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숭고함을 가지고 있다
으리으리할 것이라고 기대한 건 아니지만, 엄지네 포장마차는 유명세에 비해 소담했다. 식욕을 돋워 줄 것 같진 않은 형광등 조명 아래, 음식이 채워진 테이블은 두 세 테이블뿐이었다. 월요일이고, 비가 오던 날이었다. 직원들은 가만히 서서 딴짓을 하다가 손님들이 부르면 재빠르게 주문을 받았다. 우리의 위는 한정되어있기에 메뉴 선정은 신중했다. 우리는 꼬막비빔밥과 참이슬 한 병을 시켰다. 소주를 썩 좋아하진 않지만, 오늘은 맥주로 배를 채우고 싶지 않았다.
널찍한 접시에 짜지도 슴슴하지도 않은 적당한 정도의 양념에 버무려진 꼬막과 고추 그리고 밥이 널찍한 접시에 그득그득 채워졌다. 평소엔 한입에 많은 양을 욱여넣지 않는데, 풍족하게 펼쳐진 꼬막들을 보자니 내 입도 한 가득 채우고 싶어 졌다. 꼬막만 계속 먹기 심심하다면, 방게로 만든 달짝지근한 밑반찬을 곁들여준다. 맛있는 음식과 술. 아- 행복하다.
공간에 비해 채워지지 않은 사람 덕에 다른 테이블의 말소리가 유난히 귀에 잘 들어온다. 영어로 대화하는 소리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계속 신경이 쓰인다. 적극적인 성격의 내 친구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달큼하게 오른 술기운에 합석을 제안해버린다. 언제 봐도 정말 대단한 친구다. 우리는 그렇게 외국인 두 명과 합석한 덕에 육회와 오징어회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속초에서 유독 외국인을 많이 목격했다. 국내 여럿 해안 도시를 다녀봤지만, 제주나 부산을 제외하곤 속초가 제일 많은 것 같았다. 외국인 친구들에게 물었더니, 자긴 잘 모르겠다며, 한국은 다 아름다우니까,라고 답한다. 본인들은 설악산을 오르기 위해 강원을 찾았다고 한다. 우린 사계절과 산에 참 둔감하지만, 이방인의 시선으로 볼 때서야 그 가치를 되새김질해본다.
외국인 친구 중 한 명은 속초에서 본 해녀에 관해 말했다. 자기도 다이빙을 해봤지만, 연세 지긋한 할머니들이 물속에서 그렇게 날아다니시는 것이 놀랍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다음날 해가 뜨고 영금정을 찾아갔다. 역시나 비가 와서 온통 시야가 뿌얬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을 하는 해녀 세 분이 보였다. 영금정에서 물질하는 해녀를 담은 바다 풍경을 몇십 분이고 바라보았다. 어느 하나 같은 모양이 없는 바위에 반복적으로 부서지는 파도의 끝 자락이 나를 놔주질 않는다.
삶이라는 것에서 살아남기 위해 능력을 발휘하는 인간의 모습은 경이롭다. 외국인 친구의 마음을 사로잡았듯, 그 모습은 우리를 매료한다. 나는 왠지 모를 숭고함마저 느낀다. 속초중앙시장에서 이른 아침 장사 준비를 위해 길바닥에서 수십 개의 무를 손질하는 어머니들의 손길에서도 숭고함을 느낀다. 바다가 잔잔하든, 거칠든 바다를 지키는 해경에게서도 숭고함을 느낀다. 영금정 앞바다 바위에 갈매기 떼가 모두 한 곳을 바라본 채 서있다. 우리도 어쩌면 복잡한 이유 없이 한 곳을 바라보며 사는 게 아닐까. 삶이라는 것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모두 하나의 숭고함 쯤은 지니며 사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