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겪는 공유 주방, 기숙사 생활
처음 겪는 합숙 생활
제주도에 입도하기 전 내가 간과한 것들은 뭐 셀 수 없이 많다. 게스트하우스의 특성이나 지리적 특성, 주 손님층에 따른 업무 등등 다 말하기도 입 아플 정도인데, 그중에서 가장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
바로 공동생활에 대한 부분이다. 나는 요즘은 흔하디 흔한 무남독녀 외동딸로 형제와도 방을 함께 써본 적이 없다.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도 역시 마찬가지. 초중고대 모두 감사하게도 집과 가까운 학교만 다니게 되어, 기숙사 생활은 해본 경험이 없다. 20대 초반 입시의 질풍노도를 겪을 당시, 두 달 정도 공시생 언니와 함께 방을 썼던 적이 있지만 서로의 바쁜 공부 탓에 하루 중 잠잘 때 정도만 복닥 거린 것이 전부. 그런데 게스트 하우스의 스태프 생활은 일도 함께 하고, 잠도 함께 하고, 거기도 식사도 함께 공유하는 엄청난 공동생활이었다. 고민할 시간을 모두 스킵하고 이틀 만에 하이패스로 제주행을 택한 내가 이 걸 고려했을 리가 없지. 입도한 첫날, 내가 한 달간 묵을 작고 귀여운 우리 방문을 열고 방을 본 순간 생각났다.
'아 맞다. 이제 여기 모두 함께 살아야 하지!'
저 들어가도 되는 거 맞아요?
28인치 캐리어 하나와 20인치 캐리어 하나, 그리고 전자기기가 그득그득한 배낭 하나를 낑낑대며 올라온 방 안에는 이미 두 명의 스태프 분들이 있었다. 가쁜 숨을 내쉬는데 내 이산화탄소도 들어차기 힘들 정도로 방안은 만실 그 자체였다. 캐리어 두 개를 눕혀놓기만 해도 빈 공간이 없을 정도로 협소한 4인실은 도저히 두 명이상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스트 분들이야 한 달 내내 머물지 않으니, 우리만큼 짐이 없어서 4인실을 잘 사용하신다. 그런데 여자 사람 셋이 이 방에 있기엔 우리의 짐들이 너무너무 많았다. 짐이 가득한 밀도 높은 방바닥도 문제였지만, 침대 사정도 녹록지 않았다. 이미 먼저 오신 분들이 1층 침대 두 곳을 사용 중이었기에 나는 무조건 2층행 확정. 늦은 밤 라운지에서 일이라도 하다 들어갈라치면 2층 침대의 압박에 시달렸다. 침대를 오르려면 1층과 연결된 작은 사다리를 올라야 하는데, 그 목조 사다리를 오를 때마다 여지없이 '삐그덕'하는 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도 후 며칠간은 1층 침대를 쓰고 계신 다른 스태프님이 침대 자리에 들기 전 먼저 2층에 올라가기 위해 나만의 눈치게임도 해야 했다. 스태프님들은 다 괜찮다 하셨지만 불 꺼진 고요한 밤, 허공을 가르는 삐그덕 소리는 내가 참을 수 없었다. 민폐 룸메이트는 되고 싶지 않았다. (다행히 3일 후, 우리의 성화를 못 이긴 사장님이 나를 다른 방에 옮겨 주셨다.)
방마다 하나씩 있는 화장실 사정도 비슷했다. 화장실로 가면 변기 위에 3단 철제 선반이 달려있는데, 여기도 각자의 화장품 구역을 잘 나눠 정리해야 한다. 헤어트리트먼트, 오일, 팩, 스킨로션 등 갖가지 화장품들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기 위해 테트리스하듯 물건을 둬야 한다. 시간이 지나 이주 정도 뒤쯤은 두 명이 한 방을 썼는데, 세 명이서 공간을 썼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지 불편하지 않게 지냈다.
돌아보면 공간이 넓고, 크진 않아서 서로 마음이 조금 상할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다 둥글둥글 좋으신 분들이라 서로 배려를 하며 잘 나눠 쓴 것 같다.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룸메이트 간의 눈물 어린 연대를 통해 작은 방을 야금야금 야무지게도 나눠 썼다.
물 마를 새 없는 공유주방의 장금이
방과 화장실을 공유하는데, 당연히 부엌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우리 게스트 하우스는 스태프들에게 쌀과 라면, 김치와 고춧가루, 소금을 제공했다. 그 외에 요리해 먹고 싶은 게 있으면 길 건너 24시간 마트에서 구입해 오거나 이마트몰 배송을 이용해야 했다. 여행으로 며칠 온 거라면 온갖 맛집을 다니며, 밥 해 먹을 생각은 할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한 달 '살이' 중. 사는 삶에 매일 '사는' 일은 버겁다. 제주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관광도시로 거의 모든 식당들이 관광지 물가로 형성된 곳이다. 밖에 나가 맛있는 밥 한 끼와 커피 한 잔을 마시려면 4-5만 원은 뭉텅뭉텅 깨지는 곳이다. 일주일 이내로 온 여행에서 그 정도 풍요는 기꺼이 누릴 수도 있겠지만 한 달 이상 '살아야 하는' 삶 속에서 매끼 4-5만 원은 사치였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반찬거리를 고민하고 매 끼니를 어떻게 넘겨야 하나 고민하는 일상의 모습을 살 수밖에 없었다. 냉장고 속은 어느새 우리의 시금치, 콩나물, 두부, 우유, 요구르트 같은 것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거기에 게스트 분들 또한 냉장고를 사용하셔서 이따금씩 위의 사진처럼 만실 사례가 종종 생겨난다. 어쩔 수 없지, 또 한 번 테트리스. 떠나간 게스트분이 남긴 오래된 식재료는 볼 때마다 치우고, 요리조리 자리를 옮겨 사용한다.
"우와 다인님! 진짜 맛있어요!"
냉장고 옆 불을 피우는 화구는 총 4개! 프라이팬과 냄비, 조리도구도 제공이 되어 국과 반찬을 조리하기에 충분했다. 매일매일 하루 한 끼 이상은 음식을 만들어 먹느라 불 꺼질 틈도, 물마를 틈도 없던 주방생활. 돈도 아끼고 먹고 싶은 음식도 해 먹을 겸 슬금슬금 하던 요리가 재미가 붙었다. 매일 하나씩은 만들어 스스로 맛평가를 해보고 동료 스태프분들에게도 권하기도 하며 나만의 작은 수라간 살림을 꾸렸다. 인생 중 그 어느 때보다 요리를 많이 했기 때문에 실제로 요리 실력도 조금 늘었다. 국을 끓이면 일부러 넉넉한 양을 잡아서 스태프분들과 함께 나눠먹기도 하고, 나물을 무쳐 함께 비빔밥도 먹었다. 국물 요리는 끓일 때마다 그 맛을 계속 갱신하여 '게하 장금이'라는 별칭도 얻게 됐다. 이제 어디에 혼자 가도 나 하나정도는 거뜬히 (꽤 괜찮은 맛을 내며) 먹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자랑 맞다)
제공되는 부식에 조미료가 충분치 않아서 기름이나 간장은 사 와야 하나 했는데, 가끔씩 게스트분들이 사놓고 (감사하게도) 두고 가시는 양념류를 요긴하게 사용했다. 출도 하기 전까지 간장이 떨어지지 않아서 국도 끓이고, 숙주나물도 잘 무쳐 먹었다. 사실 양념뿐 아니라 과자나 계란, 올리브유, 귀한 과일들까지 일부러 넉넉히 사놓아 주시는 따뜻한 게스트분들이 많았다. 비싸게 주고 사 오신 레드향이나 샤인머스캣도 기꺼이 나눠주시고 챙겨주신 좋은 게스트분들에게 다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좋은 게스트분들 덕에 몸도 맘도 풍성한 삼시 세 끼였던 공유주방! 너무 감사했습니다. 어디에 계시든지 모두 행복한 나날이시길!
요절복통 여러 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게하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배려로 맛있는 음식도 해 먹고 잘 쉴 수 있었으니- 내 첫 합숙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었다. 한 집에서 함께 살며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을 '식구'라 한다. 24시간을 함께 공유했던 스태프분들은 물론이고, 때때로 먹을 것을 나누고 아침 인사를 주고받은 게스트 분들 모두 그 순간만큼은 나의 식구였다. 적어도 40일 동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