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교환학생기] 58. 피렌체2
오늘의 일정은 두오모부터 시작한다. 두오모 성당은 피렌체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로 피렌체 대성당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정식 명칭은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이라고 한다.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돔으로 유명하며, 실외는 하얀색으로 윤곽선을 두른 초록색과 분홍색의 대리석 판으로 마감되어 있는데 이 외관이 여타 성당과 달라 관광객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두오모 성당을 찾은 이들은 각자 자기의 방식으로 두오모를 즐기고 있었다. 수학여행을 온 듯한 유치원생들은 스케치북을 펴놓고 제 손보다 훨씬 큰 색연필을 꼭 쥐고 야무지게 무언가를 그리고 있다. 십 대로 보이는 학생들은 두오모 성당이 제 집 안마당 인양 배를 깔고 엎드려 무언가에 몰두 중이다.
낭만적인 두오모 성당의 분위기와 달리 첨탑을 올라가는 과정은 험난했다. 우선 들어가는 줄부터 두 시간이나 서있어야 했다. 그리고 폐쇄공포증이 있는 나에겐 종탑 등반의 힘듦보다, 좁은 곳을 올라가야 하는 것이 더 고역이었다. 중간중간 심장이 조여오며 가슴이 답답해졌기 때문이다. 앞으로 마음대로 나아갈 수없고 그렇다고 일방통행이기에 온 길로는 다시 내려갈 수 없는 상황이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래도 그 정도가 심하지 않기에 공포를 저 밑에 눌러두고 열심히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갔다.
노력 끝에 맛보는 성취는 달콤하다. 주황빛의 지붕들이 맞이해 주는 뷰가 말을 잃을 정도로 아름답다. 도시 구석구석으로 나있는 골목길들은 마치 도시의 모세혈관인 마냥 부지런히 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저 멀리 펼쳐진 산의 능선 또한 한 폭의 그림처럼 피렌체의 건물들과 어우러져 있다.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구경하였고, 피렌체의 하늘과 하나가 된 것만 같은 충만함을 느꼈다.
점심시간이 되어 우리는 식사로 네모 반듯한 모양의 피자를 먹었다. 가게가 잘 정돈되어 있지도 않고, 원색의 투박한 인테리어에, 의자와 테이블도 형편없는 패스트푸드점 느낌의 피자 가게였는데, 피자의 메뉴도 다양하고 맛도 훌륭하다. 이탈리아는 정말 좋아하지 않기가 힘든 곳이다.
피렌체의 아르노 강은 유유히 흐른다. 비록 황토색의 강물일지라도 피렌체를 비옥하게 해주는 젖줄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강 위를 지나가는 베키오 다리는 미술품상과 보석상들로 채워져 있다. 이전에는 푸줏간과 가죽세공업자들이 주로 있었는데 피렌체 공화국 통치자가 악취가 심하다고 하여 이들을 내쫓았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퇴각할 때 다른 아르노 강의 다리는 모두 파괴했는데, 베키오 다리만 남겨두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낮의 아르노 강보다 밤의 아르노 강이 더 마음에 든다. 강물에 비치는 노란 조명과 은은하게 보이는 다리의 형체가 내가 사는 갈리아를 연상시켜서 그런 걸까.
사실 우리는 이날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가죽 제품이 유명하기에 가죽 시장에 가서 지갑을 사고, 산 조반니 세례당에서 유명한 금으로 된 문을 보았다. 우리는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민박집으로 돌아가 숙면을 취하기로 했다. 그런데 숙소에 돌아오니 물기를 말리기 위해 방 한가운데에 널어두고 온 속옷이 나를 맞이한다. 아뿔싸 민박집 사장님이 방 청소하는데 다 봤겠구나. 이래서 속옷은 항상 제대로 된 것을 입고 다녀야 한다.
드디어 이탈리아 여행 마지막 여행지인 베네치아로 향한다. 두 시간만 달리면 베네치아에 도착한다. 이탈리아 기차인 이탈로도 꽤나 괜찮은 기차 같다. 깔끔하고 쾌적하다. 베네치아에 도착한 순간, 이곳이 현실인지 영화 속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역에서 내리자마자 물 위에 반사된 조명이 아른거리고, 그 위로 배들이 마구 지나다닌다. 바다의 짠내도 비공을 치고 들어온다. 베니스의 상인 같이 과거를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에 등장인물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든다. 중세시대 상업 부흥기에 떨어진 현대인 콘셉트? 한편으론 베니스 영화제가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 작은 수상도시에 화려한 전 세계의 스타들이 모여든다. 고급차, 고급 호텔이 북적이고 도시가 들썩인다. 베네치아에 별장이 있는 조지 클루니, 워런 버핏과 같은 유명인사들이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돌아다니는데 우연히 젤라또 집에서 마주치는 상상도 해본다. 짧은 순간 동안 많은 것들이 머릿속에서 팡팡 폭죽처럼 터지는 도시 베네치아.
우리는 마찬가지로 한인민박에 묵기로 했는데 시설이 꽤 고급인 민박이다. 내부는 투숙 중인 한국인들로 북적거렸다. 마치 살롱처럼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하거나 술을 마시는데 서로 대화는 절대 나누지 않는다. 한국인들 특징이다. 나와 친구는 이탈리아 슈퍼에서 산 1유로짜리 팩 유로를 마셔보는데 더럽게 맛이 없다. 그 와중에 피렌체 민박집 사장님과 단톡방을 파게 됐는데 현실 말투와 달리 카톡 말투가 완전 딴판이다. 넘치는 물결 기호 때문에 올라온 취기가 다 깨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동안 쌓인 여독과 알코올 기운 때문에 우리는 쓰러지듯이 숙면에 빠진다. 내일이 기대될 틈도 없이 내일이 찾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