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면 편하다. 원대한 목적을 내려놓자
오현이는 ‘pilgrim(필그림, 순례자)’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몰랐다.
일행들이 스페인어로 ‘peregrino(뻬레그리노, 순례자)’라고 한다고 알려주자, 출발한 지 며칠이나 지난 이제야 감탄사를 내뱉으며, 그동안 뻬레그리노 뻬레그리노 하는 게 왠지 기분 나빴다며, 욕 하는 줄 알았다는 말을 해서 사람들을 웃겼다.
오현이는 동갑내기 친척이 순례길을 가겠다고 하길래 ‘그냥 왠지 괜찮을 것 같아서’ 함께 왔다고 했다. 말처럼 무척 해맑았다. 다른 순례자들이 발목까지 올라오는 튼튼한 등산화로 무장하고 있을 때, 오현이는 운동장에서 피구하는 중학생이 신을 것 같은 단화를 신고 산보하듯 걷고 있었다. 말이 되지 않아도 손짓 발짓 섞어가며 아무 하고나 넉살 좋게 이야기했고, 이런저런 농담을 잘하는 오현이는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가리지 않고 친해졌다. 일본 여자인 카나와 친하게 지내더니 같이 걷는 날이 많았다. 오현이 주변은 늘 웃음이 가득했다.
킬킬거리며 별생각 없이 걷고 있는 것 같았던 오현이는 한국으로 돌아와 일본어를 열심히 공부하더니 워킹홀리데이에 도전해 혈혈단신 일본으로 떠났다.
순례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 중엔 생각보다 종교와 관련 없는 사람이 많다. 그런가 보다 하고 걷다 보면 또 생각보다 종교적인 목적으로 걷는 사람도 많이 만나게 된다. 직장을 그만두고, 군대를 제대하고, 아내를 잃고, 큰 병을 얻고 등등 삶의 큰 전환점을 겪은 이들이 나 자신을 찾겠다며 마음을 다지고 고행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도전, 성취’의 계기로 생각하며 극기훈련을 하듯 걷는 사람도 많다. 또 한편으로는 그냥 여행 삼아 온 사람도 무척 많다.
이처럼 이 길을 걷고 있는 이유는 다종 다양하다. 그런데 이 길이 종교적으로 순례의 의미를 담고 있는 데다가 꽤 길고 힘들다 보니, 늘 '이 길을 왜 걷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 특히나 가톨릭 국가도 아닌 한국에서 왜 이렇게 많이 오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도 몹시 궁금하다. 그럴 때마다, 한국에서 ‘파울로 코엘료’ 책이 인기가 많다는 암기한 답변을 반복하긴 했다(그러다 보면, 작가의 다른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게 될 수도 있다). 최근에는 예능 방송에서도 자주 소개되었으니, 삶의 어느 한 지점에서 생각의 환기를 위한 곳으로, 혹은 힐링의 장소로 인기가 있다는 답변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튼 다른 여행지에서는 받지 않는 질문들을 받는다. 나는 종교적인 목적도 아니었고, 운이 좋게 얻은 휴가로 간 것이었기 때문에, 뭔가 엄청나게 힘든 일에 도전해보겠다는 생각으로 간 것도 아니었다(난 이미 힘들게 살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이게 휴식형 여행도 아니다 보니 ‘쉬러 왔다’, ‘힐링을 목적으로 왔다’라는 말도 안 맞는 것 같다. ‘이 길을 왜 걷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마치 ‘왜 사는가’라는 질문처럼 듣는 사람을 순간 황망하게 만들곤 했다. ‘나 자신을 발견하려고 걷는다’는 멋진 답변들을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굳이 왜 이 길을 선택했느냐는 질문에는 또 말문이 막힌다.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너무나 쉽고, 다른 이의 걸음에 ‘진정성이’ 있느냐 아니냐의 딱지를 붙이는 것도 말만큼이나 쉽다. 중요한 것은, 이 길 위에 있는 사람들은 이유가 무엇이든, 혹은 이유가 없든,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종일 걷고, 그날 입은 옷을 빨아 널고, 자신이 먹은 음식이 무엇인지를 따져 어떤 날은 채소와 과일을 챙겨 먹고, 물집 생긴 발을 반창고로 도배를 해가며 어찌 되었든 걷고 있다는 것이다.
목적이나 이유가 있었어도 걷다 보니 그 목적이 아무 의미 없어지기도 하고, 아무 이유 없이 출발한 사람들에게 뜬금없는 새로운 목표가 생기기도 한다. 왜냐하면, 매일 무언가를 실행하고 겪으며, 세계 각국에서 온 다양한 누군가를 끊임없이 만나기 때문이다. 반복적인 일상 안에서 즐거울 때가 있기도 하고, 몸이 아플 때도 있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도 하고, 누군가를 지극정성으로 걱정하며 보살피기도 한다. 사람에 치여 힘들던 사람이 사람들에게서 치유되고, 늘 바쁘게 정신없이 살던 사람이 천천히 걷는 여유를 배우기도 하고, 나이 탓을 하던 사람이 82세 노인을 보며 생각을 고쳐먹기도 한다.
아무튼 출발점에 서서 아무리 원대한 목표와 이유를 생각하고 따진 들, 직접 걸어내지 않으면 겪을 수 없는 것들이 길 위에 엄청나게 많이 펼쳐져 있다. 걸어서 가든, 자전거를 타고 가든, 당나귀 등에 짐을 싣고 가든, 휠체어를 타고 가든, 전체를 다 걷든, 부분을 걷든, 이 길에서 겪는 일들이 다른 여행지와 다른 점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pilgrim’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왔던 오현이가 워킹홀리데이니 영어공부니 하며 새로운 계획을 세우기도 하는 그런 시간을 겪게 되는 것이다.
무언가 해나가기 위해 목적과 의도가 중요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그래서 나에게 혹은 상대방에게 자주 묻곤 한다. ‘목적’이 뭐냐고, ‘왜’ 하려고 하냐고. 하지만, 우리는 가끔 그 목적과 의도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며 시간을 끌고 발걸음을 쉽게 떼지 못하곤 한다. 혹은 그런 마음이 외부로 향하게 되어서 다른 이의 목적이 가진 진중함과 진정성을 쉽게 재려 든다. 목적이 없으면 어떠한가. 순례길을 가장 행복하게 걷는 사람은, 순례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유럽 여행을 왔다가 여행자들 사이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무작정 운동화 하나 사 신고 순례길을 걷게 된 사람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의 삶은 늘 미완성이고, 끊임없이 수정하고 보완하며 채워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하나의 지점에 800km를 채워 넣고 조금 더 나아가는 것이다. 그 길 위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갈지는 사람마다 다르고, 그것은 누구에게 물어서 얻을 수 있는 답도 아니다.
게다가, 우리는 가끔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닌 목적을 갖고 있기도 한다. ‘나 자신을 이겨내려고’라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왜 자신을 이겨내야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자신에게 다시 물어야 할 때도 있다. 어릴 적부터 학교 선생님이 늘 하던 말, 자기 계발서 안의 성공했다는 인물들이 해왔던 말들을 내가 그냥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늘 자기 자신을 채근하며 이겨내라 이겨내라 하며 견뎠던 시간들을 나는 진정 행복하게 지냈던 걸까. 나에게 중요한 것이라 생각되는 그 무엇이 ‘왜 중요한가’를 묻는 것은 다른 문제가 된다.
멋들어진 문장으로 이루어진 원대한 목적과 기대를 내려놓고, 그냥 발걸음 가볍게 걸어보자.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가벼운 이야기부터 나눠보자.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내 삶을 더 나아지게끔 이끌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어느 마을에선가 알베르게의 주인아주머니가 뻬레그리노들을 위해 저녁을 한상 가득 차려주고는 말씀하셨다.
아마도 책을 보고 온 사람, 영화 보고 온 사람, 먼저 왔었던 친구 이야기 듣고 온 사람 등등 다 다른 이유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여기서 다들 똑같이 살고 있죠? 그냥 걷고, 매일 빨래하고, 먹고, 자고, 먹고, 자고. 생각을 많이 할 줄 알았는데, 생각 없이 매일 스틱 잡고 헥헥거리고...
하지만.
이 길을 걷고 나면, 다들 인생은 바뀌어 있을 겁니다.
미리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