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그것은 정상을 향하는 길
큰일이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암벽 위로 나 있는 쇠기둥 손잡이를 잡으며 아찔한 기분이 들었다. 길을 잘못 든 것이다!!
저만치 가고 있는 아이들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 하...
아이들과 북한산 둘레길 완주를 목표로, 작년에 이어 올해도 가을학기 걷기 여행을 출발하고 3일째였다. 우리가 걸을 코스는 난이도 ‘상’이라고 표시된 ‘산너미길’이었다. 길을 나서는 마음에 걱정도 있었지만, 사실 산기슭을 걷는 둘레길 코스에서 난이도 ‘상’이 뭐 얼마나 대단할까 싶은 마음도 있었다. 어린이와 노인도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둘레길을 그간 걸어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둘레길 표지판을 따라 제대로 갈 때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점차 경사가 심해지고 왠지 둘레길 표지판이 안보인 지가 꽤 되면서부터 조금씩 의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지도 앱을 켰을 때 현재 위치가 둘레길 코스에서 한참이나 벗어나 있긴 했다. 하지만, 길에서 만난 흰 머리의 아저씨께 여쭤보았을 때 ‘응응.. 그럼, 둘레길이지’ 하시는 인자한 대답을 들었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은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심지어 그분이 ‘조금 더 가면 아주 넓은 바위가 나타나는데, 거기서 밥 먹으면 좋지. 여기서 금세 가’ 하시는 바람에 아이들도 ‘금세’ 경치 좋은 곳에 가서 편하게 밥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눈앞에 커다란 암벽들이 드러날 무렵 결국 아이들에게 고백을 했다.
“미안... 길을 잘못 들었어요...”
나는 사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고민을 했다. 아이들한테 말해야 하나. 말하지 말고 이대로 끝까지 갈까.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 쌤! 그럼 우리 어떻게 해요!’, ‘힘들어요.. 돌아가요..’, ‘쌤 때문에 이 고생이야’ 등등 온갖 원망, 야유 혹은 놀림, 아니면 징징거리며 우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은 아닐까 잠시 여러 상상을 했다. 하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의외였다.
“진짜요?! 그럼 이왕 온 김에 정상 찍고 가요!”
아마도 어딘가에서 표지판 하나를 나도 모르게 지나쳤을 것이다. 그 순간을 고난의 시작으로 볼지, 정상을 향하는 새로운 목표 설정의 지점으로 볼지는 결국 우리의 마음과 태도에 달려 있었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어른스러웠던 아이들은 새롭게 들어선 길에서 다시금 목표를 수정하며 기대에 들떴다. 오히려 더 높은 곳으로 가겠다며 천근만근 발을 떼면서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실수를 고백하기 전의 내 걱정들은 아이들의 들뜬 표정으로 스윽 녹아버렸다. 탓하고 원망할 수 있었겠지만 그것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마음이 모두에게 위안을 주고 힘을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길에서 만난 아저씨는 아마도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아이구, 잘못 오셨네. 쯧쯧’ 하실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너희는 지금 맞게 가고 있다고, 조금 더 가면 훨씬 좋은 곳이 있다고만 말해주었다. 잘못 든 길에서 지혜로운 사람을 만나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의구심을 갖지 않았다.
우리는 결국, 산의 둘레를 걸은 것이 아니라, 산의 ‘정상’에 오르게 되었다. 금세 도착할 거라던 흰머리 아저씨 말과는 다르게 한 시간 반을 헉헉대며 올랐고, 막판에는 벼랑에 걸쳐진 줄을 타며 계획에도 없던 암벽등반을 하는 기염을 토했다. ‘산너미길’을 벗어나 걸었는데, 오히려 산을 하나 넘은 셈이었다. 하지만 푸른 가을 하늘에 속이 뻥 뚫리는 광경을 맞이하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바람에 옷깃을 펄럭이며 여기 오길 참 잘했다고 서로에게 말할 때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하산 길에는 동네 산책에나 어울리는 우리의 옷차림과 신발에 놀라며 등산객들이 한 두 마디씩 건넸다. ‘길을 잘못 들어서 정상 찍고 왔어요!’ 하는 아이들의 당당한 목소리에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보여주었다.
이번 가을학기 걷기 여행에서도 그렇게 무용담처럼 이야기될 추억 하나를 만들어왔다.
다음번에는 또 어떤 길을 헤매게 될까. 아주 기대된다.
덧) 헤매더라도 평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