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교환학생기] 15. 런던 둘째 날
유럽에 오면서 내가 확실히 성장한 부분은 바로 미식에 관한 것이다. 나는 한식만을 고집하는 사람은 아니었고, 가끔, 아니 좀 자주 라면을 먹는 것 이외엔 외국에서 한식을 찾아먹지도 해먹지도 않았다. 나는 유럽의 마켓이나 마트 등에서 다양한 식재료와 제품들을 접할 수 있었고, 유럽식 식사는 꽤나 내게 잘 맞았다.
런던에서도 즐겁게 식재료를 구경했던 곳으로는 바로 '버로우 마켓'이 있다. 버로우 마켓에 가면 우선 먼저 푸드 코너에서 그날의 에너지를 보충한다. 사람이 매우 붐볐는데, 그런 북적거림도 버로우 마켓의 묘미였다. 흰색 종이박스에 담긴 음식들을 이것저것 맛볼 수 있는 버로우마켓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었다. 나는 '에그 누들'이라는 것을 먹었다. 생각해보면 별 거 없는 음식이었지만, 제대로 된 식사 자리도 없는 그 마켓에서,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사람들 틈에서 먹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를 매료시켰던 것 같다. 또 버로우 마켓에는 'Mon mouth'라는 유명한 카페가 있다. 커피를 좋아하는 친구를 따라 그 카페에 들어갔는데 한국인 직원이 보였다. 워킹 홀리데이를 온 듯했다. 런던에서의 삶은 낭만적이기만 할 것 같았는데 그 직원의 표정은 매우 지쳐 보였고, 영혼이 없어 보였다. 다시금 모든 노동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버로우 마켓은 고급 백화점의 식료품 코너처럼 다양한 식재료들을 꽤나 깔끔하게 정리된 가게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각 부스의 주인들은 마치 자기 자식을 내어놓은 듯이 정성스럽게 디스플레이를 해놓았고, 정성스럽게 물건들을 다루고 있었다. 나는 이런 점이 참 좋다. 보기 편안한 배열, 색의 조화, 다채로운 질감 등이 우리에게 주는 만족감은 우리가 인지하고 있는 것보다 더 큰 부분을 삶에서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구경하기 재밌는 식재료 1위는 치즈가 아닐까? 말 그대로 형형색색의 치즈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치즈에 대해서 따로 누가 과외라도 해줬으면 좋겠다. 한편 나는 유럽에 온 이후로 특히나 '오일'에 눈을 떴는데 오늘 버로우 마켓에선 크로아티아산 트러플 오일을 구매했다. 불과 몇 주 전만 해도 '크로아티아'와 '트러플'과 '오일' 모두 내게 생소한 개념의 단어들이었는데, 이젠 내 품에 들어왔다. 요리에 야무지게 써야겠다. (그래 봤자 샐러드에 뿌리거나 리조또에 조금 뿌리는 정도로만 활용했다.)
오늘 들린 또 다른 마켓은 포토벨로 마켓이다. 여긴 빈티지 제품들이 있었는데, 그때 당시엔 빈티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흥미가 썩 가진 않았다. 빈티지에 관심이 생긴 지금, 그곳에 다시 간다면 그 빈티지 시장들이 조금 다르게 보일 것 같다. 그래도 화창한 날씨와 활기찬 분위기가 어우러져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닥터 마틴 매장에 들어가니 직원이 “Hi mate”라고 인사한다. 다른 인사말보다 나를 더 경쾌하게 만드는 것이 마치 힙한 런더너들의 친구가 된 기분이 든다.
포토벨로마켓을 나와서 노팅힐 지역을 찾았다. 동네 분위기가 확연히 고급스럽다. 하늘색, 베이지 등 밝은 톤의 페인트들이 칠해진 영화에서나 보던 집들. 넓게 뻗은 도로에 종종 보이는 ‘Fancy(고급스러운)’한 부띠끄와 카페들. 따사로운 햇살까지 내리쬐니 런던의 분위기를 만끽하기에 최적의 조건이다. 이 근처 어디에선가 노팅힐 영화도 찍었겠지. 여행을 하다 보면 영화나 드라마가 촬영된 곳에 찾아가 보곤 하는데, 사실 별 건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스토리의 배경이 된 곳에 왔다는 것 자체가 감격적인 것 아닐까? 노팅힐은 정말 사랑스러운 줄리아 로버츠만큼이나 사랑스럽고 눈부신 곳으로 내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