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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Jul 13. 2021

프랑스의 황금 도시 낭시에서의 찬란하고도 쓸쓸했던 하루

[프랑스 교환학생기] 31. 낭시 여행기

한국인 교환학생 친구들과 같이 여행을 가기로 했다. 목적지는 스트라스부르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이면 가는 Nancy(낭시)라는 도시다. 낭시의 면적은 서울의 1/40 수준에 인구는 10만 명 수준인 작은 도시다. 어쩌다 이곳을 목적지로 정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난다. 그렇게 쫄래쫄래 따라나선 여행길. 둘 씩 나란히 마주 보고 앉아 기차를 타고 가자니 기차 여행 느낌이 나서 가슴이 몽글몽글해진다. 프랑스 기찻길을 달리며 소소한 대화를 나누는 순간들이 이렇게 소중해질 줄은 그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으니까.

 

낭시라는 도시를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황금"이라는 단어 외에 다른 단어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큼 도시 전체가 황금 장식, 하얀색과 베이지색의 건물 벽면, 화려한 위용을 뽐내는 성당의 높은 첨탑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도시의 규모가 크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건물들은 모두 나지막하고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것은 가끔 보이는 성당들 뿐이었다. 도시의 도로를 누비는 것도 오직 트램뿐. 차량도 많지 않았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낭시가 공업 도시라는데. 내가 방문한 스타니슬라스 광장 주변을 방문한다면 대체 어디가 공업도시의 면모를 보여주는 건지 알아차리기 힘들 듯싶다.

 

우리는 도시를 천천히 걸으면서 낭시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스타니슬라스 광장으로 향했다. 중간에 맥도널드에 들렀는데, 맥도널드와 스타벅스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우리는 프랑스 어린애들 틈에 끼어 프렌치프라이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도시 자체에 사람이 바글거리지 않다 보니 맥도널드도 꽤나 한산했다.

 

광장에 도착하니 다시금 이 도시가 "황금 도시"라는 점이 상기되었다. 이 나라는 왜 이리 모든 건물이 아름다운 건지. 사실 우리가 할 만한 것도 별로 없는 그저 넓기만 한 광장이었는데도 우리는 알 수 없는 충만함에 휩싸였다. 가늘디 가는 모질을 가진 금발의 머리칼을 휘날리며 뛰노는 어린아이들, 노부부가 손을 잡고 산책하는 모습, 젊은이들이 권태에 휩싸인 채 일터를 지키고 있는 모습까지. 한낮의 그 광장은 꽤나 조용했지만 꽉 찬 느낌이었다.

 

광장 바로 옆에는 현대미술관이 있었다. 미술관 관람을 사랑하는 나로선 혼자서라도 미술관 관람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리셉션에 도착하니 웬걸 한국인 직원이 있었다. 낭시에서 미술 공부를 하시는 분이었다. 우리는 그분께 맛집에 대한 정보를 얻는 등 소소한 담소를 나누었다.

 

낭시에서의 미술관 경험은, 예상외로 정말 좋았다. 프랑스의 특징이라면 소도시에 가더라도 미술관이 굉장히 알차고 괜찮다는 점인 것 같다. 특히 여기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졌는데, 암전인 상태에서 사방이 거울로 된 공간에 쌀알 같이 작은 조명을 활용하여 마치 우주에 떠있는 것처럼 만들어주는 설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추후에 한국에도 들어온 것 같았다. 찍은 사진을 친구들에게 보여주니 자신들도 가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황금도시에도 노을이 마치 이불처럼 하늘을 뒤덮고 우리는 허기를 달래고자 아까 한국인에게 추천받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다. 유럽이든, 한국이든 어디서든 널린 것이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라 우리는 큰 기대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는 유럽에서 인생 맛집을 찾아버렸다. 피자와 파스타 모두 놀라운 맛이었고 분위기도 좋았다. 가격마저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허겁지겁 피자와 파스타를 해치워 버렸다.

 

유럽 여행은 무조건 야경, 야경, 야경이다. 수백 년 전 지어졌을 혹은 수백 년 전의 스타일을 흠모하여 지어진, 화려하고 때로는 위압적이며 때로는 복잡한 건축물들의 아우성이 어둠을 배경으로 한 채 조명에 반사되어 우리의 정신을 홀려버린다.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적 아름다움에 우리는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었고, 감탄은 이내 연거푸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것으로 이어졌다.

 

광장과 주변 건물을 비치는 화려한 조명 속에서 벗어나 당일 치기 여행을 마무리하기 위해 역으로 돌아가는 길은 의외로 쓸쓸했다. 일찍 문을 닫는 프랑스의 상점들은 그 안에서 은은한 빛만을 뿜어낸 채 조용한 골목골목을 비추고 있었다. 어두운 거리 속에서 빛을 내뿜으며 고급 스피커 뱅 앤 울룹슨이 전시되어있던 곳을 지나갔을 때는 마치 그 스피커들이 고대 박물관에 전시된 옛 유물처럼 생소하고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다.

 

낮에는 하늘을 뚫을 기세로 서있던 성당이 밤이 되니 나를 덮칠 것만 같은 무서운 괴물처럼 느껴졌다. 도시는 어두웠고 사람도 많지 않았다. 기차역으로 가까워질수록 마치 이미 기차를 놓쳐버린 사람처럼 왠지 모를 조바심이 찾아들었다.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한 분위기로 다시 스트라스부르로 가는 기차에 올라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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