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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Jun 10. 2021

모나리자, 섹스앤더시티, 보그 편집장

[프랑스 교환학생기] 24. 나의 첫 번째 파리5

파리 국제기구에서 인턴 중인 능력자 언니를 만나기로 했다. 이 언니는 내 친구를 통해서 알게 되었는데, 외국에선 친하지 않아도 어떠한 인맥이라도 있으면 참 만나고 싶고 반갑고 그런 것 같다. 고독한 여행자에게 친구는 거의 구세주나 다름없다. 2월의 파리는 오늘도 역시나 추웠지만, 마음만은 훈기가 번지는 기분이었다.

 

파리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루브르 박물관에 드디어 왔다. 들어가는 줄이 매우 긴데 학생증을 사용해서 들어가서 금방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여독이 많이 쌓였는지 몸이 너무 피곤했고, 감흥도 없었다. 다른 박물관들에 비해 아는 작가가 많지도 않았다. 특히 이런 대형 박물관들은 고대 유물들이 많은데, 나는 그런 쪽에는 문외한인지라 관심이 가지 않았다. 모나리자는 3초 정도 보고 지나갔다. 루브르의 피라미드를 설계한 건축가가 중국계라는 사실이 오히려 가장 흥미로웠다. 루브르는 내부보다 외부가 더 흥미롭고 볼만 한 것 같다고 느꼈다.

 

작품을 봐도 음식만 보이기 시작한 우리는 서둘러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나는 파리 여행 전에 힙스터로 소문난 여행 전문가 친구에게 파리에서 들러볼 곳을 추천받았는데, 그중 한 곳이 이곳이다. 바로 KONG카페. 베트남에 있는 콩카페가 떠오르지만 연관은 없다. 이곳은 인테리어와 음식이 아주 "Fancy"한 곳이었다. 한 층은 오묘한 분홍빛, 주황빛 조명에 구조적으로 보이는 에그 체어들이 모던함을 자아내고, 다른 층은 파리의 건물과 도로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으로 파리의 클래식함 또한 놓치지 않은 듯했다.

 

무엇보다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TV 시리즈 "섹스앤더시티"의 주인공 캐리와 캐리 남자 친구인 알렉산드르의 전 부인이 함께 식사한 레스토랑이라는 것. 전 부인이 "hideous(흉측한)"라고 묘사한 여자 얼굴이 그려진 투명 플라스틱 의자들을 마주하니 너무 신이 났다. 음식을 먹기도 전에 배가 부른 것 같았다. 이 레스토랑이 나온 씬은 꽤나 비중이 있는 중요한 씬이었는데, 내가 바로 그 장소에 와있다니!


파리는 이렇듯 시도 때도 없이 나의 현실감각을 앗아가 버린다. 숱한 예술가들이 이 도시에 살았고, 이 도시에서 영감을 받고, 이 도시를 작품화했다. 이 도시에 있었던 헤밍웨이는 파리를 A Movable Feast(국내에서는 헤밍웨이의 이 책을 ‘파리는 날마다 축제’라고 번역했지만, 나는 직역인 ‘움직이는 축제’가 더 와닿는다)라고 묘사했다. 그렇다면 나는  A movable art piece라고 부르고 싶다. 파리는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문득 파리 지하철에서 실실 웃으면서 나를 대놓고 스케치하던 남자가 떠오른다. 여행자인 나를 파리의 예술작품으로 끼워넣어준 그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가.

 

레스토랑 음식은 양이 적은 것 같았지만 매우 배가 불렀다. 고기를 안 좋아하는 언니는 생선 요리를 시키고 나는 스테이크를 시켰다. 추운 곳에 있다가 따뜻한 공기를 쬐어서 그런지, 스테이크와 함께 먹던 감자무스 때문인지 배가 이상하리만치 부풀러 왔다. 가득 찬 위장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다. 소화를 시켜볼 요량으로 탄산수를 추가했는데 나중에 보니 한 병에 7유로였다. 그 사실을 알아챈 후 소화가 더욱 되지 않았다.

 

즐거운 식사와 대화를 마치고 Colette라는 편집샵에 갔다. 유명한 편집샵이긴 하지만 왜 이리 사람이 많나 했더니 Carine Roitfeld라는 전 보그 파리 편집장이 온 것이다. 스트리트 포토에서도 종종 보던 그녀다. 그녀 외에도 패션피플들이 바글바글. 모니터로만 보던 사람들이 튀어나온 것 같았다. 여기서 또 한 번 비현실을 실감한다. 파리 사람들은 이것이 일상이겠지! 파리가 나의 일상이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스멀스멀 차오른다.

 

편집샵을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언니가 힘들어 보여 스타벅스에서 쉬기로 했다. 스타벅스는 어딜 가든 우리의 친구인가 보다. 오랜만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마시고 체력 충전도 하며 쉬다가 스트라스부르로 가는 떼제베에 올랐다.

 

언니와 대화를 하다가, 유학을 통하면 2-3달 정도 파리에 머물며 어학코스를 밟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더 찾아본 후에 부모님께 말씀드려볼 작정이다. 파리에서 불어를 배우며 산다면 스페인이고 크로아티아고 필요 없을 것 같다. 이번 여행은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나를 정말 많이 성장시키고, 영감과 꿈을 불어넣어 주었으며, 내가 언제 무얼 했을 때 행복한지 알게 해 준 소중한 여행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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