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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Sep 27. 2021

비현실적인 도시 베네치아

[프랑스 교환학생기] 59. 베네치아


베네치아의 면적은 서울의 2/3 수준에 인구는 27  정도다. 베네치아는 내가 가본 여행지 중에 가장 특이한 형태의 생활양식을 영위하고 있었다. 우선 베네치아는 수상 도시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교통수단이 바포레토라고 하는 수상버스나 수상택시다. 말이 버스이고 택시이지 그냥 배를 타고 다니는 것이. 짧은 거리를 이동할 때도 바다의  내음을 맡으며 이동하려니 여간 새롭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행자로서 잠깐 타려니 재밌었지만 매일 타야 한다면 조금 멀미가   같았다. 수상 버스에서 찍었던 사진을 다시 살펴보니 사진에 찍힌 어린아이의 표정이 좋지가 않다. 아이를 데리고 다니기에도 쉽지는 않을  같다.

 


하지만 도시의 풍경 하나는 일품이다. 바다의 끝을 바라보면 수평선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보인다. 마치 베네치아가 바다를 품고 있는 듯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바라보는 베네치아의 풍경은 언제 봐도 가슴이   같다. 내가 베네치아의 풍광에 감탄하며 무분별하게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는데, 나중에 사진을 다시 확인해 보니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입은  아저씨가 베네치아의 햇살만큼이나 환하게 웃고 있었다.


 

베네치아는 그중 부라노 섬과 무라노 섬이 관광지로 유명하다. 그래서 관광객들 대부분이 배를 타고  섬으로 구경을 떠난다. 우선 부라노 섬은 아이유의 뮤직비디오 촬영장으로 한국에 유명해졌는데,  내부의 건물들이 모두 원색의 페인트로 칠해져 알록달록한 외관을 자랑한다. 실제로 가보니 건물들이 제각기 다른 색을 뽐내는 색동저고리처럼 줄지어 늘어서 있다.  전체가 세트장이라고 해도 믿을  같았다. 한켠에서는 어부로 보이는  선원이 배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끌어올린다. 동화책에서나 보던  같은 세일러 복장을 하고 알록달록한 건물을 뒷배경으로 열심히 일하는  이탈리아 청년.  광경을 보고 있자니 여러 생각과 감정이 몽글몽글 솟아오른다. 다만 관광객들이 빨래를 널어놓은   앞마당까지 들락거리니 거주민들이 많이 피곤할  같다는 생각은 든다.


한편 무라노 섬은 유리 공예로 유명한 곳이다. 유리 공방이나 제품을 파는 가게들이 많이 보였고, 곁눈질로 이들의 유리 제작 실력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베네치아를 구경할  있는 시간이 많지는 않아 가게 안을 들어가 보진 않고 무라노 섬의 길거리만 빠르게 구경했다.


여유가 있다면 맛집도 가보고, 문화 공간도 가보면서 천천히 베네치아를 즐긴다면 훨씬  감동적인 경험을 많이   있을  같았다. 다만  가지 정도 복병이 있을  같다. 우선 첫째는 날씨. 수상도시인지라 날씨에   영향을 받는 듯했다. 지금 글을 쓰는  시점에서 뉴스를 보니 이탈리아 이상 기후로 베네치아가 모두 물에 잠겼다고 한다. 둘째는 너무 관광화된 곳을 가지 않는 것이다. 워낙 작은 섬인데 수많은 관광객들이 오가다 보니 굉장히 상업화된 섬이기도 하다. 실제로 중세 유럽 복장을 하고 광장에 서있는 사람들을 잘못 사진 찍었다가 봉변을 당할 수도 있다. 모두 유료이다. 나도 무심코 거리에 카메라를 들이댔다가 가슴 풍만한 마담이 내게 역정을 내서 깜짝 놀랐다.(이건 다른 도시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그런데 베네치아가 유독  엄격했던 기분)

 


베네치아의 물살을 따라 베네치아 곳곳을 관광시켜주는 곤돌라를 탈까도 했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 포기했다. 금전적 여유가 있다면 타는 것도 좋을  같다. 우리는 베네치아에서 별다른 식사도 하지 않고 떠났다. 아쉽기도 했고,  정도면 적당한  같은 기분도 들었다. 여행이 일주일에 다다르니 몸이 피로하다. 돌아가는 열차 또한 야간열차였다. 애증의 야간열차. 나는 이번엔 뮌헨에서 한번 갈아타는 여정이었는데, 뮌헨이 이탈리아어로 Monaco라고 적혀있어서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자칫하면 프랑스 남부까지 가는 건가 싶어 마음이 조급했는데, 물어보니 뮌헨 맞단다. 역시나 이번 열차 또한 밀라노에서 로마  때와 같이 매우 후진 기차였다.


 

그런데 이번엔 만원 기차가 아니었다. 열차 칸에 나와 일본 할머니뿐이었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눠보니 할머니께선   동안 혼자 기차여행을 하신다고. 영어를  하시진 못해서 일본어와 섞어서 말씀을 하신 터라 겨우 대화를 이어나갔다. 유럽 전역을 유레일패스로 여행하시는데, 야간열차도 타시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력 관리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같다. 이십 대인 나도 낑낑대는데.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할머니께선 오사카 은행원이셨다고 한다. 서울에도 와보셨다고. 할머니에게선 몸에서 우러나온 꼼꼼함이 느껴졌다. 검표 등의 이유로 승무원이 칸에 왔다 갔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문에 있는 커튼을 빈틈없이 끝까지 꼼꼼하게 치셨다. 이 할머니, 은행원이 천직이셨을 것 같다.

 


이렇게 할머니의 일본 이야기를 듣고, 내 이야기도 해드리고, 두 명뿐인지라 나름 다리를 뉘어서 야간열차를 탈 수 있어서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 할머니께 메일 주소를 받아왔던 것 같은데 지금은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넉살이 좋았다면 이런 사소한 인연도 보다 긴 끈으로 이어갈 수 있었을까.

 


잠깐 갈아타기 위해 내린 뮌헨은 정말 독일스러웠다. 유럽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나라마다 달라서 지겹지 않고 매번 재미있다. 뮌헨역은 정말 깔끔하고, 주변에 높은 건물도 많았다. 뮌헨을 비롯해서 언젠가 다시 제대로 독일 여행을 하고 싶다.

 


스트라스부르도 나름 집이라고, 스트라스부르역에 도착하니 안정제를 먹은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번 이탈리아 여행도 내가 누군지 더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배운 것도 많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예쁜 것도 많이 보았다. 스트라스부르가 그리웠던 걸 보면 여행이 있어서 일상이 소중해지고, 일상이 있어 여행이 의미 있는 듯하다. 노란 조명의 내 방도 오늘만큼은 포근하고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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