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가을 운동회의 마지막 순서. 이어달리기가 시작되었다. 우리 학년의 대표였는지 반 대표였는지 가물가물한데, 대표로 나선 친구가 축구부 부원이었고 막 사춘기가 시작된 여자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아주 많은 학생이었다는 것은 확실이 기억이 난다. 가무잡잡한 피부에 날쌘 몸을 가진 그 친구는 축구든 뭐든 운동과 관련된 것이라면 늘 이목을 끌었다. 이어달리기의 순위가 결정 나는 중요한 마지막 순서에 당연히 그 친구가 배정되었다. 이전 주자들이 한창 달리고 있는 와중 하얀 가루로 그어놓은 선 위에 드디어 마지막 주자가 등장했다. 구경하던 아이들과 부모님들, 선생님들 모두 격하게 함성을 질렀다. 바야흐로 운동회의 절정이었다.
주자들이 배턴을 주고받으며 얽히고설키는 잠시의 혼란이 지나고 우리의 마지막 인기 짱 선수가 총알처럼 냅다 튀어나갔다. 그때, 잊지 못할 장면이 펼쳐졌다. 구경꾼들의 함성이 탄식으로 바뀌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출발선에 선 그 친구도 아마 많은 사람들의 시선과 기대가 부담스러웠는지 모르겠다. 안 그런 척하려고 노력했어도, 수많은 인파의 함성에 눈앞이 흐렸을지도 모르겠다.
그 친구가 배턴을 넘겨받자마자, 반대방향으로 내달렸던 것이다. 아주 빠르게. 말릴 새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어? 어?' 몇 번 하는 동안, 순식간에 결승선에 도착해 허리에 걸쳐진 하얀 띠를 주섬주섬 매만지던 그 친구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하하하 웃으며 함성소리를 내기 시작하고 박수 소리가 그러데이션으로 점차 커져 운동장을 가득 채우던 것이 기억난다. 그 친구도 상황을 단번에 알아채기 어려웠을 것이다.
청군, 백군의 점수판이 운동장 한가운데 커다랗게 놓여 있었고, 매 경기 후 점수판의 숫자가 바뀌는 것이 어린 우리들에게는 그렇게 중요할 수가 없었다. 공 굴리기 후에 기뻐했다가, 박터뜨리기 후에 분노했다가, 2인 3각 달리기 후에는 흥에 겨웠다가, 줄다리기 후에는 반대팀 아이들 몇 명과 싸우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우리 팀 인기 최고 이어달리기 선수가 결승선에 제일 먼저 도착했건만, 반대방향으로 달린 결과였던 것이다.
반대방향의 질주는 그야말로 운동회의 의미를 바꿔놓았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분명히 그랬다. 놀라움과 황당함이 함께 몰려오는 그 시간, '경쟁'이나 '점수' 따위와 다르게 느껴지는, 수준 높은 무언가가 갑자기 마음속으로 확 들이박힌 것이었다. 어리바리 상황을 파악 중인 그 친구의 등을 토닥여주더니 손을 잡아 번쩍 들어 올려주는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운동장 한가득 모인 사람들의 함박웃음과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로 괜히 나도 벅차올라 손바닥이 달아오르게 손뼉을 쳤다. 손뼉 치며 웃는 내가 이전과는 다르게 좀 더 자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반대방향으로 달린 그 친구는 순위 인정을 받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점수판의 숫자가 무색하게 그 운동회의 중심 화제는 단연 이어달리기였다. 그 후에도 한동안 친구들과 함께, 이기고 지는 것은 하등 중요하지 않으며, 그 친구가 앞만 보고 달려 나가는 모습이 우리에게 큰 감화를 주었음을 열심히 이야기했다. 크게 격려하던 사람들과 같은 마음으로 그 순간을 경험했다고, 당시 어린이의 언어로 열심히 말했던 것 같다.
숨도 안 쉬고 달렸는데 방향이 틀려 예상치 못한 곳에 도착하는 일이 부지기수인 일상. 심지어 그어놓은 선도 없고, 출발신호도, 결승선의 하얀 띠도 없는 삶을 생각해보면, 여러 번의 방향전환을 하는 동안 때로는 결승점에 도착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가끔은 비교도 성과도 내려놓고 다른 방향으로 꺾는 일을 용기 있게 시도해볼 법도 한 것 같다. 자책하고 후회하며 본래의 의미를 놓치기보다는, 이리저리 두리번 거리는 일이 참 많은 나의 일상에서 새롭게 맞이한 것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 손뼉 치며 스스로 격려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덧) 그 친구는 그때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문득 궁금.
* 사진출처: 국가기록원(http://theme.archives.go.kr/next/pages/new_newsletter/2017/html/vol_80/sub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