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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쥐 Jan 31. 2024

몸살 같던 8일간의 도쿄 출장 여행

아름다운 가을 거리에서 웃고 울었던 나날들


독감처럼 앓다 온 도쿄에서의 8일 시작

꽤 긴 준비를 하고 출발했던 도쿄 출장 겸 여행이 끝났다. 두 달이 넘도록 매일 무엇을 하고, 어디를 들러 어떤 감상을 할지까지 정해둔 여행이었다. 결과를 말하면 아무 졌던 '계획'은 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고, 가려던 곳의 30% 정도는 야속히 흘러간 시간으로 인해 가지 못했다. (약 80-90곳에 갈 계획이었는데 60곳 정도에 그쳤다.)


몇 개월 전부터 새로 준비하는 콘텐츠를 위해 열심히 돈과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 준비했던 여정이었다.

그런데 도쿄 가기 이틀 전쯤,  집안에 폭풍 같은 일이 생겼다. 이틀 동안 거의 잘 수 없었고, 정신적으로 너무 큰 시달림을 겪으며 출장에 걸었던 기대와 소망이 소멸됨을 실시간으로 느꼈다. 출발 당일, 밤을 꼬박 새우고 무거운 맘으로 준비물을 챙기고 아침 일찍 공항으로 향했다. 잔 바람에도 마음이 휘날릴까 전전긍긍- 결국 엄마가 함께 공항에 와주셨다. 도살장 끌려가듯 무거운 마음이라 해도 비행기는 어김없이 떴고, 나는 도쿄에 도착했다.



도쿄에 머무는 내내 마음의 그루터기가 되어 주던 작은 노트
세타가야구에 마련한 임시 보금자리와 한 뼘 노트 하나


숙소는 세타가야구의 어느 주택이었다. 시부야, 신주쿠에서 지하철로 20-25분 정도 걸리고 역까지 걸어 15분 정도이니... 신주쿠까지 35분 정도 걸리는 집이었다. 도쿄에서 처음 이용해 보는 에어비앤비라 기대가 컸다. 하지만 첫날은 전 날의 피곤까지(밤을 새워서) 얹힌 여독+양손 가득 무거운 짐의 여파로 너무 먼 곳을 잡았나 잠깐 후회가 됐다.  



하지만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에어 비앤비가 있던 '도쿄 동네 산책길(?)'이다.

단풍이 한창이던 가을 날씨, 동네 길을 거닐며 다른 창문과 문을 가진 집들을 부지런히 구경했다. 아름드리 단풍잎이 가을바람에 흩날리면 우체통 앞에 서서 떨어지는 이파리를 올려다보며 감상에 젖기도 했던 그 길.


하루에 만 오천보~이 만보 사이로 걷다 집에 돌아오면 자그만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매일 반신욕을 했다. 1박에 4만 원이 조금 넘는 저렴한 가격이었는데, 작은 주방과 욕조 딸린 욕실까지 있을 게 다 있던 포근한 집. 욕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면 작은 테이블에 앉아 야식을 먹으며 영화를 보고 하루를 마감했다.






멋진 장소들과 멋대가리 없는 내 마음의 격차


출장으로 떠났던 도쿄. 예쁜 풍경과 멋진 기획이 담긴 장소들을 보려고 노력했다. 이 모든 것이 잊힐까 두려운 맘에 손바닥만 한 노트를 들고 다니며 틈틈이 기록했다. 손으로 쓴 기록들은 흑연의 농도까지 감정이 담겨 활자 위로 그때의 기분이 함께 적히는 듯하다. 그래서 그런가, 이 시기의 아픈 마음들도 장소 사이사이 잘 남겨져 있다. 노트를 넘기다 보면 멋진 장소와 멋없는 내 마음의 격차가 격의 없이 담겨있다.


'에어비앤비 동네 야키토리 바에서 사장님이 우산을 선물이라며 건넸다. 조용했던 가게 안 단골들이 모두 손을 흔들며 잘 가라는 인사를 해줬다. - 사장님과 손님들에게 조용한 환호와 배려를 받았구나'


'나카메구로에서 끝내주는 가게와 카페를 다녀온 뒤, 엄마와 통화를 하며 한 시간을 울었다. 저기 지나가는 한국인 커플들이 날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웃고 울며 때때로 외로웠구나.





좋은 곳에 가면 환희에 차서 기뻐하다가, 집안일을 생각하면 순식간에 감정의 내핵에 빨려드는 것 같았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스위치 켜듯 바뀌는 마음에 나조차 적응이 안 됐다. 당혹스러운 감정은 도쿄에 머무는 내내 연속적으로 벌어졌다.


이러나저러나 약 60곳의 장소와 생각, 마음들을 아득바득 담아왔다. 건빵같이 퍽퍽한 감정처럼 별사탕 같은 달달한 마음과 감상도 차별 없이 담으려 했다. 이번 출장 전체를 우울함으로 칠하고 싶진 않았다. 반짝이던 순간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니까.


- 차테이하토우에서 말을 걸어줬던 중국 유학생

- 야키토리바에서 고요한 관심을 받았던 비 오는 밤

- 동네 덮밥 가게에서 노부부 사장님께 작은 메모를 전하던 떨리는 마음

- 나와 함께 물건을 고민해 주던 소우소우 가게 점원 분

- 한국 여행을 오고 싶다고 인스타그램 ID를 받아갔던 직원 친구


이런 따뜻하고 개인적인 일화부터

아래 기획 콘텐츠까지-


- 패키지 강국, 도쿄의 패키지

- 2121 디자인사이트 전시회와 일루미네이션

<후기>

- 도쿄의 '문'이 모두 다른 이유

- 도쿄에서 살아봤습니다, 시부야 20분 거리 에어비앤비 체험기

- 힙이 된 올드, 킷사텐 특집

-> 오래되었다는 것은 살아남았다는 것


찍고, 기록했다. 그게 뭐든 차별 없이






부족하다 했지만 애초에 욕심이

너무 많기도 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60곳의 장소. 60개 이상의 생각.


문구점과 서점, 오래된 거리와 장소들을 돌아봤다.

사고 싶던 카메라 가방과 지갑도 야무지게 건져온 이번 출장!


나의 꾸덕하고 찐했던- 이 시기의 기록들을

어서 풀어 나누고 싶다.

모나고 서툰 감정들도 지나치면 모두 소중하고 울퉁불퉁한 일들도 결국 생각에 흔적을 남겨

패스츄리 같은 결을 만든다. 시간이 흐르면 이 결과 흔적이 모여 마음의 면적을 넓히기도 한다.

그러면 언젠가, 내가 원하는 더 나은 어른이 되어 갈 것이라 믿는다.


이번 출장 스케줄도, 내 마음도

애초에 계획대로 된 것은 없지만

인생이 또 이런 거지 생각해 본다.


몸살처럼 앓다 온 도쿄 8일,

잘 앓았으니 더 단단해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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