙소로 향하는 버스정류장 바로 맞은편에 있어서 편히 들어갈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식당에서 시간을 더 지체하지 않고 바로 버스로 향했다. 버스는 곧 도착했고 자리에 앉으려는데 갑자기 워치에서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확인했는데 알고 보니 SOS 버튼이 잘못 눌린 모양이었다. 경찰선생님들이 출동하신다는 문자였다. 너무 놀라서 황급히 전화를 걸어 잘못 눌린 것 같다, 너무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괜찮아요'라고 말씀해 주시는 목소리가 너무 따뜻했다. '정말 괜찮다, 당신에게 아무 문제가 없다니 정말 다행이다.'라는 말이 담긴 목소리였다고 해야 할까. 항상 시민의 안전을 위해 고생 많은 분들이 신데 번거롭게 해 드린 것 같아 죄송했고 그 한마디에 많은 위안을 얻었다. 늘 감사드립니다.
함덕에서 내 숙소까지는 두 시간 반 정도 버스를 타고 가야 했는데 살짝 잠이 왔다. '시간도 많은데 잠깐 잘까? 아니야, 이러다 밤에 잠 못 자면 어쩌려고. 너 요즘 맨날 늦게 자잖아.' 라며 내면의 싸움이 잠깐 일었는데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로 했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는 삶이 훌륭하진 않더라도 내 마음이 편하다면, 그리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졸릴 때 잠 좀 자는 게 대수인가. 그렇게 선잠에 들었는데 이어폰에서 샤이니의 곡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종현이 너무 보고 싶었다. 음악이나 연예인에 대해서 아는 건 별로 없지만 나는 아직까지 내 또래에서 종현 같은 감성의 그릇을 가진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그저 편히 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모든 우울에서 오롯이 해방되었기를. 그리고 나도 언젠가 이 모든 것들에 온전히 자유로워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