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일홈 Apr 29. 2021

브릭레인 빈티지 마켓부터 부촌 첼시 그리고 다시 소호로

 [프랑스 교환학생기] 17. 런던 넷째 날

오늘은 4개의 마켓을 돌았다. 스피탈필즈 마켓, 선데이업마켓, 백야드마켓, 브릭레인 마켓. 다 멀지 않고 가까운 거리에 있다. 메인 마켓은 브릭레인인데, 찾아가는데 좀 애를 먹었다. 당황한 상태에서 길을 묻자니 영어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수치스러웠지만,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것에 성취감을 얻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브릭레인 마켓은 런던만의 정체성을 많이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그야 말로 빈티지, 빈티지, 빈티지. 런던은 빈티지의 천국임이 틀림없다. 수많은 멋쟁이들과 빈티지 상점들, 맛집, 카페들이 어우러져 '힙'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줄을 서서 들어갔던 카페에선, 혼자 앉아서 딸기 스무디를 홀짝였음에도 나 따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디자인이 제각각인 오래된 빈티지 소파들, 카페 내부 가득한 그라피티와 젊은 사진작가의 작품인 것 같은 파격적인 사진들. 반라의 마일리 사이러스 사진이 걸린 천장이 낮은 화장실. 옆 사람에겐 아무도 관심 없는 분위기 덕에 나 또한 온전히 그 공간에 스며들 수 있었다.

 

젊은이들의 거리인 만큼 그라피티도 지천에 널렸다. 나는 관광객이니까 사진은 꼭 찍어야 한다. DSLR을 건네며 내 사진을 찍어달라 하니 외국인들이 재밌어한다. 그래 민망함은 잠깐이지만 사진은 영원하다. 그런데 이제 보니 안 찍는 쪽이 나았을 법하다. 이 시절 나 너무 살쪄서 이목구비가 사라질 지경이다.

 

나는 빈티지에는 크게 끌리지 않았지만, 기념 삼아 뭐 하나 사보려고 상점들을 기웃거렸다. 어디 폐장된 놀이동산에서 주워온 것 같은 인형탈을 쓴 마네킹이 있는 가게에 들어갔다. 으스스한 데다가 냄새도 퀴퀴하다.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아무래도 남이 쓰던 물건은 전 주인의 역사와 손길이 깃들어 생명이 다한 물건 같아 잘 손이 가지 않는다. 대신 가판을 깔아 놓고 힙합 음악을 틀어 놓은 채 생과일주스를 잔뜩 늘어놓고 팔던 흑인 아저씨에게 주스를 하나 사 먹는다. 한국에선 길거리 음식을 절대 먹지 않는데, 여행의 묘미는 길거리 음식임을 부인할 수 없다.

 

다음 목적지는 사치 갤러리. 이곳도 테이트 모던 다음으로 좋아하는 곳이다. 사치 갤러리가 있는 첼시 거리부터가 직선으로 길게 뻗은 도로로, 예쁜 가게들이 아주 많다. 또 갤러리가 너른 마당을 품고 있어 마치 하나의 아담한 집 같은 느낌을 준다. 햇살이 잘 드는 사치 갤러리에서 어린이용 킥보드를 가지고 즐겁게 갤러리 주변을 누비던 여자 아이와 아이를 데리고 있던 아빠의 모습이 갤러리의 완연한 일부로 녹아든다. 참 평화롭다. 갤러리의 현대 미술 작품들도 아주 흥미롭고 볼만했다. 젊은 작가들의 감성이 많이 녹아나는 작품들이었다. 나는 사치 갤러리에서 에코백을 하나 샀는데 이후로도 아주 잘 들고 다녔다.

 

갤러리를 나와서 첼시 거리를 하염없이 걸었다. 거리가 분위기가 너무 예뻐 걷는 일이 행복했다. 다만 이날 이후부터 허리가 좋지 않아 졌다. 장시간 걷는 여행자에게 편한 신발과 복장은 필수다. 나는 서점을 정말 정말 좋아해 외국에 가면 서점을 꼭 하나씩은 들리는데, 첼시에도 꽤 큰 서점이 하나 있어 한참을 머무르며 구경했다. 나는 특히 아트 서적을 보는 걸 좋아한다. 한국에서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싸서 사진 못한다. 대학생 때는 학교 도서관 공부하기 싫을 때마다 사람도 별로 없는 예술 분야 서가에 처박혀 아트 서적을 보며 힐링했던 기억이 난다. 아 참고로, 그 서점에선 와인에 관한 책을 한 권 사서 나왔다. 프랑스 집에서 매일같이 와인을 홀짝여댔는데, 무슨 와인들인지 조금은 알고 싶어서 말이다.

 

 다시 길을 걷는데, 3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가 지하철역 위치를 물어 현지인처럼 능청스럽게 대답을 해줬다. 그런데 가는 방향이 같아 조금 대화를 나누게 됐는데, 알고 보니 모나코에 사는 프랑스인이었다. 어찌어찌하다가 그 프랑스인이 내 번호를 물어봐서 번호를 알려줬다. 지금 생각해보니 왜 물어본 거지 싶다. 아무쪼록 그는 대화를 마치고 프랑스 프랜차이즈 빵집인 '폴'에 유유히 들어갔다.

 

마지막 여정은 소호 지구였다. 아무래도 나는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다. 소호에서 오니 없던 생기가 피어오른다. 소호 거리를 빛내는 화려한 조명과 발길을 이끄는 맛집들은 물론이거니와, 탑샵, 어반 아웃피터스 등 나를 유혹하는 수많은 물건들까지.  마음에 드는 물건들을 보면 없던 체력이 생겨나고 눈에는 빛이 나기 시작한다. 나는 이 화려한 것들을 놓칠 수 없었고, 자본가들이 만들어낸 욕망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쇼핑의 마무리는 역시 꺼진 배를 채우는 일이다. 친구가 데려간 Honest Burger라는 곳에서 햄버거를 먹었는데, 여기도 테이블 간격이 매우 좁았다. 버거도 버건데, 칩스(영국에선 감자튀김을 칩스라고 한단다.)가 아주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통통하고 길쭉한 감자칩을 어찌나 신선한 기름으로 튀겼는지 입안에서 으개지는 감자의 속살이 포슬포슬하니 입안이 행복해 미칠 지경이다. 후식으로는 내 마음대로 토핑을 정할 수 있는 요거트 가게에 갔다. 핑크빛 인테리어에 딸기향이 가득했던 요거트 샵. 알록달록한 토핑들만큼 내 마음도 기분도 알록달록 해지는 하루의 마무리였다.

작가의 이전글 폐쇄공포증, 스몰토크, 살바도르 달리, 스몰토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