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일하고 있어요.
치킨도착
잠시 잊고 있던 나를 알람 소리가 일깨워주었다. 알 수 없는 누군가의 번호로 온 문자. "치킨도착". 약 사십여분 전에 몇 번의 손동작으로 주문한 치킨이 문 앞에 당도한 것이다. 일방적인 통보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꽤 친절한 소식통 같기도 한, 이 단호한 문자에 정신 차리고 현관문을 열어보면 비닐봉지에 싸인 치킨 상자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예전 같으면 잠옷 차림을 깨닫고 헐레벌떡 겉옷이라도 챙겨 입었을 것이다. 어느 날은 학교를 그만둔 것 같은 노랑머리의 어린 학생이 나타나 의아하게 맞이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비를 철철 맞은 아저씨가 더운 김을 뿜으며 들어서기도 해서 조금 미안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돈을 내밀고 거스름돈을 헤아리는 그 짧은 시간은, 왠지 모를 어색함을 견디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빼꼼히 열린 문으로 손만 내밀어 후다닥 봉지를 낚아채 들여온다.
치킨도착. 이 짧고 굵은 말을 괜히 오래 들여다보았다. 치킨이 배달되었다던가, 치킨을 문 앞에 두고 간다던가 그런 말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마치 치킨이 열심히 달려서 결승지점인 우리 집 문 앞에 마침내 도달한 것만 같다. 문자에도 문 앞에도 사람이 없다. 치킨 봉지를 문 앞에 내려놓은 배달노동자는 또 부리나케 다음 목적지로 향해 갔을 것이다. 그는 문장에 자신의 존재를 표시할 시간이 없었고, 치킨은 주어가 되었다.
대면을 생략하자 처음과 끝 사이에 존재하는 사람들도 같이 사라져 버렸다.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어떤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무언가를 키워내고, 만들어내고, 옮기고 했을 터이다. 하지만 세밀하게 나뉜 일들을 거치며 사람들이 생략되었다. 그야 생산과 유통의 과정에서 얻어진 편리의 대가라지만, 요즘은 그저 사람이 증발되어버린 느낌이 든다. 기계가 놓이면서 사람들이 슬슬 줄더니, 거리두기가 시작된 후로는 사람들이 점차 지워져 갔다.
생판 모르는 사람과 마주 서서 지폐를 주고받는 어색함을 견디지 않아도 되고, 계산기를 두드리는 은행 직원의 질문에 더듬더듬 대답하며 얼굴을 붉히지 않아도 되고, 카운터 직원에게 주문을 느리게 해서 뒷사람의 눈초리를 받지 않아도 된다. 식은땀 나는 이런 순간들을 덜어내 때로는 속이 한결 편하기도 하다. 그런데 그 덜어낸 공간에 새로운 찜찜함이 채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무표정과 냉소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마주 보고 있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오해와 무례함도 너무 쉽게 일어난다. 또 그런 일들을 휴지통에 휙 버리듯 넘겨버리는 일도 참 많은 것 같다. 사람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잊고, 나 역시 마음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 중 한명이라는 것을 가끔은 쉽게 놓친다.
'치킨'이라는 목적어를 내려놓고는 주어인 자신을 잊고 가버린 그분. 이름도 얼굴도 모르고 만날 일도 없는 그 사람이 실제 존재는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어 '고맙습니다' 한 마디 보내본다. 문득 어느 때에 그 배달노동자가 주어가 되어 있다면, 왠지 나에게도 그냥 위안이 될 것만 같다.
*사진출처 : https://www.labor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8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