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을 바꾸는 일은 쉽지가 않다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의 유일한 차이점은,
일찍 일어나는 사람들이 지나치게 우쭐댄다는 정도입니다.
아침형 인간을 향한 일침을 담은 짤이 한창 돌던 때가 있었다. 그 말에 '대찬성' 표시를 보내며 키득댔다. 책방 자기 계발 코너에는 제목을 이렇게 저렇게 달리하며 아침 일찍 일어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들이 즐비했다. 어느 책에서 '잠자리에 들기 전 물을 많이 마시면, 새벽녘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글을 보았을 때는, 그 자리에 선 채로 소리 내서 웃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사실 한편으로는 나도 새벽시간을 얻어볼까 하는 마음이 늘 있었다. '아침형 인간'이라고 했다가 '미라클 모닝'이라고 했다가 말은 달라졌지만, 어쨌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을 여유롭게 '내려' 마신다는 그들의 자부심이 궁금했다.
새벽 5시 기상 인증을 하는 챌린지에 신청하였다. 타임스탬프 어플을 이용해 기상 인증을 하고, 책 읽기와 필사, 글쓰기를 오전 중에 마치는 것이 그날의 미션이다. 알차고 뜻깊게 방학을 보내기 위해 나에게는 강제성이 필요했고, 미션을 완수했을 때 참가비의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으니 아주 제격이었다. 돈을 걸어놓으니 마음이 아주 단단해진다.
미션 첫날 알람이 울리자마자 정말 말 그대로 눈이 번쩍 뜨였다. 이불속에서 미적거리는 것 따위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그대로 책상 앞에 앉아 책을 펼치고 눈을 비비며 한두 줄 읽어 내려간다. 세상에, 나 자신 아주 칭찬해. 웬일인지 점점 잠이 깨는 것 같다고 느꼈는데, 필사를 시작하면 점차 졸리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되고, 글쓰기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완전히 잠이 홀딱 깨버리게 되었다. 오히려, 글 쓰는 데 몰입하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기도 했다. 오오오. 나도 이제 아침형 인간이 되는 건가. 이것이 정녕 미라클이란 말인가!!
책 좀 읽어야지, 글 좀 써야지, 공부 좀 해야지 등등 평소 작정하고 뭔가를 해야겠다고 하지만 정작 시간이 없다. 우리의 일상은 늘 시간 부족. 일과가 진행되는 시간에는 나도 사람들도 정신이 없다. 일하는 틈에 시간을 내서 뭔가를 한다? 너무나 어렵다. 이리저리 복작대는 일감과 사람들 사이에서 정신을 부여잡고 집중하려면 고도의 수행력이 필요한 것이다. 일과를 마친 저녁에는 어떨까. 저녁에는 그냥 피곤하다. 다 필요 없고 맥주나 한잔 하고 싶은 것이다. 뭔가를 '시간 내서' 해야지 다짐한다면, 내야 할 시간은 바로 새벽뿐! 세상이 나에게 말을 걸지 않는 바로 그 시간이다. 몸과 마음을 조금씩 깨워가며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때가 바로 새벽이라는 것을 깨닫고야 말았다.
눈을 뜨자마자 부스스한 모습으로 짧은 시간을 읽었는데도 책끈의 위치가 매일 조금씩 옮겨가고, 필사 노트의 페이지가 쌓여갔다. 글도 꾸준히 써야지 마음만 먹었던 지난날과 다르게, 실제로 그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삶을 제대로 사는 방법을 알게 된 것처럼 자부심이 부풀어 올랐고 주변 사람들에게 새벽 시간의 의미를 말하기 시작하였다. 그 시간이 얼마나 자신을 성장시키는지, 얼마나 효율적인지 설파하는 데 정성을 쏟았다. 아침형 인간의 우쭐거림이 바로 나에게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잔 어때요!"
이 한마디가 재앙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지만, 치킨은 무시하기 어려우니까.
괜히 맥주 한두 잔이 곁들여지고, 각자 오늘 겪은 어처구니없는 일들로 하소연하며 경쟁하고, 나중이 되면 기억나지 않을 이야기들을 하느라 시간을 보낸다. 다음날 알람 소리에 맞춰 꾸역꾸역 일어나... 새벽 기상 인증을 하고, 다시 이불속으로... 헤헷.
내일이 마감인 일들을 집으로 가져와 부랴부랴 한다.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할까? 아니다. 오전 중에 마무리짓지 못하면 난리가 날 것이므로, 지금 몰아쳐서 무조건 마쳐야 한다. 마음이 조여들다 보니 밤이 깊어지면서 점점 더 정신이 또렷해진다. 밤이 내려앉을수록 집중력이 높아지는 올빼미가 적성에 맞는 시간대를 만난 것이다. 눈에 불을 켜고 한바탕 휘몰아치고 나니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흠. 지금 자면 새벽에 일어나기 힘들겠는데? 영화나 한편 보면서 차라리 밤을 새워야겠다. 그동안 찜해둔 목록에 있는 영화 한 편을 선택해 여유롭게 보고는.... 새벽 기상 인증을 하고, 그제야 이불속으로.... 허헛.
아침형 인간이 되겠다는 선언 후 여남은 날이 지나자, 밤낮이 바뀌는 매직이 일어났다. 밤이면 정신이 말똥말똥해져서는 그동안 미뤄둔 일들을 해내고, 동이 틀 무렵 새벽 기상 인증을 하고 잠시 책을 읽고 필사를 한 뒤, 글을 좀 쓰다가 취한 듯 잠에 든다. 지금 이 글도 밤을 지새우고 새벽 기상 인증 뒤에 쓰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인증 챌린지에 신청을 해놔서 매일 책 읽고, 필사하고, 글을 쓰고 있다. 그게 기적이라면 기적이겠다.
새벽 기상에 도전하면 초반엔 좀 피곤하지만, 점차 몸에 익으면서 습관이 자신을 이끌어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이러다가 해를 피해 숨어드는 좀비의 생활습관을 갖게 될까 불안이 엄습해온다. 차라리 낮에 잠들지 않고 버티면서 다시 생활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아야지 마음을 먹지만, 웬걸, 밤을 새우는 것은 별일 아닌 듯 쉬운데, 낮을 버티는 것은 온몸이 견디지를 못한다. 그렇다. 올빼미가 종을 바꾸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술이 좋아 사람이 좋아 밤새 진탕 놀던 어린 시절, 새벽 전철 첫차를 타고 귀가한 날이 있었다. 넉넉하게 빈자리가 마련된 전철에 앉아 후욱 술기운을 내뿜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전날부터 쭉 이어진 나의 길었던 하루가 그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정적과 같은 고요함과 함께 무척이나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누군가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 새벽부터 바쁜 걸음을 옮기며 일하는 사람들, 일터까지 가는 데 너무 긴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 단어장을 손에 쥔 채 입을 벌리고 조는 고등학생, 그들보다 더 미리 준비해 무언가를 파는 사람들... 느긋하게 커피를 내려마시는 것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 그들은 지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아침에도 밤에도 새벽에도 많은 애를 쓰고 있을 것이다. 이미 새벽형 인간이 되어 있는 그들이 졸음과 싸워가며 삶을 굴리는 첫차를 타는데, 밤새 방탕하게 놀다 지친 올빼미 한 마리가 거기에 섞여 부끄러움을 느끼는 중이었다.
물건을 주문하면 그걸 밤 사이에 준비해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 문 앞으로 가져다주는 시대. 새벽이 의무인 삶들이 있는데, 새벽을 '선택'하고 '도전'한다는 나의 말은 얼마나 한가로운 소리인가. 새벽 시간은 선택도 도전도 혹은 성공을 위한 노력의 시간도 아닌 것이다. 그냥 그것을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잠을 아끼며 치열한 순간들을 겪어내고 또다시 고단한 새벽을 맞이하는 숱한 사람들에게 그저 하루 중 어느 때에 커피 한 잔을 위한 느긋한 시간이 주어지기를 바라본다.
졸려서 그만 자야겠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나는 참 여유로운 자.
그런 의미에서 대단한 성찰이라도 되는 듯 떠벌렸던 나의 경험담은 하찮고 비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