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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점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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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인 Aug 11. 2021

무거운 시간에 묶여 있을 때


가만히 있으면 나중에 팔과 어깨를 못 쓰게 될 수 있으니 어깨 운동을 자주 하라고 했다. 붕대를 감아 주며 간호사 선생님이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왼쪽 팔 전체에 두툼하게 깁스가 채워졌다.  




아주 오래전, 왼쪽 팔꿈치를 크게 다치고 수술을 한 뒤였다. 수술을 하고 그 바람에 어깨도 같이 멈춰 버렸다. 무거운 깁스로 무게 중심이 왼쪽으로 잔뜩 쏠렸다. 어깨 관절이 굳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매일 어깨를 움직여 주어야 한다며 의사 선생님이 팔을 머리 위로 휙휙 돌려 시범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어찌나 무거운지 어깨를 돌리기는커녕 팔을 움찔 해 보이는 것도 겨우 해낼 수 있었다. 어깨를 다친 게 아닌데 왜 그것도 못 하냐며 엄포를 놓는 의사 선생님에게 야속한 마음의 눈빛을 날려 보내고, 어쨌든 끙끙대며 애쓰는 날이 이어졌다. 왼쪽 팔 하나를 묶어 놓았는데, 일상도 같이 묶였다. 


오랜 날들이 지난 어느 때. 훌훌 붕대가 풀어지고 가느다랗게 야윈 왼팔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웃으며 내 팔꿈치 각도를 아직 기억하고 있는 커다란 깁스를 건네주었고, 건강한 오른손이 그 깁스를 받아 들었다. 순간, 깁스를 받아 든 손이 위로 훅 솟구쳤다. 무게를 가늠하지 못하고 힘을 가득 실어 받아 들었더니 그랬다. 마치 마지막 계단이 있는 줄 알고 발을 헛디딜 때처럼, 깁스를 든 손이 휘청거렸다. 이렇게 가벼운 것이었다니.     


무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니 알겠다. 내가 너무 약했었구나. 가끔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일들이 나에게는 추가 매달린 것처럼 심각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잠시 하얗게 깡말라 있던 왼쪽 팔을 생각해 본다. 그저 남을 탓하고 신세한탄을 하는 동안 나도 모르게 허약하게 말라 움직일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회복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그것은 석고 붕대 안에 고이 묶어두는 일도 아니고, 벗어나려 애쓰며 나를 혹사시키는 것도 아니었다. 


시간을 들여 잠시 멈추고 좀 낫도록 두어야 하는 곳이 어디인가 하고 들여다본다. 그리고 괜히 다른 일상도 같이 망가지지 않게끔 조금씩 다독이며 움직이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래야 약한 시간에 머물지 않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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