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과 육지의 거리: 고작 비행기 한 시간인데, 멀고 먼 마음들
무엇을 위해 여기에 있는 걸까?
매일 약속된 시간에서 머물러야 한다는 자유의 제한, 가벼운 지갑, 뚜벅이의 설움을 압도하는 가장 큰 현타는 역시나 '마음속 불안'이었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오늘은 몸이 피곤해서 등 갖가지 이유로 외출을 하지 않은 날들은 잠이 오지 않았다. 밖에 나갔다면 몸이 힘들어서라도 어쩔 수없이 잘 수 있었을 텐데- 이게 다 몸이 고생하지 않아 이러지... 하는 생각을 하다 점점 불안한 생각들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불안과 걱정이 무서운 것은 한 번 시작된 작은 불안의 생각들이 조금씩 지분을 늘려 금세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려고 했던 것들이 왜 잘 되지 않는 걸까?'
'날씨는 왜 좋지 않을까?'
'봄이나 여름에 왔어야 하는데, 너무 빨리 와서 날씨가 내내 안 좋은 거 아닐까?'
'어제 연락 온 육지의 A프로젝트를 한다고 했어야 하는데..'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나는 여기 왜 왔을까?'
하나의 불안은 다른 불안의 거름이 되어 또 다른 불안의 싹을 틔웠다.
그렇게 마음이 불안해지고, 하루가 불분명할 때마다 각종 SNS에 제주의 소식들을 정리해 올렸다. 제주 생활을 콘텐츠로 만들어 보자는 게 제주에 온 이유 중 하나였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1일 1 포스팅을 해보자 마음먹고 열심히 인스타그램을 했고,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팔로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팔로워가 늘어날수록 나를 좀먹던 불안들에게 조금 더 당당할 수 있었다.
'이 봐. 생각만큼 풍성하진 않아도 이만하면 생산적이잖아. 그러니까 나를 좀 두고 가 줘!'
내가 올린 제주의 사진들은 보이지 않는 날개를 달고 인스타그램 세계 속을 유랑했다. 눈부신 하늘, 애월의 윤슬, 행복한 사람들, 곳곳의 아름다움을 고르고 골라 약간의 보정을 마친 후, 글도 꽤 정성스레 적어 냈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요를 눌러주고, 댓글과 DM을 보내주었다. 사진과 글을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기뻤지만 한편으로 공허함도 함께 커졌다.
내 콘텐츠는 몇 일간의 예쁜 기쁨을 끓이고 끓여 걸러낸 순간들의 잼 그 자체였는데, 그 피드를 본 사람들 중 몇몇 분들이 내 삶이 부럽다는 식의 댓글을 달거나 DM을 보냈다. 물론 좋은 뜻의 고마운 글들이었지만 그런 류의 글을 볼 때마다 내 불안으로 인한 자격지심이 고개를 들었다.
'A포스팅의 이 사진은 무례한 버스 기사 아저씨를 만나고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우연히 찍은 사진이잖아! 너 B사진 찍기 전에 이틀은 숙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못 이기는 맘으로 나가 찍은 거잖아! 왜 날씨가 안 좋아서 외출을 못하는 것이나, 몸이 아파 움직이지 못한 것, 킥보드를 타다 넘어져서 크게 상처를 입었을 때는 이야기하지 않는 거야?'
인스타그램 속 사람들의 부러움 어린 댓글을 받을 때마다 괴로운 마음의 소리 또한 점점 커져갔다. 세상이 온통 파티인데 나 혼자만 화려한 드레스 속에서 고독을 느끼는 기분이었다. 사실은 마음이 불안하다고, 그렇게 행복하고 로맨틱하지만은 않다고 쉽게 말할 수도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남들이 꿈꾸는 한달살이를 하며 팔자 좋게 예쁜 카페와 서점 글을 올리는 사람이었으니까.
어느 날 친구 A가 DM을 보냈다.
친구: 서울쥐야, 제주 너무 부럽다 ㅠㅠ 흑흑 나도 너무 제주 한달살이 하고 싶어...!
나: 웅! 제주 좋지~ 근데 늘 좋지만은 않아. 한 달이 확실히 긴 거 같아 ㅎㅎ 지금 날씨도 별로 좋진 않고-
한 일주일 여행으로 오는 게 제일 좋은 듯!
친구: 그래도 여기보단 제주가 좋겠지~
나: (아니라고 하면 안 되겠지) 그렇지, 그건 그렇지.
이 대화를 끝내고 나니, 한층 더 공허해졌다. 내 하루는 그렇게 여행 같지 않은데, 모두가 나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나는 아침 6시 50분에 일어나 11시까지 일을 끝내면 1시까지 잠을 자고, 1층 라운지에서 영상을 편집하거나 글을 썼다. 라운지 뷰는 그냥 갈색 벽돌 뷰뿐이라 육지의 것과 다를 것도 없었다. 매일 일을 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비슷하게 보냈지만, 제주에 머물고 있다는 이유 하나로 응당 행복하다 말해야 했다.
이 공허함을 누가 알랑가 몰라. 홀로 이어지는 '알랑가 몰라'의 메아리가 공허한 내 마음속을 파고들며 조금씩 큰 구멍을 만드는 듯했다. 텅 빈 외침은 점점 큰 메아리가 되어 마음 깊은 곳까지 내달렸다.
멀고 먼 우리 사이, 고작 비행기 1시간일 뿐인데..
육지와 제주의 거리, 고작 비행기로 1시간인데 확실히 멀었다. 몸도 멀고, 쿠팡이나 컬리 새벽 배송도 되지 않고 안 되는 것이 많았다. 인터넷 쇼핑을 할 때마다 알 필요 없이 흘려보낸 '도서산간 배송비'는 제주의 거리를 더욱 체감하게 하는 큰 요소였다. 실제로 쇼핑이 줄었다. (이건 순기능인가?)
물리적 거리에서 오는 거리감도 컸지만 마음들도 참 멀어졌다. 제주에서 머무는 동안 비교적 자주 연락했던 친구와 지인들도 연락의 빈도나 횟수가 줄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육지의 좋은 식당, 카페를 함께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을 보며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기에 있을 수 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 때마다 제주에서의 내 생활이 마치 빛 좋은 개살구같이 여겨졌다. 마음을 나누고, 내 고민들도 함께 토로할 수 있는 편한 사람들과의 밀도 높은 대화가 그리웠다. 그렇지만 제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빨간 하트 하나를 더해주는 것'뿐.
친구들에게 메시지를 보낼까 하다 메시지창을 끄는 일이 많았다. '보자'는 말을 할 수가 없으니, 나도 연락하기가 괜스레 민망해졌다. 근황을 얘기하며 제주 한달살이에 대해 말하면 은근한 자랑으로 비칠까 하는 소심한 생각도 들었다. 너른 마음을 가진 친구들의 마음을 내 멋대로 구깃구깃 구겨버리다니, 갑자기 미안한 생각이 든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며 연락을 자주 못했으니, 친구들도 비슷할 거라 생각한다. 육지의 삶은 아무래도 제주보다 바쁘게 돌아갈 테니까. 사실 이렇게 제주 생활을 (잠깐이지만)해보기 전에는 언젠가 제주에 내려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중에 나이 들면, 은퇴하면... 이런 생각 아마 다들 해본 적 있지 않을까? 그런데 확실히 삶으로써 한 곳에서 살다 보면 다양한 측면에서 비교적 객관적인 평가를 해볼 수 있다. 이렇게 물리적 거리의 영향력을 체감한 다음, 나는 영원히 육지에 발을 붙이며 살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짧은 여행에서는 잘 몰랐는데, '살이' 그러니까 '삶'에서는 믿음직스러운 관계가 필요하다. 나도, 당신도 우리는 우리가 필요하다. 존재한다는 것 그 자체와 함께 유기적으로 연결된 나의 사람들로 인해 비로소 내가 온전해진다.
공허한 마음은 사랑으로 채워야 해
내 불안과 공허함, 관계의 부재 속에서 오는 외로움 모두 마음의 주인인 내가 감내하고 다스려야 하는 마음들이다. 제주에 있어서 혹은 육지에 있어서 더 괴롭거나 행복한 건 아니었다. 공허한 마음이 들 때면 차분히 마음을 들여다보며 책을 읽거나 일기를 썼다. 관계에서 오는 외로움 또한 게스트하우스의 손님들 혹은 스태프분들과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만족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다 해봤는데도 공허하거나 외로우면 그냥 그 감정을 그대로 느끼기도 했다. 내 공허한 마음 그 자체도 사랑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때때로, 그리고 생각보다 종종 외롭고 공허한 존재라는 걸 인정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 허전한 마음까지 사랑한다 여기니, 그곳에 사랑이 채워졌다. 불안과 외로움으로 인한 균열들로 자칫 싱크홀이 될뻔했던 마음이 비로소 편안해졌다.
* [<생각보다 로맨틱하지 않은 제주 한달살이>는 말하고 싶은 내용이 많아, 시리즈로 기획했습니다 : ) 하나 정도 더 나올 것 같아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