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공간도 있었다고 할 수 없지.
과학 선생님의 말씀은,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말처럼 이상하게 들렸습니다. 우주의 시작 이전에는 ‘무(無)’ 였다는 말을 듣고, 그럼 빈 공간이었냐고 물었다가 들은 대답은 더 큰 의문을 만들었습니다. 우주가 만들어지기 ‘전’이라는 말도 의미가 없었습니다. 시작과 동시에 ‘시간’이라는 개념이 적용되기 때문이었어요. 아니 뭐 이런 골치 아픈 이야기가.
생각해 보니, 시작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없던 시계가 나타나 톱니바퀴가 돌기 시작하는 것처럼, 시공간에 경계가 생깁니다. 아마도, 우리가 만나 인연을 맺는 순간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지고 그렇게 시계추가 움직이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없었던 것들이 지금은 있는 것이 되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생각해야 하는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발 디딘 이 우주는 갈수록 점점 커져서,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는 중심이 되어 버립니다.
그 전은 무엇이었는지를 묻는 것이 무의미한 것 같아요. 바늘이 돌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의미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축을 돌리며 얻는 것들이 무엇이든, 그것을 0분 0초 이전의 무엇에 빗대어 이야기는 것은 어렵습니다. 골치가 아파져요. 변화무쌍하게 앞으로 가는 시간을 기쁘게 맞이하며.
우리 그저, 지금을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