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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Apr 20. 2021

폐쇄공포증, 스몰토크, 살바도르 달리, 스몰토크

[프랑스 교환학생기] 16. 런던 셋째 날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세인트 폴 성당이었다. 영국은 성공회 교파로 가톨릭인 다른 유럽 국가들의 성당과는 조금 다른 건축 양식을 선보였다. 세인트폴 성당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성당이라고 한다. 유럽의 성당은 언제 봐도 경이롭다. 아무리 봐도 신기한 돔 양식이나, 장식의 세세한 디테일을 살린 그 기술과 꼼꼼함까지. 심지어 몇 세기 이전에 고안해 낸 것이라니. 이와 같이 다양한 방면으로 인류 문명을 발달시킨 천재들과 장인들에게 다시금 경외심을 표한다.

 


우리는 세인트 폴 성당의 꼭대기로 올라갔다. 나는 폐쇄 공포증이 있어서 올라가는데 점차 숨이 막혀왔다. 올라가는 계단도 너무 좁고, 중간에 멈추면 올라갈 수도 내려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올라가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성당 꼭대기에서 보는 런던 전경은 아름다웠다. 런던이 내게 줬던 인상은 ‘현대화된 유럽’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유럽 특유의 전통적이고 고고한 느낌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것들을 많이 받아들인 느낌이었다. 런던의 랜드마크 타워브릿지도 마찬가지인 감상이 들었다. 파리 세느강 다리들보단 훨씬 웅장하고 현대적이지만 미국의 금문교나 한강의 무수한 대교들에 비하면 스케일은 아담하되 클래식함은 잊지 않았다고나 할까.

 


세인트 폴 등산을 마치고 배가 고파진 우리는 스페인 음식점에 갔다. 친구의 가이드로 가게 되었는데, 런던에선 역시 외국 음식을 먹어야 한다고 한다. 굉장히 어두운 조명에 차분한 분위기가 인상 깊은 곳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꽤 많아 차분한 인테리어 속에서도 복작거리는 재미가 느껴졌다. 괜스레 훈훈한 영국 신사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길 바라는 기대감도 스멀스멀 올라왔다. 우리는 바 자리에 앉아서 스테이크와 생선 요리에 포트와인을 곁들여 먹었다. 한참 즐거운 식사 시간을 보내던 중에 옆에 있던 외국인 여자가(남자가 아니고)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런던엔 어쩐 일이냐, 여행 중이다, 하며 우리는 즐거운 스몰 토크를 이어갔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니 스몰 토크가 굉장히 일반적인 걸 알게 되었고, 이런 정겨운 문화가 굉장히 재미있게 느껴지게 되었다.


 

그녀는 내가 계속 손에 쥐고 있던 유럽 여행 책자를 보고 내게 말을 건 것이었다. 나는 책을 소분해서 들고 다녔고, 영국 파트 마지막 페이지와 아일랜드의 첫 표지가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녀가 그 페이지를 본 것이다. 그녀는 아일랜드 사람이었고, 우리는 런던 그리고 아일랜드 이야기를 소소하게 나눴다. 스몰 토크의 마무리는 항상 "즐거운 하루 보내" 혹은 "즐거운 여행 보내"인데, 낯선 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없던 에너지도 생기는 듯하다. 참 기분 좋은 말이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은 테이트 모던이다. 런던의 현대 미술관인데, 미술관을 정말 좋아하는 나에게 런던에서 최고의 장소 중 하나로 꼽힌다. 규모가 정말 크고, 미술관 주변 전경도 정말 아름답다. 나는 현대 미술도 꽤나 좋아해서 미술관 내 작품들도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이 특히 인상 깊게 남았다. 달리는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자기가 살바도르 달리라는 사실이 너무 짜릿하다는 식의 명언을 남겼는데, 이런 자기애가 강한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관찰하는 건 매우 신나는 일이다. 관람을 마치고 해 질 녘 테이트 모던 앞에 있는 밀레니엄 브릿지를 거닐었다. 땅거미가 내려앉는 시각, 안개가 살포시 내려앉은 다리를 걸으니 다리는 무거워도 기분만은 구름 위를 걷는 듯 몽롱해져 온다. 지금 이 순간은 거대한 테이트모던, 쭉 뻗은 밀레니엄 브리지, 다리 아래에 유유히 흐르는 템즈강, 분홍색에서 쪽빛으로 변해가는 런던의 하늘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부지런히 걸어 다녔던 하루를 마무리하고 게스트 하우스 로비에서 잠깐 쉬고 있던 찰나, 한 여자애가 내게 말을 걸었다. 그녀는 캐나다 사람이었고, 런던을 여행 중이었다. 그녀와 높은 텐션으로 스몰 토크를 나눴는데, 대화 내용은 크게 기억나지 않는다. 난 친한 사람이 아니면 높은 텐션으로 대화하지 않는데, 여행을 다니면서 이런 텐션을 탑재하는 기능을 습득해버렸다. 어쨌든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캐나다의 수도가 오타와인 것을 처음 알았고, 페이스북 친구도 한 명 늘게 되었다. 그녀가 참 따뜻한 친구라는 걸 대번에 알 수 있었고 런던을 떠난 이후에도 몇 달간 종종 페북 메시지나 댓글을 주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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