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얻은 물집들
I have a lot of blisters!
아. '물집'을 영어로 블리스터라고 하는구나...
만나는 사람마다 서로 발의 안부를 물었다. 그러다 내 생전 들어본 적도 없었던 영어단어 'blister(물집)'도 새로 배우게 되었다. 한 달여를 계획하고 나선 산티아고 순례길 여정 이틀 만에 새끼발톱이 쿡쿡 쑤시더니 거의 빠지기 일보직전이 되었다. 나의 삶을 돌아보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여 다시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발만 생각하며 지내는 나날들이었다. 발바닥, 발가락, 발톱, 발목, 물집 등과 관련된 약품 이름을 영어와 스페인어로 검색하며 온통 발 생각으로 뇌세포를 낭비했다. 즐거운 여행이 되고 있는지 궁금해하는 한국 친구들에게는, 현재 내 발톱의 색깔이 어떠하며, 물집의 개수가 몇 개인지, 발목에서 어떤 소리가 나는지 등의 내용으로 카톡 창을 가득 채워 보냈다. 낄낄거리는 답장을 자주 받았다.
걸음마를 시작한 이래, 걷는 것을 의식하며 살아본 적이 없다. 왼발을 떼는 동안 오른발이 자동으로 움직여 나갈 뿐, 수많은 뼈마디와 근육이 조화를 이루고 협업 중이라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이다. 작정하고 걷는 일을 하다 보니, 발에서 시작된 걸음이 내 온몸에 영향을 주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뽑혀나갈 위험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새끼발톱이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 엄지발가락 부근부터 왕 물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발톱의 문제로 나도 모르게 몸의 무게중심이 한쪽으로 쏠렸던 것이다. 무릎이 덩달아 아파지고, 기우뚱 대는 걸음은 곧 허리에 충격을 전달했다. 기울어진 어깨는 목과 팔을 괴롭혔다. 쑤시는 온몸으로 인해 마음도 함께 복잡하고 산란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겠다고 다짐한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고민하고 준비하는 것이 신발이다. 이전에 다녀온 순례자 선배(!)들 사이에서도 어떤 신발을 신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현장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면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발목까지 올라오는 고급 등산화를 챙겨 신고도 물집으로 고생하고 무릎보호대를 착용한 채 꾸역꾸역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단출한 단화 한 켤레로 해맑게 웃으며 걷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발이 이끄는 것에 맡기지 않고 '목표'라든지, '다짐'과 같은 이름으로 포장된 내 욕심만을 가지고 달려 나갈 때, 힘겨운 하루에 지친 눈빛과 깊은 근심을 얻게 된다.
결국, 몸이 먼저 달려 나가고 발은 그저 따라오라는 식의 걸음을 멈추었다. 발이 내 걸음을 인도하게끔 하자 계획했던 것보다 느려졌다. 며칠 만에 어느 도시에 당도하겠다거나 어느 날 무엇을 하겠다던 나의 목표를 내려놓기로 했다. 하지만 걸음 하나하나를 천천히 눌러가며 딛다 보니 잔뜩 성이 나 있던 발이 어느샌가 온유해졌다. 애초에 나의 계획은 내 발걸음을 무시하는 계획이었던 것이다. 저녁마다 왕만 한 물집을 바늘로 터뜨리고 경건한 마음으로 소독을 하던 것도 걸음을 마음에 담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서서히 줄어들었다. 수두룩 있던 물집 개수만큼 마음이 바쁘고 원하는 게 많았던 나는, 물집 하나에 나의 조급함, 물집 하나에 나의 욕심, 물집 하나에 나의 어리석음, 어리석음, 어리석음.... 을 터뜨려가며 조금씩 내 발걸음을 알아가게 되었다.
느릿느릿 걸음을 떼자 드디어 풍경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잠시 길가에 앉은 사람과 나눈 이야기 속에서 삶의 기쁨과 슬픔을 발견하기도 했다. 누군가가 나무에 매달아 놓은 가족사진 앞에서는 조용히 나만의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햇살이 따사롭고 바람이 맑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뇌세포가 발 말고 다른 것을 위해 가동을 시작한 것이다. 다들 그렇게 되고 난 뒤에는 신발의 종류도, 일정의 합리성도 딱히 중요하지 않게 된다.
발이 있는 곳이 내가 있는 곳. 사는 일이란, 발이 데려다 놓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무엇이었다. 그것을 모르고 무작정 발을 끌고 달려 나갈 때 그 엇박자는 일상을 무너뜨린다. 오로지 두 발로 뚜벅뚜벅 걸으며 이동한 한 달 남짓의 기간을 통해 내가 어떻게 일상을 꾸려가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사는 나는, 그곳에서도 열심히 정해진 시간 안에 도착하려고, 계획했던 무언가를 하려고 발을 끌고 바쁘게 걸었다. 발에는 선명하게 그것이 드러났다. 평소에는 안중에도 없던 발이건만, 발에서 시작된 신호를 온몸으로 받아들여 그 결과를 인정해야 했다.
다시 도시에서의 하루. 급하게 차를 타고 이동해, 순식간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는 일상을 또 반복 중이다. 양쪽 발에 물집을 달고 느릿느릿 걷던 한 달을 추억하며, 온전한 내 하루의 속도를 잊고 있지 않은지 잠시 발을 내려다본다. 뒤늦게 발이 따라오는 삶이 아니라, 자연스레 발이 이끄는 것을 따르며 하나씩 음미하는 삶을 살아보자고 다시 마음을 추슬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