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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ong Jul 25. 2017

멈출 수 없는 부딪힘

성경말씀을 내 삶으로 가져온다는 것.

한국에서 내가 다녔던 교회에서는 신년이 되면 '말씀 뽑기'를 한다. 

이런 행위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씀이 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 독일에 오니까 이제야 좀 체감하게 된다. 그동안 여러 차례 말씀을 뽑았지만 기록할 만큼 와 닿은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올해, 내가 뽑은 말씀은 마태복음 6장 3절~4절이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너무나 쉽게 이해되는 말씀일뿐더러 이미 알고 있는 말씀이었다. 하지만 이 말씀의 더욱더 깊은 뜻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만난 순간부터 오늘까지도 묵상하고 있다. 어떤 일을 할 때 '왜 나만 하지? 아 힘들다...'라는 생각이 올라오는 순간들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럼 하지 말지 왜 해?'라며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던지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마음으로 한다면 상대방을 위한 것도 나를 위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이 행위는 누굴 위한 것일까? 어느샌가 목적은 사라지고 불평, 불만만 남은 것이다. 그럴 땐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 


그 순간에 직면했을 때, 나는 올해 뽑은 말씀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갚으실지가 기대가 되었고 이 순간에도 보고 계신다고 생각하니 회개기도가 흘러나왔다. 그러면 1초도 안 되는 찰나의 순간에 나의 마음이 전환된다. 어두웠던 마음이 밝아진다. 나는 정말 교만한 사람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처음엔 대가를 바라지 않았지만 어느샌가 마음속엔 보상심리가 자리 잡고 있어 내 마음을 혼탁하게 한다. 그러면서 너무 자동으로 그 일과 관계된 대상을 평가, 판단하기 시작한다. 어떨 땐 나 자신이 되는 경우도 있다. 로마서 14장 10절에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비판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라고 하셨음에도 그것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영역까지 침범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오직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인데도 말이다. 늘 이런 좌절의 순간이 온다. 그러나 '나는 안되나 보다. 말씀대로 사는 건 어려워~'라고 포기하는 것보다 이런 삶을 반복 또 반복하다 보면 반복하는 횟수가 짧아지고 불평, 불만하는 시간이 짧아진다. 


이 말씀을 되뇌다 보니 '구제'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어디까지가 구제일까? 이것도 구제일까? 아닐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많이 떠오르게 되었다. 말씀 한 구절을 진짜 내 삶으로 가져온다는 것은 한 자, 한 자 정성을 들여야 하는 것이다. 기도하면서 시행착오도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 가기도 하면서 말씀을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간접 믿음이 아닌 오직 나의 믿음으로. 때로는 말씀이 아주 희미해지기도 한다. 내가 원래 이렇게 '악'한 사람이었구나 새삼 깨닫기도 한다. 일종의 패턴이 아닐까 싶다. 말씀을 알게 되고 내 삶을 점검하고 다시 그렇게 살 수 없음을 직면하고 다시 회개하고 또다시 말씀을 보고 다시 내 삶을 점검하는... 다람쥐 쳇바퀴와도 같은 패턴. 쳇바퀴에서 제자리걸음을 한다고 여겨질 수도 있겠으나 점점 패턴의 간극이 좁아진다. 나 역시 여전히 패턴의 간극을 좁혀나가는 과정에 있다. 그 과정에서 말씀이 나와 점점 가까워지고 깊이가 깊어진다. 


말씀이 나이고, 내가 말씀이 되는 삶을 위해서 나는 오늘도 또 연단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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