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생각보다 로맨틱하지 않은 제주 한달살이 3

제주에서 겪은 두 번의 교통사고 이야기

by 서울쥐

육지나 섬이나 교통사고가 로맨틱할리는 없다. 특히 이렇게 여행에 와서 겪는 교통사고는 거의 재난에 가깝다. 부모님도, 친구도, 나를 도와줄 지인 아무개 씨도 없는 홀로 겪은 두 번의 교통사고는 제주 한 달 살이 초창기에 한 번, 한 달 살이가 거의 끝나가던 얼마 전 피날레로 한 번 - 웃프지만 수미상관도 이런 수미상관이 없었다. 거기다 짠 것도 아닌데 첫 번째 사고는 조금 가벼운 편이었고, 두 번째 사고는 반깁스까지 하게 된 조금은 매운맛 사고로 완급 조절까지 드라마틱했다. (지금도 깁스를 착용하고 있다)



첫 번째 교통사고

이 교통사고는 킥보드를 타다 벌어진 사고로 어딘가에 부딪혔다기보다 멀리 오는 차를 보고, 내가 놀라서 넘어진 사고다. 대중교통을 제외한 운송수단이 오직 내 몸 하나였던 나는 제주도에 오기 이틀 전쯤 쿠팡에서 수동킥보드를 결제했다. 오랜만에 운동 겸 타면 재밌을 거 같기도 했고, 오랜 거리를 이동할 때 쉽게 갈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내가 구매한 킥보드는 '데카트론사의 타운 9'이라는 수동킥보드다. 맞다. 그 발로 차서 가는 일명 씽씽이.


전동킥보드를 사지 않고, 수동킥보드를 산 이유는 첫 번째로 나는 빠른 게 싫었다. 그러니까 전동 특유의 그 (나에겐) 엄청 빠른 속력이 싫었다. 내가 전동 킥보드를 처음 봤을 때가 2019년 파리 여행에서 본 라임 킥보드 였는데, 내 옆을 빠르게 스치는 킥보드를 보고 '아 나는 저건 못 타겠구나'를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 같은 쫄보에게 전동킥보드는 너무 빠르다. 두 번째로 전동킥보드는 지켜야 하는 안전 수칙이 훨씬 복잡하고 운반과 이송이 어려워서이다. 전동 킥보드의 사고 사례가 많아지면서 '킥라니'라는 안 좋은 별칭도 생겼다. 그에 따라 전동류 기기에 대한 안전수칙이 계속 강화되고 있다. 그리고 배터리로 움직이는 전동킥보드는 육지로 가져갈 때도 안 되는 게 많아 골치 아팠다. 결국 자전거도 못 배운 쫄보인 내가 편하게 탈 운송수단은 '수동킥보드'였고, 그중에서도 최대한 튼튼하고 어른스러워 보이는 외형을 고려해서 데카트론사의 타운 9를 고르게 된다. 수동킥보드계에서는 나름 최상급 모델이라고 했다.


제주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 첫날 실물로 영접한 내 킥보드는 너무나 영롱했다. 예상보다 견고해 보이는 바디에 브레이크 장치도 든든했고, 벨 기능도 있었으며 접이가 아주 편해서 활용도 만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색감도 이만하면 아주 세련된 느낌이었다. 바로 실내에서 잠깐 시범주행을 해보니 생각보다 더 시원하게 잘 나가서 더 만족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킥보드에게 마음을 뺏겼다. 바로 그다음 날 약 1시간 거리의 해변가까지 킥보드를 타고 가볼 계획을 잡게 되었는데, 그날 사고가 났다. 네이버 길 찾기로 자전거 경로를 잡은 게 일차적인 실수였다. 주행이 익숙해지지도 않은 시점에서 자전거 전용도로롤 검색해서 갔더니 중간중간 차와 함께 가는 도로가 나왔다. 이게 아무리 수동킥보드계의 벤츠라 불려도 진짜 벤츠는 아니지 않나. 사방이 뚫린 킥보드를 타고 차도를 나가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다리 근육을 많이 쓰는 탓에 숨이 자주 차서 멈추는 바람에 속도 또한 (자전거에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느렸다. 이런 속도로 자전거 전용도로를 타면 자전거와 부딪히던지, 차에 부딪히던지 큰 사고가 날게 뻔했다.


그래서 생각을 고쳐먹고 도보용 도로를 다시 검색해서 가려는데 이미 공항 활주로 옆 도로에 들어선 다음이었다. 낮에도 인적이 별로 없는 곳이라 일단은 흙길을 열심히 달려 나가는데, 뒤에 약속해 둔 화상회의 시간이 다가오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분명 두 시간은 여유 있게 나왔는데도 시간이 촉박했다. 내리막길이 보이자 일단 빨리 속도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브레이크를 잡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속도를 조금 줄이려면 손잡이에 있는 브레이크바를 조금 잡고 주행해야 한다) 30초나 그렇게 달렸을까? 이미 가속이 조금 붙어서 심장이 뛰기 시작하는데 저 멀리 차 한 대가 오는 게 보였다. 먼 발치였지만 어쨌든 차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고, 지레 겁이난 나는 브레이크가 아닌, 발을 땅에 끌며 속도를 늦추려 했다. 이게 가장 큰 실수. 당연히 가속이 붙어 빠른 속도로 가고 있던 킥보드가 내 발로 멈출 리가 없었다. 오히려 내 발이 지렛대 역할을 하여 눈 깜짝할 새에 킥보드와 내 몸이 잠시 날았다.


"쿵" 아주 찰나의 순간, 몸이 살짝 떴다가 흙길에 끌리며 넘어졌다.


다행히 등 뒤에 매고 있던 배낭 덕에 머리를 부딪히진 않았고, 옷이 조금 찢어졌지만 팔꿈치와 무릎이 조금 많이 까지는 수준으로 부상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내 쪽으로 오는 것 같던 먼발치 그 승용차는 중간에 있던 쪽 길로 틀어 내 쪽으로 오지 않았다. 그 와중에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억울하고, 웃기기도 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끄응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키니, 팔꿈치와 무릎이 따가웠다. 어라, 피가 생각보다 많이 나서 옷 위로 새어 나왔다. 상처를 열어보고 싶었지만 깨끗한 물이 있는 곳에서 봐야겠다 생각하고 보지 않았다. 더 이상 주행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택시를 불러 가까운 카페로 향했다. 화상 회의 세팅을 끝내놓고, 화장실에 가서 옷을 열어보니 상처 부위가 컸다. 특히 팔꿈치에 난 상처는 거의 내 손바닥만 하여 팔꿈치 위아래까지 따가움이 계속됐다. 상처가 크긴 해도, 뼈나 근육은 괜찮은 느낌이었다. 마음을 진정시키며 직원분께 도움을 청했더니, 친절한 직원분이 대형 드레싱 패드를 주셔서 응급조치를 끝냈고, 화상회의를 진행할 수 있었다. 별 것 아니라 생각했던 이 찰과상이 한 달 가까이되서야 어느 정도 아물었다. 그래도 이 사고는 이 정도로 끝나 다행. 두 번째 사고가 진짜였다.







두 번째 사고

두 번째 사고는 차끼리 부딪힌 비교적 큰 사고였다. 그날은 내 한 달 살이 속 작은 여행 중 벌어진 사고였다. 40일 살이가 10일 정도 남았을 무렵, 제주시에 머물고 있던 나는 서귀포 쪽에서 1박을 하고 올 계획을 세웠다. 제주시에서 서귀포시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 길에서 왕복 세 시간은 보내야 하기에, 서귀포에 가려면 마음을 먹고 가야 한다. 그래서 아예 1박을 하고 오자! 하는 마음에 호기롭게 서귀포시에 있는 흙집 개인실을 예약해 버렸다.


그렇게 떠난 서귀포 여행은 참 좋았다. 기대했던 서점은 기대보다 더 만족스러운 공간이었고, 오랜만에 맛있는 커피도 마셨다. 작고 예쁜 펠트 인형도 샀고 저녁에 보게 될 흙집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불운의 복선이었을까? 이미 밤이 되어 숙소 근처에 와 있었는데, 예약한 숙소에서 실수로 내 방에 두 명을 받았다는 연락이 왔다. 숙소 사장님은 미안하다 하시며 여자 두 명이니 같이 이 방을 쓰면 숙소비는 받지 않겠다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이미 게스트하우스에서 두 명이 쓰는 방을 오래 쓰다 간 거라 꼭 나 혼자 방을 쓰고 싶었다. 혼자만의 공간을 온전히 누리고 싶은 맘에 결국 예약을 해지하고 저렴한 다른 호텔을 찾아 숙박을 했다. 여기까지도 당황스럽지만 나쁘진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시작된 불운의 복선이 사고가 될 줄은 미처 몰랐지.


다음 날, 오랜만에 혼자만의 하루를 푸지게 즐긴 뒤 너무 편하게 잠을 자고 1박을 연장하기로 했다. (사실 이 날 그냥 다시 갔었으면 사고가 안 났을지도) 느지막한 오전이 되자 밖으로 나왔다. 가까운 카페에 가려고 카카오 택시를 탔다.


"혼자 왔어요? 아이고.. 용감도 해라! 재밌어요?"

"네 ㅎㅎ 재밌어요! 사실은 한 달 정도 됐어요. 원래 제주시에 있는데, 서귀포로 놀러 왔어요~"

"여행 혼자 왔으니까, 이 거 하나 먹어요!"


이런저런 스몰토크를 나누는데, 기사 아저씨가 정말 친절하셨다. 따로 드시려고 사놓으신 레드향 봉지에서 하나를 꺼내 내게 넘겨주셨다. 반질 반질 고운 레드향을 보니 마음이 따사롭게 녹고, 전 날 더블부킹 사건의 속상함도 눈 녹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래, 제주는 역시 사랑이야! 제주 좋아! 제주 사람 좋아!' 마음속에 기쁨이 차올랐다.


"귤 감사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네 조심히 여행해요!"


목적지에 도착한 후, 카페에서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너무 좋은 선택이었다고 스스로 칭찬까지 나오는 장소였다. 평화로운 곳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 시간이 다가왔다. 마침 오는 정 김밥이 근처에 있길래 혹시 몰라 전화를 해봤는데, 진짜 운이 좋게도 전화를 받으셨고! (*오는 정김밥은 엄청 유명한 김밥집으로, 전화를 잘 못 받으시기로 유명합니다) 당일에 두 줄을 가져갈 수 있다는 말씀을 해주셨다. 당연히 두 줄 예약! 이렇게 잘 풀릴 수 있나. 너무 기분이 좋았고, 카페도 정말 맘에 드는 곳이라 김밥 픽업 시간에 다다를 때까지 머물고 싶었다. 그 카페에서 도보 2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였는데 최대한 시간을 끌며 카페에 머물다가 결국 다시 택시를 불렀다. 차로 7분 거리. 픽업 시간이 10분 정도밖에 안 남았는데, 택시도 바로 잡혔다. '아싸! 오늘 뭐 좀 되는 날이다!' 2분 정도 뒤, 기다리던 택시가 도착했고 마지막으로 마법 같은 일이 벌어졌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 어라?"

"아이고, 아까 내린 자리라 혹시나 했더니, 아가씨였네!"


택시가 도착했는데, 아까 그 기사님의 택시였다. 하루에 두 번 이렇게 같은 택시기사님을 만나다니! 거기다 레드향까지 나눠주셨던 너무 좋은 분이었어서 더 기뻤다. 럭키걸! 카페도, 오는 정김밥 당일 예약도, 이 택시 기사님까지- 어제 못 누린 행운을 몰아 받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일이 벌어졌다.





사고는 정말 갑작스러웠다. 일몰이 시작되는 예쁜 하늘과 평화로운 제주, 친절한 기사님과의 소소한 대화. 평화를 깰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저 평범했던 저녁의 차 안. 갑작스럽게 택시가 멈추더니 쿵!! 뒷 차가 우리 차를 세게 받는 충격이 느껴졌다. 택시 뒷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목이 앞으로 세게 젖혀졌고 발목이 접혔다. 어찌나 세게 부딪혔던지 뒷 범퍼가 얼마나 찌그러졌을지, 바로 연상이 되는 정도였다. 나는 아픈 것 이전에 너무 놀라서 기사님과 내 몸을 계속 살폈고, 다행히 우리는 무사했다.


기사님은 상대편 차주님과 이야기를 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셨는데, 앓는 소리를 내시며 차문을 여셨다. 기사님이 일몰 햇살에 신호를 잘못 보고 급정거를 했고, 뒷 차는 안전거리 확보를 하지 않아서 급진적인 충돌이 있었다고 했다. 양쪽 모두의 잘못이었다. 나는 잠시 차에 더 머물다가 이내 밖으로 나갔다. 몸을 일으키니 머리가 어지럽고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갑자기 두려워졌다. 뇌에 문제가 있는 거면 어쩌지?


15분 정도 더 흐르니, 양쪽 보험사 직원들이 도착했다. 가해 차량의 운전자분도 큰 외상은 없었는데, 조수석에 앉아 계셨던 아주머니의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상대편의 외상을 보자, 나 역시 머리가 아프고 목이 아팠지만 너무 무섭고 걱정이 됐다. 심장이 세게 뛰고, 역한 느낌이 점점 거세졌다.


걱정이 되고, 몸도 아픈데 이 와중에 '오는 정김밥 가야 하는데...!' 하는 조바심이 들었다. (ㅋㅋㅋㅋㅋㅋ) 나도 이런 내가 어이없고 뭔가 싶었지만 약속을 해뒀으니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다른 택시를 부르고자 했다. 그런데 너무 길가라 택시도 안 잡혔다. 아니 김밥은 차치하고 나 호텔로 돌아갈 수는 있나? 길가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기사님이 동생분을 불러주셨다. 일단 전화번호를 드리고, 기사님의 동생분 차를 타고 오는 정김밥으로 향했다. 김밥집에 가기 전 약국에 들러 타이레놀과 멀미약을 사서 들어갔다. 그리고 그날은 김밥을 조금 먹다 일찍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이 되니 어제 다친 목근육이 더 심하게 아파왔고, 어지러움증도 여전했다. 일단 제주시로 넘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와중에도 서점은 한 군데 가야지 싶어 가까운 서점에 들렀다 갔다. (대단한 정신력)



제주시에 도착한 후 동네에 있던 대형 종합병원에 갔는데, 일단 응급실로 인계됐다. 간단한 X-ray와 CT를 찍었는데 정말 다행히 뇌와 뼈엔 문제가 없다고 했다.



"발목이 조금 부은 거 같고, 목도 안 좋으시니 정형외과랑 신경외과는 한 번 더 진료를 따로 받으시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내일 바로 진료 예약 해둘게요."


다음 날 신경외과와 정형외과에 간 나는 근육이 늘어졌다는 소견을 듣고, 목에는 부목을 차게 되었으며 왼쪽 발목엔 반깁스를 하게 됐다. 덧붙여 육지에 갈 때까지 꼼짝없이 매일 물리치료행 당첨.





다이내믹 제주 한 달. 교통사고라니.. 정말 예상 못한 전개다.



그래서 요즘은?

요즘의 나는 여전히 부목과 반깁스 생활을 하는 중이다. 물리치료는 최소 한 달 정도는 지속해야 한다고 한다. 사고를 겪어보니, 제주든 육지든 교통사고는 안 겪는 게(당연하지만) 편하다. 씻는 거부터 누워 자는 것, 먹는 것까지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도 사고 난 그날부터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 가장 큰 감정은 감사함인 것 같다. 차 두대가 앞 뒤 찌그러져서 운행이 안 되는 지경이었는데,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다치다니 정말 행운이었다. 그리고 여행이 거의 끝나갈 즈음 몸이 불편해져서 또 다행이다는 생각도 든다. 초창기에 이런 일이 있었으면 얼마나 우울했을까? 운이 좋았다 정말.


후에 들었는데 택시 기사님이 디스크 수술하신 지 얼마 안 돼서 이런 사고를 겪으셔서 사실 나보다 더 많이 안 좋으시다고 했다. 가해 차량 차주와 동승자 또한 나보다 좀 더 다치신 듯하다. 여러모로 나지 않았어야 할 사고가 나서 맘이 좋진 않지만, 그래도 이미 벌어진 일 어쩌겠나. 안전불감증에 걸린 천둥벌거숭이처럼 지냈던 지난날.. 건강에 대한 감사를 다시 깨닫게 된 좋은 계기였다고 생각한다. 좋게 생각하니 나중엔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그래도 다시 한번 차조심, 길조심 강조!






*로맨틱한 제주에서 느낀 로맨틱하지 않은 마음과 일상, 사고까지 3번에 걸쳐 이야기했습니다. 다소 무거웠던 이야기를 뒤로하고, 이어질 내용은 '제주에서 해먹은 음식들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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